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복궁 불’ 전날부터 났는데…연휴 앞 제2의 ‘삼비문’이 불안하다 [세상&]
CCTV 사각지대·늦은 대응 드러나
“예방·관리 강화 필요” 지적 확산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불은 이미 전날부터 나고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게 더 문제 아닌가요?”
노동절을 앞둔 지난달 30일, 서울 경복궁은 연휴를 앞두고 외국인과 내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궁궐 곳곳은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 붐빈 가운데 자선당 인근 삼비문 앞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출입이 통제된 채 삼비문에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해당 문으로 통과하려다 막힌 관광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현장 관리인에게 우회로를 안내받는 모습이었다.
런던에서 온 앤디(43) 씨는 현장을 둘러보며 “오늘 처음 방문해서 화재 소식은 몰랐다”면서도 “해외 문화유산은 입장할 때 짐 검사나 보안 절차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경복궁은 그런 게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터나 성냥 같은 물건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고, 목조건물은 한 번 타면 복원이 어렵다”며 “예방 중심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복차림으로 궁을 둘러보던 박모(36) 씨 역시 비슷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씨는 “통행이 금지돼 있어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안내원이 복구 중이라고 하더라”며 “처음엔 행사 때문인 줄 알았지 화재가 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관리요원도 많지만 궁이 워낙 넓고 출입 인원도 많다 보니 CCTV 사각지대는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발견하더라도 즉각 대응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장 관리 인력도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복궁 궁능유적본부 소속의 현장관리원은 “외국인들이 왜 이쪽은 통행이 안 되느냐고 많이 묻는다”며 “훼손된 흔적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관광객들도 길이 막혀 동선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계속 안내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복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는 단순 사고를 넘어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새벽 경복궁 자선당 인근 삼비문 쪽문에서 발생한 화재는 CCTV 분석 결과 전날인 27일 오후 4시께 이미 연기가 포착됐지만 실제 인지와 대응은 약 13시간 반 뒤에야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기가 처음 확인되기 약 20분 전 현장 인근 CCTV 사각지대에 한 남성이 1분가량 머문 사실도 확인됐지만 해당 인물은 이미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감시는 있었지만 대응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기자가 30일 삼비문 일대를 둘러보니 CCTV 사각지대는 예상보다 넓게 형성돼 있었다. 삼비문을 정면으로 비추는 CCTV는 인근에 단 1대뿐이었고 약 1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그마저도 중간에 나무가 시야를 일부 가리는 구조로 전 구역을 온전히 포착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앞서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은 정모(36) 씨는 “경복궁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창피하다”며 “일반 시설 훼손과는 다른 문제인 만큼 처벌도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용의자가 해외로 출국했다는 점도 황당하다”며 “이런 식이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미국인 관광객 필립(45) 씨 역시 “문화유산은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며 “이처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면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초기 ‘자연발화’ 언급과 관련해 “자체 판단이 아닌 소방당국의 현장 추정을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경찰과 소방은 실화 가능성을 포함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장 관리 체계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삼비문 인근에는 별도의 화재 감지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일부 구조물이 소실됐다. 경복궁 내부에는 약 400여대의 CCTV가 운영 중이지만 전각 중요도에 따라 설치 밀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삼비문 일대는 비교적 최근 복원된 구간이라 주요 전각보다 감지 체계가 촘촘하지 않은 편”이라며 “CCTV도 있지만 나무 등에 가려 시야가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순찰 중이던 안전관리요원이 연기를 보고 약 15~20분 내 자체 진화했고 이후 소방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가유산청 ‘2024년 국가유산 재난발생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유산 재난 피해는 총 1141건이며 이 중 화재는 56건이다. 화재는 특정 시기에 집중되기보다 꾸준히 반복되는 ‘상시 위험’ 양상을 보인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추가 CCTV나 화재 감지기 설치는 예산 부족으로 어렵고 내년도 예산 반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기존 자원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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