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밖으로 불러내는 맛…벨기에 아침 식사의 8할은 마요네즈[나는 마담 부르주아]

최윤정 2026. 5. 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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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아침을 여는 다양한 스프레드 코너. 필자 제공


한때 사람의 생활 패턴을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나누고, 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따져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형 인간은 부지런함의 표본, 저녁형 인간은 어딘가 자유롭지만 불규칙한 삶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나는 꽤 자랑스러운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이면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진다. 다만 흔히 떠올리는 ‘자기계발형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명상이나 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의 식사 타이머가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성대한 내 아침 테이블 앞에서 ‘공복 유산소 운동’은 애초에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아침부터 그렇게 먹을 게 들어가?”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나는 되묻는다. 아침이야말로 가장 맛있게 먹기 좋은 시간 아니냐고. 첫 끼라는 상징성, 하루 동안 소모될 열량을 떠올리며 얻는 잠깐의 면죄부, 세상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고요한 시간 속에서 즐기는 식사…

특히 이런 아침을 좋아하게 된 건 벨기에에서 살기 시작한 뒤부터다. 이곳의 조식은 주로 빵으로 시작되는데, 핵심은 그 위에 올리는 여러 가지 스프레드에 있다. 단순히 잼이나 치즈, 버터 정도라면 금방 질릴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선택지는 그보다 훨씬 넓다. 에그 샐러드, 카레 닭고기 스프레드, 향신료를 더한 벨기에식 육회 스프레드, 게살, 채소, 생선, 베이컨, 살라미를 섞은 것들까지. 동네 작은 가게에서도 기본이 10여종이고, 가게마다 각자 시그니처가 따로 있다. 한 번 이 맛에 익숙해지고 나면, 아침이 기다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맛 바탕에는 마요네즈가 있다. 열량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뜨끔하게 만드는 그 소스. 달걀이든 닭고기든 육회든 재료는 조금씩 달라도, 특유의 부드러움이 비슷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벨기에에서 마요네즈는 일상 식재료에 가깝다. ‘마요네즈’라는 이름으로 팔리려면 법적으로 정해진 지방과 달걀노른자 함량을 지켜야 할 만큼, 이곳 사람들은 그 기준과 맛에 진심이다. 그래서일까, 감자튀김을 케첩이 아니라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 모습 또한 이곳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게다가 아침상에서 마요네즈는 맛을 더하는 소스 그 이상이다. 재료마다 다른 간과 식감을 자연스럽게 정리해 한입의 균형을 맞춰주고, 아침 반찬의 조합을 한층 다채롭게 만든다. 빵과 채소 사이에서 눅눅함을 막는 실용적인 역할도 한다. 스프레드로, 드레싱으로, 혹은 기본 소스로까지 활용되며 한번 준비해두면 여러 날의 식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셈이니, 벨기에 식탁에서 마요네즈가 빠지기 어려운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게 먹다 보니, 요즘 내 아침 음식의 8할은 마요네즈가 됐다. 평범한 소스 하나가 ‘맛있는 걸 먹는다’는 단순한 기쁨을 훨씬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잠에서 덜 깬 입맛에도 부담 없이 넘어가니 아침 식탁에 자꾸 손이 간다.

하루의 시작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대단한 루틴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나 같은 아침을 차려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잘 챙겨 먹었다는 기분, 하루를 시작하며 잠깐이나마 나에게 집중했다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별것 아닌 반복이겠지만, 나는 내일 아침에도 빵을 굽고 각종 스프레드를 꺼내 황홀한 아침상을 차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특히 아침이 유독 버거운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자신을 기꺼이 침대 밖으로 불러낼 ‘맛’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최윤정

‘부르주아’라는 성을 물려준 셰프 출신 시어머니의 자취를 좇으며 현재 벨기에에서 여행과 요리를 엮어내는 팝업 레스토랑 ‘tour-tour’를 기획·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choirigine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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