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노동·주거·가족 구조가 사람을 혼자 남게 만든다”
● 관계는 줄어든 게 아니라 측정되지 않는다
● 산업구조와 강한 가족주의가 만드는 ‘1인가구’
● 감정보다 먼저 나타나는 ‘무(無)의 상태’
● 같은 원룸에 살아도 다른 경로 걷는 청년들
● 혼자 아니면 결혼, 그 사이의 삶은 왜 보이지 않나
● 죽은 뒤 자신이 어떻게 발견될지 걱정
●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 이제 ‘무덤까지’ 더 생각할 때

혼자 사는 삶은 숫자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통계로는 1인가구의 규모를 알 수 있지만 이들이 매일 어떠한 조건에서 삶을 이어가는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도 말을 건넬 사람이 없고, 식사를 걸러도 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다. 몸이 아플 때도 돌봄과 회복의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며 그에 따르는 시간적·경제적 부담도 스스로 떠안아야 한다.
현대사회의 기본 단위 된 '1인가구'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런 1인가구의 삶을 떠받치는 생활 조건과 구조적 환경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다. 노동과 사회구조 연구에 골몰하다 2019년부터 6년 동안 109명의 1인가구를 심층 인터뷰했고, 그중 56명의 삶을 '필연적 혼자의 시대'(다산북스)라는 책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1인가구를 개인의 선택이나 취약한 상태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노동, 주거, 가족 돌봄의 구조가 어떻게 사람을 혼자 남게 만드는지를 파헤친다. 그의 말에 따르면 1인가구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 아니라 후기 산업사회가 만든 기본 단위에 가깝다.그렇다면 김 교수가 직접 만나 들여다본 1인가구는 어떤 모습일까. 통계로는 포착되지 않는 관계의 결, 혼자 사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상태, 그 삶을 가능하게도 불가능하게도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 답을 듣기 위해 3월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시아센터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개강을 맞아 북적이는 캠퍼스를 지나 들어선 연구실은 바깥의 부산함과 달리 차분한 정적이 흘렀다.
노동과 사회구조를 연구하다 왜 1인가구로 시선을 옮겼나.
"그동안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자, 배달 노동자, 프리랜서처럼 우리가 자주 접하지만 실제 일상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왔다. 당시에는 노동의 변화와 미래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었기에 1인가구는 내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일하고 혼자 살아가는 삶의 형식이 결국 그 안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노동의 변화가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삶의 조건
인터뷰한 109명의 1인가구를 어떻게 만났나."처음엔 소개를 통해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다른 1인가구를 연결해 주는 식으로 인터뷰 대상을 넓혀갔다. 그다음에는 나이와 직업, 소득 분포를 보면서 비어 있는 구간에 해당하는 인물을 의도적으로 채워 넣었다. 내 주변 사람들만 만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새롭게 접촉한 사람들이다."
1인가구와 관련된 통계와 실제 삶 사이에서 가장 크게 어긋나는 지점은 무엇인가.

인터뷰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속얘기를 들었다고 보나.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삶을 그렇게 길게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다. 1인가구는 더하다. 많은 인터뷰이가 자기 일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기존에 답답했던 것, 오해받는다고 느꼈던 것, 어렴풋하게 설명되지 않던 감각들을 한꺼번에 꺼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몇몇 분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1인가구를 '선택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감하나.
"사람은 원래 입체적인 존재다.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고 앞면도 있고 뒷면도 있다. 1인가구 역시 자유로운 부분이 있고, 취약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두 단어만으로 전체를 설명해 버리면 너무 많은 게 가려진다. 일부러 그 프레임을 깨려는 건 아니다. 1인가구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입체적으로 보였다."
중년 1인가구, '관계 재테크 역량' 부족이 문제
김 교수는 특히 청년 1인가구를 하나의 집단처럼 묶어 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책에 실린 분포표를 짚어가며 "젊은 1인가구 내부에도 뚜렷한 층위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비슷한 원룸과 오피스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보충 설명은 이렇다."청년 1인가구는 하나의 집단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크게 갈라져 있다. 고학력에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집단이 있는 반면,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인 청년들도 있다. 이런 청년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특히 프리랜서 청년의 경우 동료나 조직의 보호가 없고 소득도 들쑥날쑥해 일상을 유지하는 자체가 쉽지 않다."
직접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부류를 떠올린다면?
"고소득 중년 1인가구다. 경제 상황은 굉장히 안정적인데 삶이 의외로 단출하고 단조로웠다.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쏟아붓고, 살림 역량은 부족했으며, 식사도 간편하게 해결하는 특징을 보였다. 한 여교수는 오랫동안 커리어 쌓기에 집중하며 살다가 40대가 돼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집밥'을 해주기 시작했다. 생선을 굽고 밥을 짓는 등 자신을 위한 식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분도 결국 '부모가 돌아가시면 내 장례는 누가 치르지? 내 삶의 마무리는 누가 함께하지?' 같은 걱정을 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커리어와 경제적 준비에 몰두해 왔구나. 정작 중요한 관계에 대한 준비는 너무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중년 1인가구 상당수가 관계에 대한 재테크 역량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돈을 모으고 경력을 쌓는 데는 능숙하지만 함께 늙어갈 사람을 남기는 일에는 서툴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요즘 현대인들이 '손절'과 '거리 두기'를 너무 쉽게 말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점으로 꼽았다. 누군가를 잘라내는 일에 익숙해진 삶은 언젠가 자신을 지탱해 줄 관계까지 함께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의 필연성 만드는 구조적 요인
자발적 비혼 인구가 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인가구를 사회구조의 산물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물론 개인의 선택에 의한 1인가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20~30대 여성 가운데는 비혼을 '분명한 선택'으로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그 선택은 완전한 진공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선택은 이미 구조가 만든 조건 위에서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건 산업구조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전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는 이미 짜인 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비스업과 콘텐츠 생산이 중심인 시대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성향, 취향, 감각, 역량 같은 것이 곧 원자재가 된다. 그러니 개인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그 개인은 혼자 살아도 되는 방향으로 점점 길든다. 함께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타협과 희생을 점점 더 어렵게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변화와 연결돼 있다."
‘혼자'의 필연성을 만드는 가장 결정적 조건은 뭔가.
"산업구조다. 그다음은 한국 사회의 강한 가족주의다. 가족이 너무 강력한 책임을 부여한다. 이를 위해 집도 사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부모도 돌봐야 하고, 사교육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는 그 부담을 충분히 나눠 지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또 하나는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곧바로 혼자 산다고 여기는 식의 사고 말이다. 실제로는 친구와 살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공동 거주도 가능하다.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는데 늘 결혼 아니면 완전한 혼자라는 식으로만 인식해서 삶의 경로가 너무 좁아져 버린다."
그렇다면 1인가구는 하나의 정체성이라기보다 누구나 거쳐갈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는 뜻인가.
"그렇다. 1인가구는 속성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태어날 때부터 1인가구인 사람은 없다. 청년기에는 독립하기 위해, 중년기에는 일 때문에, 노년기에는 사별이나 돌봄의 단절 때문에 혼자 살게 된다. 그러니 특수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애 어느 구간에서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형태로 봐야 한다."
1인가구의 식사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데, 그만큼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 아닌가.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순간의 감정을 흔히 '외로움'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특별한 감정보다는 오히려 '무(無)의 상태'로 본다. 외로움이나 두려움 이전에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이건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매일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나의 감정을 반사해 줄 존재가 없다. 오늘 힘들었든, 화가 났든, 우울하든 집 안에 그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그냥 처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문다."
1인가구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어떤 것인가.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내가 어떻게 발견될지, 어떻게 기억될지 어떤 식으로 말해질지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는 체면과 수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미디어를 통해 1인가구의 비참한 죽음이 반복적으로 재현돼 왔기에 나도 그렇게 죽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독립성에 대한 욕망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아픈 상황에서도 죽은 뒤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굉장히 강하다."
죽음 이후까지 개인에게 남겨진 책임
1인가구의 사후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보나."죽음도 결국 사회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돌봄이 가족 안에서만 해결되지 못하고 요양 제도로 넘어왔듯, 장례와 사후 정리 역시 점점 더 공적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다. 단지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남은 물건,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 집 정리 같은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품위 있는 죽음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만큼 앞으로는 더욱 체계적이고 다각적인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복지가 진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면 이제는 '무덤까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1인가구를 보편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다. 특정 계층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1인가구인 것은 아니고, 누구나 삶의 어느 구간에서는 혼자 살게 될 수 있다. 1인가구가 안고 있는 문제는 특정 계층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하고 있다."
1인가구가 이미 사회의 주요 형태가 됐는데 제도는 여전히 가족 중심에 머물러 있다. 지금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지금 제도는 기본적으로 가족 단위로 설계돼 있기 때문에 1인가구는 그 구조 바깥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만 해도 배우자가 있으면 혜택이 확장되는데 1인가구는 그만큼의 보장을 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혜택을 개인에게 직접 주거나 부모에게 이전할 수 있게 하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기 돌봄을 위한 휴가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돌봄 휴가가 가족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1인가구도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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