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를 놓친 인간이 해야 할 일 [임보 일기]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가 4월17일 포획되어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번식시키거나 더운 여름에 얼음을 주는 장면 정도로 보도자료를 냈지만 이제 그런 소식은 식상하다. 요즘 동물원과 관련한 키워드는 단연 ‘탈출’이다. 이번에는 두 살짜리 늑대가 탈출한 것을 두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원”했다.
가두어 기르는 야생동물이 탈출하는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근대 동물원이 생겨난 후에 동물원 탈출 사고는 지금까지 꾸준히 일어났다. 동물원의 속성은 야생동물을 원래 서식지에서 강제로 잡아와 도시 혹은 근교에 울타리를 쳐놓고 가두어둔 채 구경하는 것이다. 본디 동물의 필요에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환경을 바꾸도록 진화한 야생동물을 가두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탈출은 전제되어 있다. 빠삐용처럼 ‘나가야지’ 하는 계획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문을 제대로 닫지 않거나 울타리가 허술하면, 즉 나갈 수 있는 조건이라면 동물은 나간다.

8년 전 탈출했다 사살당한 퓨마에게도 그랬듯 ‘맹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사나울 맹(猛)에 짐승 수(獸)를 쓴다. 보통은 식육목 포유류에 많이 쓰는 말인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말이기도 하다. 사나운 짐승이라니. 어떤 동물도 하루 종일, 평생을 사나운 상태로 살지 않는다. 사나워질 일이라는 것은 고기를 먹는 포유류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누구와 싸우거나 거리를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원래 사나운 짐승은 없다. 그저 인간이 어떤 동물을 무서워할 뿐인 감정을 특정 종에 덮어씌운 말에 지나지 않는다.
늑대가 탈출하자 “살리라”는 댓글이 집중적으로 달린다. 고라니나 멧돼지, 까치 같은 동물이 매년 수십만 마리씩 총에 맞아 죽는 일은 사건도 되지 못한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동물이라고 정부가 법으로 붙인 딱지는 죄책감에 면죄부를 준다. 자유롭게 산하를 뛰고 날던 ‘나쁜 동물’ 수십만 마리가 총에 맞아 죽는 동안, 동물원에 평생을 갇혀 구경거리가 되던 ‘선한 동물’ 한 마리가 총에 맞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도 이상하다. 탈출한 늑대는 죽여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이 가두었을 때부터, 탈출하면 죽을 수 있는 운명 속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 늑대가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혹여나 생포된다면 동물원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늑대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 그저 살리라는 외침은 멀리서 지켜보는 이의 마음에만 위안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두지를 말자고 해야 할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동물원에서 태어나는 동물이 더 없도록 하자고 할 일이다. 그러니까 늑대 하나를 잡느냐 못 잡느냐보다 중요한 일은 동물원에 살고 있는 잠재적 탈출-사살 대상인 동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에서 구색을 갖춘 동물원은 대개 공영 동물원이다(동물원처럼 보이지도 않는 ‘실내’ ‘체험’ 같은 말이 붙은 동물원은 민영이다). 공영 동물원은 대개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운영한다. 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야생동물의 존재론적 본질은 각각의 개체가 그 환경과의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생동할 때 성립한다. 이 거짓인 공적 역할을 포기한다면 참인 공적 역할로는 무엇이 가능할까?

나는 공영 동물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제안한다. 이미 사람이 가두어 길러 다시 야생으로 갈 수 없는 동물을 보호하는 일이다. 동물의 처지를 중심에 두고 야생동물을 돌보며, 우리 사회가 동물원이라는 야만을 저질렀던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동물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 기능이다. 야생동물 농장과 동물원의 복지 기준은 점점 높아질 테고 우리 사회의 규범에 어긋나는 동물원 시설도 많아질 것이다. 여기에 이미 살고 있는 동물들을 감당할 책임이 사회에 있다면, 그 공적 역할을 기존 공영 동물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개체수를 줄여야 하고 유일한 방법은 번식을 중단하는 것이다. 당장 실행 가능한 이 방안을 선택할지는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우리는 과연 늑대 탈출 사고에서 배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죽고 죽이는 비용을 몇 번이나 더 치러야 할까?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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