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찬 총격과 100년 전 황제의 장례…사진 만드는 시선이 달라졌다[청계천 옆 사진관]
이번 주 백년사진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실 하나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26년 4월 25일과 2026년 4월 25일. 정확히 10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사건이 같은 날에 일어났습니다.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순종이 승하하셨습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그리고 일제 강점 이후 ‘창덕궁 이왕(李王)’으로 격하된 채 살다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신문은 며칠 간 순종의 승하를 슬퍼하는 사람들의 행렬과 조문 일정을 사진 화보로 보도했고, 군중들의 분노와 슬픔의 감정은 한 달여 뒤인 6월 10일 인산(因山, 황제의 장례)일에는 거대한 만세 시위로 번졌습니다. 우리가 아는 6·10 만세운동입니다.

물론 두 사건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분은 나라를 잃은 시대의 마지막 황제였고, 한 사람은 세계 최강국의 현직 대통령입니다. 100년의 시차지만 우연히 같은 날에 벌어진 두 사건을 이 자리에 나란히 놓으려는 것은, 두 사건의 경중을 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시대의 권력자가 위기의 한복판에 놓인 순간이 어떻게 기록되고 어떻게 기억되는지, 그 방식이 10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를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1926년의 한 장
1926년 신문에 실린 순종 인산 관련 사진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법을 따릅니다. 끝없이 늘어선 군중, 흰 상복의 파도, 일본 경찰의 통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소수의 사진기자였습니다. 카메라는 무겁고 비쌌고, 필름은 귀했습니다. 무엇을 찍을지, 어떤 각도에서 찍을지, 어떤 사진을 신문에 실을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사진기자와 편집자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대입니다. 선택된 몇 사람이 기록한 역사가 몇 장의 사진으로 사건을 기록되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결정적 순간은 ‘한 장’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한 시대를 대표합니다. 백성들은 그 한 장의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종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이미지를 공유했고, 같은 이미지로 한 사건을 기억했습니다.
●2026년의 여러 장
2026년 트럼프 만찬장 총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시중에 유통되는 ‘대표 이미지’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지난 주 사건의 대표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AP 통신 마크 시펠바인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무대 위에 앉아있는 트럼프와 그를 둘러싸는 경호원들이 담겼습니다. 또 다른 AP 사진기자 알렉스 브랜든은 만찬장 전체가 보이는 와이드샷을 남겼습니다. 무대 배경에는 ‘CELEBRATING THE FIRST AMENDMENT(수정헌법 1조를 기념하며)’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언론 자유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아이러니가 한 장의 사진 안에 응축돼 있죠.
여기까지가 ‘기자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많이 본 이미지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100년 사이에 무엇이 변했을까
1926년의 사진은 위에서 아래로 흘렀습니다. 사진기자가 찍고, 편집자가 고르고, 신문이 배포하면, 독자는 받아들였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한 시대의 공통 기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위‘만 잘 통제하면 이미지는 잡을 수 있습니다.
2026년의 이미지는 사방에서 동시에 발생합니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있고, 누구나 영상을 자르고, 누구나 그 자른 영상을 다시 유통합니다. 가장 정제된 한 장보다, 누군가가 휴대폰으로 찍어 잘라낸 15초짜리 클립이 더 많이 소비됩니다. 그리고 그 클립에는 종종 ‘와인녀’ 같은 별명이 붙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뉴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1926년의 신문 사진을 들여다보면, 인산 행렬에 모인 군중의 얼굴은 대부분 식별이 어렵습니다. 카메라의 해상도가 낮았고, 신문 인쇄의 망점도 거칠었기 때문입니다. 군중은 ‘덩어리’로 찍혔지, 한 명 한 명의 얼굴로 찍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초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권리도 발생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2026년은 다릅니다. 만찬장 한구석에 앉아있던 일반 참석자의 얼굴도, 와인병을 챙기는 손의 결까지도, 누군가의 휴대폰 안에서 또렷하게 기록됩니다. 모든 사람이 ‘덩어리’가 아니라 ‘개인’으로 찍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모자이크라는 보호 장치가 새롭게 필요해졌지요.
물론 미국의 초상권은 한국의 초상권과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번 호텔 총격 사건이 잘 보여줍니다.
만약 우리나라 기자나 시민들이 찍은 영상이었다면 같은 현장에 있었던,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임신 중인 아내를 대피시키는 모습은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보여줬겠지만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와인녀‘의 얼굴은 모자이크를 해서 보여주려 했을 것입니다. 이번의 경우에는 이미 미국 현지인들의 X (구 트위터)등에서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국내 언론들도 다시 모자이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 사건의 결정적 순간이란 것이 있는 시대일까
1926년의 4월 25일을 그 시대 사람들은 몇 장의 사진으로 기억했습니다. 100년 뒤 우리가 4월 25일 트럼프 사진을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AP 기자가 찍은 무대 위 트럼프일까요, 만찬장 와이드샷일까요, 호텔 복도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CCTV 속 용의자일까요, 아니면 와인병을 챙기던 그 여성의 짧은 영상일까요. 아니면 범인의 ’셀카‘인가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추다르크’ 추미애 vs ‘고졸신화’ 양향자…경기지사 ‘女대女’ 대결
- 美, 주독미군 5000명 철수 명령…나토 보복 현실화
- 트럼프 “이란서 일찍 철수했다가 3년뒤 문제되게 하진 않을 것”
- 삼바 노조 “영업익 20% 성과급” 전면파업… SK 하청도 배분 요구
- “셔틀콕 때리며 건강과 사업 아이디어 두 마리 토끼 잡아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현주엽에게 학폭 당해”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 ‘무죄’ 확정
- “만들다 만 거 아니야?”…샤넬, 밑창 없는 ‘반쪽 신발’ 화제
- EU, 트럼프 車 관세 예고에 “美 합의 위반시 대응할 것”
- 또 ‘분만실 뺑뺑이’ 30대 산모 청주→부산 이송…태아 결국 숨져
- ‘한동훈과 단일화 할거냐” 국힘 면접질문에…한동훈 “나하고만 싸우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