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야심에 김정일 이어 김정은 독대 꿈꾸나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2026. 5. 3.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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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109회>]
정동영, 기밀 폭로 논란 속 ‘통일은 폭력적’ 발언
비난 쏟아져도 아랑곳 않고 북한에 구애 메시지
2005년 김정일 독대 계기로 지지율 급반등 경험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공식 재현 노리는 듯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005년 6월 6·15 공동 선언 5주년을 계기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獨對)했다. 이를 계기로 중단됐던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됐으며 이는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에서 다시 통일부 장관을 맡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독대를 통해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이를 자신의 차기 대권 도전에 활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통일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DMZ 출입 문제와 북한 핵시설 언급 등으로 한미 간 갈등을 촉발한 데 이어 ‘통일은 한편으로는 폭력적’이라고 함으로써 파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 장관으로 인해 이재명 정부 내 정책 조율 문제까지 불거지며 외교·안보 라인의 균열 우려도 제기됩니다.

그런데 정 장관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논란을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29일 ‘통일’과 ‘폭력’을 결합시킨 메시지를 낸 것은 다분히 계획적으로 보입니다. 통일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발신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마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고 알리려는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보가 개인의 야심을 담은 정치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독대 경험을 재현해 정치적 존재감을 강화, 차기 대선에 나가려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2005년 김정일 독대… 정치적 전환점

정 장관이 통일부 장관이 된 후, 가장 많이 얘기하는 과거의 성과는 2005년 9·19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김정일 독대(獨對)와 개성공단 사업이라고 합니다. 2005년 6·15 공동선언 5주년을 계기로 방북한 정 장관은 당시엔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5년 6월 17일 평양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단독 면담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맨 오른쪽)이 정 장관과 김위원장의 식사에 배석해 건배하고 있다./통일부

김정일은 그때 6자회담을 거부하고 있었는데, 정 장관과의 단독 면담 이후 복귀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김정일은 “미국이 우리를 인정한다면 회담에 나설 수 있다”고 언급하며 핵 포기 의사까지 내비쳤습니다. 김정일은 또 나중에 거짓말로 드러나긴 했지만,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유효하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면담은 즉각 국내외 모든 신문과 방송의 톱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주변 4국에 면담 결과를 긴급 설명하며 외교적 후속 조치에 나섰습니다. 외교부는 토요일임에도 불구, 긴급히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했습니다.

제 목 : 정동영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관련 주변 4국에 대한 결과 설명 및 협의. 발표 일시 : 2005.6.18.(토)

1.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6.17(금)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것과 관련하여, 외교통상부는 이 면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주변 4국에 대해 긴급히 면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정부 고위 관계관을 파견하는 것을 추진 중임을 알려 드립니다.

2. 미국과 관련해서는 아프리카 지역을 순방 중이던 이태식 차관을 워싱턴에 급파하여 국무부 및 NSC 등 미 행정부 고위선에 긴급히 상세 내용을 설명할 수 있도록 추진 중입니다.(정동영 장관의 평양 방문을 수행했던 박선원 NSC 행정관이 수행 예정)

ㅇ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방한 중인 Christopher Hill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게 6.18(토) 우선 설명한 바 있습니다.

3. 일본 측에 대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6.20(월) 방한하는 만큼 방한 계기로 직접 일본 측에 설명하고 협의를 가질 수 있도록 추진 중입니다.

4. 중국 측에 대해서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중국 방문(6.21(화)-23(목)간)을 수행하기로 되어 있던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일정을 하루 앞당겨 중국을 방문토록 하여 중국 측에 결과를 설명하고,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 협의를 추진토록 할 예정입니다.

5. 러시아 측에 대해서는 정동영 장관을 수행한 바 있는 김원수 정책기획관이 6.18(토)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러시아 측에 설명할 수 있도록 추진 중입니다.

6. 이와는 별도로 외교통상부는 6.18(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및 EU 주한 대사관 측에 대해 정동영 장관-김정일 위원장 면담 결과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7. 아울러 6.20(월) 주한 외교단을 대상으로 관련 내용을 설명할 예정입니다. 끝.

외 교 통 상 부 대 변 인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독대는 6자회담 재개로 이어져 북한 비핵화를 명시한 9·19 공동 성명 에 기여했다. 북핵 6자회담의 대표들이 9·19 성명 발표 후, 손을 모아 웃고 있다. 왼쪽에서 네 번째가 송민순 한국 측 대표, 그 오른쪽이 김계관 북한 측 대표./연합뉴스

북한 비핵화를 명시한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 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이 성명이 나오는 데 공헌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정동영 장관을 언급해 놓았습니다.

독대 정치적 자산으로

정치인 출신의 정 장관은 김정일 독대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6월 20일 자신의 방북 직후 열린 국무회의를 존재감을 올리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김정일이 미국과의 수교 및 우방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장거리 미사일 폐기 용의를 밝혔다고 공개합니다. “김 위원장이 한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미사일만 갖고 장거리 미사일과 대륙간 미사일은 다 폐기하겠다고 언급했다”고 한 겁니다. 또, 남북이 합의한 경의선·동해선 동시 연결과 관련, 김 위원장이 즉각 재검토 방침을 밝히며 경의선을 우선 연결하자고 했다고 했습니다. 정 장관은 김정일이 “남쪽에서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데 대해 남쪽 정부와 국민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전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정 장관은 2004년 6월 30일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큰 성과가 없어서 고심해 왔습니다. 그가 장관이 된 후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아지면서 취임 이후 약 11개월간 남북 회담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장관을 맡기 전까지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던 그는 초조해졌습니다. 한때 야당의 박근혜 대표와 함께 지지율 선두에 있었으나 7~8% 선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고향 전북에서조차 지지율이 고건 전 총리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그의 측근들은 당에 조기 복귀해 2005년 10월 재·보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김정일 독대를 계기로 이 같은 주장은 사라졌습니다. 그의 지지율은 김정일 독대를 계기로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5년 12월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을 지낸 후,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당 의장으로 복귀합니다. 이후 당내에서 그의 존재감이 올라감으로써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 성공합니다. 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 경험이 그의 친북(親北) 행보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국회의원을 겸직 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고향인 전북을 피지컬 AI 메카로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장관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전북지역 국회의원, 현대차·두산로보틱스·NC AI 등 관련 기업 및 중앙대·한양대 총장과 함께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했다./뉴시스

‘2005년의 재현’ 노리나

정 장관은 2025년 7월 통일부 장관에 재취임 후, 김정은과의 독대를 염두에 두는 듯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 중입니다. 그는 취임 초부터 개성공단 재가동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며,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재설정해 공존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자고 했습니다. 지난해 7월 31일, 공단 폐쇄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개성공단 폐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고 공단 임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조치였지만, 이를 우리 책임으로 몰았습니다. 통일부 명칭 변경 가능성 언급 역시 북한을 의식한 신호로 해석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식인 사회와 야당으로부터 북한에 굴종적이라는 비판을 듣는 것을 훈장으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대권 행보와 연결되는 정책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그의 대권 전략과 연결 짓고 있습니다. 2007년 대선 패배로 역경을 겪은 정 장관이 2030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존재감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권의 유력 소식통은 “정 장관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약 530만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진 바 있다”며 “그는 이를 큰 수치로 여기고 절치부심하며 정치를 해왔는데, 2030년 차기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이를 위해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통해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의 지리멸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만 통과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하에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 기반 다지기 병행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지역 기반 강화에 공을 들이는 모습입니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2025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총사업비 1조원 규모의 ‘전북 피지컬 AI’ 사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 사무실에서 전북 지역 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는 피지컬 AI 사업을 전북으로 가져 오기 위해 산업통상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와 조찬 간담회를 10회 이상 진행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야당의 한 의원은 “피지컬 AI 사업을 전북으로 유치하기 위한 그의 지력과 체력은 놀랄만한 정도”라고 했습니다.

정 장관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정치인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정 장관은 자신이 개성공단을 만든 주역이고, 2005년 어려운 상황에서 김정일을 만나 돌파구를 연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금도 김정은을 만나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정 장관은 자신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얘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1953년생인 정 장관이 2030년 대선에 출마할 경우 77세로 고령의 나이를 문제 삼는 이들이 많지만, 본인은 이를 큰 걸림돌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주변에서는 “외모와 목소리, 체력 등에서 고령 정치인이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다”고들 합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2월 74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것을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열심히 지역구 활동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여전히 ‘김대중 이후 첫 호남 출신 대통령’을 노린다는 분석이 많은데, 북한이 21년 전처럼 그를 도와줄지 의문입니다. 김정은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전제한 군축 회담 제안에도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정 장관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통일부 장관을 그만둘 경우, 오히려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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