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수제맥주는 다 어디로… ‘반짝 히트’였나, ‘일시적 암흑기’인가
'수제맥주 신화' 곰표 밀맥주, 생산 중단 결정
침체 빠진 업계 현실 반영… 실적 악화 '뚜렷'
하이볼·위스키 중심 '주류 트렌드' 변화 불구
수제맥주는 편의점에만 의존… 품질 하락도
"다양성 등 본연 가치 되찾고 새 판로 개척을"

6년 전 등장한 '곰표 밀맥주'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신화였다. 출시 사흘 만에 초도 물량 10만 캔이 완판됐고, 3년 동안 무려 6,000만 캔이 팔렸다. 하지만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 됐다. 상표권자인 대한제분(밀가루 제조업체)이 맥주 사업 자체를 접기로 한 탓이다. 한때 '국민 맥주'로까지 불렸던, 그러나 이제는 '단종 제품' 신세가 된 곰표 밀맥주는 남은 물량 소진 이후엔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됐다. 대한제분은 2023년까지 곰표 밀맥주 제조를 담당했던 '파트너' 세븐브로이(수제맥주 기업)와 지난 3년간 기술 유출 갈등을 빚었는데, 그동안의 분쟁을 원만히 마무리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속사정은 더 복잡할 것이라는 게 주류업계의 중론이다. 수제맥주 시장 침체로 인해 곰표 밀맥주의 인기 역시 예전 같지 않아서다. 매출 감소와 시장 성장성 둔화가 겹치는 상황인 만큼, 대한제분 입장에선 세븐브로이와의 분쟁을 이어 가면서까지 맥주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곰표 밀맥주에만 닥친 현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2, 3년 전 편의점 매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수제맥주들은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많던 수제맥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짧았던 황금기… 거품 꺼지자 줄도산 위기
2010년대만 해도 수제맥주는 아는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취향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2020년 곰표 밀맥주 출시를 계기로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 구두약, 치약 등 이종 산업과 협업한 이색 맥주도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랑할 만한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2021년엔 곰표 밀맥주가 대형 제조사들의 맥주 브랜드를 제치고 '편의점 매출 1위'에 올라선 데에서 보듯,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 하이볼과 위스키 등 중심으로 주류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기세도 꺾이기 시작했다. 현재는 오래전부터 품질에 공을 들이고 '맛'을 강조하는 정통 수제맥주에 초점을 맞춰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이에 따라 '편의점 판매' 위주로 성장한 수제맥주 기업들은 줄도산 위기에 빠졌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을 개척한 1세대 기업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지난달 21일 파산하면서 업계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지난해 8월 회생 절차를 신청하고 제3자에 인수·합병(M&A)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결국 8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됐다.
2016년 설립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이듬해 내놓은 '첫사랑 IPA'의 히트와 함께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성수동 페일에일' '서울숲 수제라거' 등 개성 있는 수제맥주를 잇따라 선보이며 맥주 시장에 자리 잡았다. 이에 설비를 확장하고 사업 규모도 키웠지만, 주류 트렌드 변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곰표 밀맥주 원조, 이름 바뀌니 몰라봐"
대한제분과의 파트너십이 깨진 뒤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세븐브로이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9년까지 적자 행진을 하던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과 상표권 계약을 맺고 제조한 곰표 밀맥주의 메가톤급 흥행 덕분에 2021년 11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나 2023년 계약 종료 후 '곰표'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자 실적이 떨어졌다.
특히 대한제분이 제주맥주와 새로 손을 잡고 '곰표 밀맥주 시즌 2'를 출시한 게 결정적 타격이었다. 세븐브로이는 기존의 맥주 레시피는 그대로 살리되 곰 대신 호랑이 캐릭터를 앞세운 '대표 밀맥주'를 새롭게 선보였지만, 예전 수준의 수요를 끌어오지는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곰표'라는 상징성으로 맥주가 잘 팔렸던 건데, 곰표 이름을 빼니 똑같은 맥주라 해도 (소비자에겐) 이전만큼의 매력이 없어진 것"이라며 "더군다나 대한제분에서 똑같은 이름에다 맛도 유사한 (곰표 밀맥주) 시즌 2가 나오니, (실제로는) '대표 밀맥주'가 원조라는 걸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대한제분의 새 파트너 한울앤제주(옛 제주맥주) 역시 수요 감소로 적자가 쌓이고 있다. 수제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2021년, 이 회사의 매출은 284억 원에 달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매년 줄어들었다. 작년에는 138억 원까지 떨어졌다. 그사이 최대주주는 '엠비에이치홀딩스 외 2인'에서 2024년 '더블에이치엠'을 거쳐, 지난해 유상증자에 참여한 '한울반도체'로 계속 바뀌었다. 또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브롱스를 운영하는 와이브루어리도 실적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편의점 판매' 한계… 무리한 투자도 자충수
수제맥주의 부진을 두고 주류 업계에선 '이미 예견됐던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대형 마트와 유흥시장 등 전국에 유통망을 두고 대량 생산·납품을 해 온 대기업 맥주와 달리, 수제맥주의 유통 판로는 편의점에만 한정돼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전략의 실패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대형 마트나 유흥시장에 진입하려면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하는데, 소규모 브루어리 중심인 수제맥주 기업은 어차피 편의점 위주로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볼과 위스키가 부상했고, '신흥 강자'에 밀려 편의점 매대에서 빠지고 나니 소비자와 만날 기회도 급감했다. 트렌드의 변화가 불러온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뜻이다.
다만 이런 요인이 전부는 아니다. 편의점 입점 과정에서 수제맥주 특유의 매력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맥주가 대중적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가볍고 청량한 '라거'에 집중했다면, 수제맥주는 원료의 변주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하지만 시선을 끌기 위해 맛보다는 디자인, 제품명 등 시각적 요소에만 집중한 제품이 쏟아지면서 경쟁이 과열됐고, 소비자의 피로감도 커졌다. 편의점 유통 구조를 신경 쓰다 보니 품질마저 떨어졌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판매 가격을 맞추기 위해 부원료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원가 절감에 나서고,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살균 공정을 거치면서 수제맥주의 강점인 맛과 품질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수제맥주가 '4캔 1만 원' 등 편의점 할인행사 단골 상품이 되며 단기간 재미를 보는 '반짝 상품'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2019년 시작된 '노 재팬(No Japan)' 운동으로 수요가 크게 줄었던 일본산 맥주가 2, 3년 전부터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제맥주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아울러 수제맥주 기업의 무리한 설비 투자도 자충수가 됐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경우 2019년 경기 이천시에 대량 생산을 위한 브루어리를 만들었고, 2021년엔 약 8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해 이천 제2브루어리까지 준공했다. 세븐브로이도 사업 확장을 위해 2022년 300억 원을 들여 전북 익산시에 공장을 지었다. 두 회사 모두 수제맥주의 장기 성장을 기대하며 몸집을 불렸으나, 수요 예측에 실패해 고정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반짝 히트로 끝? 제2 전성기?… "해법은 초심"
올해 시장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수제맥주뿐만 아니라 소주, 대기업 맥주, 막걸리 등 주류 시장 전체가 수요 감소로 침체에 빠졌다. 국세청의 '202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전체 주류 출고량은 315만1,371㎘로, 전년 대비 2.64% 감소했다.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소 수준이었다. 2022년(326만8,623㎘)부터 3년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2025년과 2026년 역시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다. 회식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데다 술을 덜 마시는 라이프 스타일이 장기적인 소비 변화를 유발함에 따라, 수제맥주 판매 역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중적 수제맥주는 이대로 '반짝 히트 상품'에 머물게 될까. 아니면 잠깐의 암흑기를 거친 뒤 '제2의 전성기'를 열게 될까. 주류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판매 방식으로는 어렵다"며 "개성 있는 맛, 다양성이라는 수제맥주 본연의 가치를 되살리고 편의점만이 아닌, 새로운 판로를 찾아 '충성 고객'을 확보해야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답은 결국 '초심의 회복'에 있다는 진단이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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