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떠난 중국인들…“AI 미국 승리 장담 못한다”

■ 실리콘밸리가 흔들리고 있다
2023년 여름, 세계 최고의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서 인턴십을 막 마친 중국인 청년이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판즈정(Zizheng Pan). 바로 직전 그는 엔비디아가 제안한 정규직 채용을 거절하고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판즈정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엔비디아 대신 선택한 직장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중국의 작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2025년 1월, 그 스타트업의 이름이 전 세계 뉴스 헤드라인을 동시에 뒤덮었습니다. 딥시크(DeepSeek)였습니다. 판즈정은 세상을 뒤흔든 딥시크-V3와 딥시크-R1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인턴십 멘토였던 엔비디아의 수석 연구 과학자 위즈딩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결정은 지금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판즈정의 사례는 제가 최근 몇 년간 목격해온 매우 전형적인 흐름입니다. 최고의 인재들이 반드시 미국 기업에서만 성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판즈정 혼자가 아닙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고위 연구직을 내려놓고 바이트댄스의 차세대 LLM 개발을 주도하는 우융후이(Yonghui Wu), 오픈AI를 그만두고 텐센트 AI 개발에 합류한 야오순위(Shunyu Yao), 오픈AI를 관둔 뒤 선전에서 로봇 스타트업을 세운 로저 장(Roger Zhang), 구글 딥마인드에서 알리바바로 자리를 옮긴 저우하오(Hao Zhou) 등 중국계 핵심 연구자들의 귀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AI 인재의 블랙홀로 불리던 실리콘밸리의 파이프라인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이 돌아가는 이유는 애국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중국 AI 생태계가 이제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무대가 됐고 베이징과 항저우, 선전의 연구소에서 세계 수준의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이상 차선책이 아닌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 AI의 무대는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커진 걸까요? 그 답을 찾으려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중국의 교실로 가야 합니다.
■ 딥시크 개발자들이 초등학생이던 해
2017년 중국이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국가 전략으로 선포하던 그해, 인공지능은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되었습니다. 딥시크를 만든 20~30대 젊은 인재들이 바로 그 교실에서 AI 리터러시를 체득하며 성장한 세대입니다.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전 국민의 AI 감수성을 바닥부터 끌어올리는 인재 육성 정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설계한 것은 단순히 'AI를 일찍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초등에서 시작해 중고교, 대학, 석·박사로 이어지는 단계별 피라미드를 완성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난이도를 높이고, 반복과 심화를 거듭하며, 흥미 기반 실습으로 개념을 몸에 익히는 이른바 '나선형 교육 구조'입니다. 어린 시절 AI를 놀이처럼 접한 아이가 중고교에서 원리를 이해하고, 대학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구조. 국제 교육계에서는 이미 이런 말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서 AI를 배우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최근에는 초·중등학교 AI 리터러시 향상 지침을 마련해 학년별로 성과 기준을 제시하고, 학습 내용의 전국 단위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세상에 나타나기도 전에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이 미래 먹거리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을 예견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의 AI 인재 육성 전략은 치밀했고, 놀랍도록 집요했습니다.
■ 입시 제도를 뜯어고친 나라
가오카오(高考)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대입 시험과 같은 중국의 대학 입학시험 제도입니다. 중국은 이 입시 제도 자체를 뜯어 고쳤습니다. 이공계 진입을 유도하는 새 입시 체계('3+1+2' )를 도입해 기초과학 인재를 구조적으로 대량 양성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국어·수학·외국어는 모든 학생이 반드시 봐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여기에 물리를 의무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나머지 두 과목만 본인이 고르는 구조입니다. 우리나라 수능으로 치면 과학탐구를 사실상 필수로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이공계 기초 체력만큼은 모든 학생이 갖추도록 제도 자체를 설계한 겁니다.
그 결과일까요? 중국의 대학 AI 학과는 2019년 215개에서 지난해 626개로 폭증하며 인재 저변을 넓혔습니다. 단순히 한 명의 천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AI와 함께 숨 쉬는 토양을 만든 것입니다.
■ 떠난 인재가 스스로 돌아오게 만든 법
중국은 해외로 나간 인재를 불러들이는 전략도 구사했습니다. 과거 중국 인재들은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3년 사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해외로 나간 최상위 인재의 자국 잔류 비율이 2019년 11%에서 2022년 28%로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주거, 자녀 교육, 연구비까지 국가가 통째로 설계한 단계별 성장 경로가 이들을 다시 불러들인 것입니다.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돌아오고 싶게 만든 게 아니라, 돌아오지 않을 이유를 하나씩 없애버린 겁니다.
칭화대와 베이징대 같은 최상위 대학들은 해외 고급 인재에게 이른바 종합 혜택을 제시합니다. 고액 연봉은 기본이고, 주거비와 이전비, 초기 연구비에 독립 연구실까지 보장됩니다. 배우자의 취업 자리와 자녀 교육 지원까지 모두 한 묶음으로 제공됩니다. 가족 전체의 삶을 통째로 설계해 주는 이같은 파격 제안은 우수 인재를 중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직접 나섰습니다. '고급인재 비자'를 통해 최고급 인재에게 장기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동반 가족의 비자, 의료, 주택 관련 행정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습니다. 미국에서 누리던 생활 수준을 중국에서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깔아준 것입니다.
■ 대학과 기업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화웨이, 바이두 같은 기업들은 단순히 채용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대학 교과과정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기업 현장에서 쓰는 인공지능 관련 기술 방식 그대로 학생들이 익힐 수 있도록 교육 인프라를 직접 깔아준 겁니다. 졸업장을 받는 순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준비된 인재'를 기업이 학교 안에서 직접 길러낸 셈입니다.
더 나아가 중국은 기업과 대학, 연구 기관과 지방정부를 하나로 묶는 '중국 인공지능 산업연맹(AIIA)'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현장의 수요가 교육이 되고, 교육받은 인재가 다시 현장으로 흘러가는 구조를 만든 건데 마치 물이 순환하듯, 인재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생태계를 국가가 설계한 겁니다.

■ 중국 AI, 이미 세계 1위가 된 것들
이제 숫자를 직시해 봅시다. 스탠퍼드 2026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I 논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3.2%. 미국(9.2%)의 2배가 넘습니다. 논문 인용 수에서도 중국은 전체의 22.6%를 차지하며 유럽(20.9%)과 미국(13.0%)을 동시에 넘어섰습니다. 단순히 논문을 많이 쓴 게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이 참고할 만큼 질 높은 연구를 쏟아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AI 분야 최다 인용된 상위 100편을 보면 미국이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2위로서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인재 성장 속도는 더 놀랍습니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AI 연구자 규모는 연평균 30%씩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상위 100명 AI 전문가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계입니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중국이 글로벌 AI 인재 지형의 중심축으로 올라선 겁니다.
더 주목할 숫자가 있습니다. 과거 해외로 나간 중국 최상위 인재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국 잔류 비율이 2019년 11%에서 2022년 28%로 뛰었습니다. 판즈정처럼 실리콘밸리 대신 중국행을 택하는 인재들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이 숫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고, 떠난 인재를 다시 불러들이고, 기업이 교실 안으로 들어온 10년의 결과물입니다.
■ 우리에게 남는 질문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 기술의 산실은 미국입니다. 하지만 스탠퍼드대가 발표한 '2026년 인공지능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최상위 AI 모델 간 성능 격차가 39점 차이로 좁혀지며 이른바 '기술적 평준화'가 진행 중입니다. 중국이 매우 위협적으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다시 우리를 돌아봐야 할 차례입니다. 세계 AI 강국 3위를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는 중국이 교실에 AI 씨앗을 심던 2017년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중국이 정부와 기업, 대학을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묶어 10년의 공력을 쌓아올리는 동안, 우리는 혹시 장기 국가 전략도 없이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결과물은 단기간에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를 탄생시킨 '10년의 축적된 시간'만큼은 결코 건너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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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재 기자 (windo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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