생명의 존재 기저에 분명 죽음이 있습니다만 [황정은·허태임 교환일기]
2026년 2월21일
경남 고성에 가서 팽나무를 만나고 왔습니다. 정월 대보름을 앞둔 이 무렵 저는 팽나무에 제사를 모시는 마을을 부러 찾아갑니다. 작가님도 이미 알고 있듯이 저는 팽나무 고목이 마을 어귀를 지키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제가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낸 생명체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그 나무일 거예요.

제가 자란 마을에서는 정월 열닷새가 막 시작되는 날 자정 무렵 팽나무에 제사를 지냈어요. 새끼줄을 두른 그 나무 앞에서 어른들은 절을 올리고 춤을 췄습니다. 저를 키워준 할머니께서는 하늘의 신이 팽나무를 타고 내려와 마을의 소원을 듣고 간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기이한 풍경을 몇 차례 바라보면서 저는 신을 만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팽나무 곁에 머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동제를 계승할 사람이 다 떠나고 없어서 제 고향에서는 그 맥이 끊겼습니다. 제가 다른 마을로 동제를 보러 가는 까닭입니다.
경남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에는 4개 마을(월치, 정촌, 신은, 도산촌)의 주민이 함께 추앙하는 당산목 팽나무가 있습니다. 은월리 정자나무라고 마을 사람들이 ‘은정자’라 부르는 나무이지요. 마을 공동체는 정월 보름 부근에 그 커다란 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식을 해마다 정성껏 바칩니다. 그 은정자 팽나무에게는 엄마 팽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지금의 후계목 팽나무보다 더 크게, 더 오래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마을 이장님께 들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의 일이라고요. 엄마 팽나무 바로 앞에 뿌리를 내린 후계목이 지금의 300살이 훌쩍 넘은 팽나무입니다. 떠난 엄마 팽나무가 있던 자리에 마을 사람들은 돌무덤을 쌓았습니다. 한 생명체가 오래 뿌리내리고 살던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서였겠지요. 이 돌무덤 앞에 상을 차리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립니다.
2026년 2월27일
수목원 숲길에 너도바람꽃이 아직 안 보입니다. 어제보다 기온이 올라 살짝 기대하고 작년에 피었던 자리를 찾아갔는데 이른 감이 있네요. 그 대신 키버들 꽃눈이 터져 오동통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버들강아지는 이내 복슬복슬한 열매를 맺을 거예요. 봄이 거의 다 왔습니다.

시시한 이야기 하나 해볼까요. 식물분류학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서로 처음 만나 나누는 인사가 대체로 “뭐 전공하셨어요?”예요. 전공 분야가 식물분류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묻습니다. 각자 깊이 파고드는 특정 종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대상이 팽나무입니다. 저의 도반이자 반려와도 같은 팽나무를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전공으로 받아들인 건 15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팽나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제가 감히 장담하건대 지금은 팽나무 겨울눈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햇빛을 차츰 더 받아들이며 잎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될, 나무의 근원이자 심장과도 같은 신체 부위를요. 작가님이 편지에서 쓴 것처럼 입자의 집합과 해산으로 본다면 팽나무의 눈과 저의 눈은 그 유래가 같을 거예요. “지구의 모든 원소는 수십억 년 전에 있었던 별들이 부른 연금술의 조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요(〈코스모스〉,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457~458쪽, 2006).
분열하고 발달하여 장차 잎이나 꽃이 될 나무의 눈. 그걸 일컫는 한자 ‘아(芽)’는 ‘시초’나 ‘시작’이라는 뜻으로도 통하지요. 팽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맺힌 그 숱한 겨울눈은 잎이나 꽃으로 피었다가 신록이 되고 열매로 변할 거예요. 딱새와 박새처럼 덩치가 작은 새들이 팽나무 열매를 참 좋아합니다. 어릴 때 저는 팽나무를 찾아오는 새들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들처럼 열매를 따 먹거나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었어요. 동물의 내장을 통과한 팽나무 열매는 그렇지 않은 열매보다 발아력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한 현상을 자연의 섭리라고 배웠습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팽나무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잎을 제 몸에서 떼어 땅에 내려놓습니다. 저는 겨울눈에서 출발한 그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걸 해마다 반복적으로 목격합니다.
도반이자 반려와 같은 팽나무
작가님처럼 저도 가장 작은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갖는 최소 단위인 원자에게서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소와 산소와 철과 같은 원소들은 먼 옛날 초신성 폭발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한 문장을 통해 만물의 생성과 소멸, 동식물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수긍하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원자는 더는 흩을 수 없는 걸까요? 지구와 우주의 가장 마지막 존재인 걸까요? 아마도 아닌가 봅니다. 양성자 내부에 더 근본적인 입자가 숨어 있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하니까요.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알갱이, 쿼크(quark)가 있다고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다 알 수 없지 않냐고 칼 세이건은 질문과도 같은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쿼크야말로 궁극의 기본 입자인지, 아니면 쿼크도 더 근본적인 입자들로 구성돼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물질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언제까지 물질을 둘로 쪼개야 하는 걸까? 우리는 과연 가장 근본이 되는 입자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기본 입자를 찾는 행진은 끝이 없이 계속될까? 이것이야말로 현대 과학의 근본 문제들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인 것이다(앞의 책, 437~438쪽).”
저 역시 이 근본적인 문제에 자주 봉착합니다. 자연에서 가져온 식물을 실험실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유전자를 분석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식물을 만나러 갈 때 저는 응당 그 장소에 맞는 복장을 합니다. 수중식물 찾으러 갈 때는 입는 장화를, 산정에 사는 고산식물 만나러 갈 때는 한여름에도 바람막이 외투를, 구상나무나 주목과 같은 상록수를 겨울에 대면하기 위해선 아이젠을 착용합니다. 실험실에서는 왼쪽 가슴 주머니에 제 영어 이름이 파란색 실로 새겨진 흰 가운을 입어요. 때로는 마스크와 보안경을 빈틈없이 쓰고 장갑도 두 겹씩 낍니다. 실험실에는 독하고 위험한 물질이 자연에서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대부분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식물의 유전정보를 읽으려고 저는 실험대와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합니다. 대체로 괴롭거나 막막한 일입니다. 식물을 죽이고 훼손해야만 실험 자체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싱싱한 팽나무 이파리를 영하 190℃에 가까운 액체 질소로 얼리거나 바싹 말려 바스러뜨려야 합니다. 그 초록의 가루를 독성 물질에 녹여 세포벽을 제거하고 나야 DNA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순수한 DNA만 따로 추출해서 분석 장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합니다. 그렇게 얻은 1차 데이터를 컴퓨터로 옮기고서야 해석에 본격 돌입합니다.
그 정보를 판단하고 인정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알파벳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반드시 배우는 ‘A, C, G, T’입니다. 체내 영양소가 특정한 모양으로 결합한 복합 분자인 아데닌과 사이토신과 구아닌과 티민의 약어이지요. 이들 네 가지 화학물질의 배열로 유전정보는 결정됩니다.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이진법으로 구동되듯이 생명체는 일명 사진법(四進法)으로 작동합니다.
생물체가 지닌 유전정보를 ‘게놈’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먹고 마시는 쌀 한 톨과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은 체내에서 흩어졌다 다시 모여 영양소로 변합니다. 이들 원소는 유전자를 만드는 핵심 재료입니다. 식물의 게놈은 동물의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똑같은 배열을 수만 번 반복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장들을 사이사이 끼워 넣는 전술로 식물은 유전자의 해석을 어렵게 만들어요. 인간의 게놈 분석이 얇은 그림책 읽기라면, 식물의 게놈 분석은 벽돌 두께의 대하소설을 독파하는 일과도 같을 거예요. 저는 팽나무에 깊이 파고들었지만 아직도 잘 알지 못합니다. 유전자만은 형편없을 정도로 모릅니다. 팽나무는 저보다 유전자의 총 개수가 월등히 많아요. 제 것이 2만여 개일 텐데 팽나무는 3만 개에 달합니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유전자라도 식물은 일단 품고 삽니다. 미지의 위험으로부터 방어해야 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유전자 조합이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함이지요. 덕분에 식물은 이동하지 않고도 자력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갖은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생존하고 성장합니다. 반대로 인간은 필요한 것만 남기는 식으로 유전자의 수를 줄였습니다. 그 대신 식물에 의존하거나 기구를 쓰고, 개체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보편적으로 알고 있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생명체의 욕망은 무척 큽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전히 작가님의 가슴 한쪽에 남아 있지요?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가 계시던 수리실의 그 많은 기계 부품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저는 죽음이라는 것이 ‘A, C, G, T’라는 규율로 묶여 있던 원자가 사슬을 풀고 다시 자유로운 탄소와 질소 원자로 돌아가는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대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도바람꽃이 피어도 기쁘지 않다
사실 저처럼 생물학 분야의 종사자들은 멸종을 말하며 반대로 신종의 출현을 희망합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 행성에서는 생명의 진화가 가능했을 테니까요. 지금처럼 우리가 두 발로 서서 걷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생각과 웃음을 가진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분명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만이 있습니다. 만약 초기 생명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복제만 반복했다면 작가님과 저는커녕 팽나무도 탄생하지 못했겠지요. 제가 식물을 탐구하고 궁금해하는 배경에는 아주 먼 조상이 남긴 유전자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작가님 말씀처럼 저의 뿌리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시도이겠지요. 하지만 작가님, 저도 작가님처럼 그것만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어디로 흩어진 걸까요.
“형체도 없이 다만 한 줌 무더기가 되고 말 때 그럴 때 인간은 어디에 있다고 해야 좋으니? 무엇으로 있다고 해야 좋으니? … 영혼은 어디에 있니? 어디에 있다고 믿어야 좋으니?(〈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창비, 26쪽, 2014)” 십여 년 전에 나온 작가님의 소설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기계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애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애자의 딸 ‘나나’입니다.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다던 나나는 아기가 생기고 나서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다”라고요. 저는 이것이 종(縱)으로는 조상과 연결되어 있고 횡(橫)으로는 동시대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하는 문장이라고 감히 판단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목이 특히 좋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2026년 3월1일
미국이 이란을 공습했습니다. 2026년 2월28일의 일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전쟁 때문에 마음이 엉망입니다. 대낮에 미사일이 하늘에서 초등학교를 조준해서 내리꽂혔다고 합니다. 어린아이 168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오전반 수업을 마치고 가족을 기다리거나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가 대부분이었다 합니다. 아이들이 피폭을 당해 죽었고, 남은 가족이 오열하며 쓰러지는데 몹쓸 일을 저지른 미국은 모른다고 잡아뗍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처참히 죽었습니다. 국가에 소속된 어른들은 침묵합니다. 입으로 정의를 말하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던 어른들이, 한순간에 아이들의 목숨이 허공에 흩어졌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입술을 깨뭅니다. 생물학적으로 제가 다 자란 사람이란 게 지독하게 부끄럽고 밉습니다.
2026년 3월12일
너도바람꽃이 활짝 피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유소의 기름값 상승과 주가 하락을 걱정하면서도 지구 한쪽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춘양에서, 태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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