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의 붓질, ‘할머니 화가’ 인생 첫 개인전 열다
델문도뮤지엄 2층 갤러리 5월2일 ~31일까지

평생 흙을 일구던 거친 손이 나이 팔순을 훌쩍 넘겨 이제 색(色)을 일군다. 단 한번도 제도권 미술교육의 틀에 갇혀보지 않았기에, 그녀의 그림은 자유자재하고 기교 없이 신선하다. 학교가 가르쳐주지 못한 색들이, 삶의 궤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1939년 제주 한경면 출생의 좌기춘 할머니 화가. 중학교 졸업 후 평생 농부로 살아온 그녀의 손에 호미와 낫 대신, 연필과 붓이 쥐어진 지 불과 2년여. 그 흔한 미술학원에서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녀의 붓질은 역설적이게도 더 깊다.


붓을 늦게 들었을 뿐, 살아온 세월이 오롯이 화폭에 담겼다. 서툰 기교가 오히려 가장 정직한 예술이 된다. 그래서 소위 '책가방 끈'이 긴 전업 화가들의 눈에 그녀는 아직 아마추어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고 보면 '화가'라는 타이틀은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함이 없다.
생애 첫 전시에 내건 작품은 모두 74점. 팔순 중반을 바라보던 2024년 이후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이다. 가톡릭 신자인 좌기춘 할머니가 2019년 성당 그림반에서 어느 자매님이 건네준 종이와 연필로 그린 코스모스 그림이 늦깎이 화가의 길을 걷게 했다. 미국 유학 중인 손녀가 방학에 돌아와서 그 그림을 보고 "할머니! 앞으로는 그림을 계속 그려보세요. 할머니 그림이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 그림만큼 훌륭해요"라고 응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렸던 모지스(1860~1961, Moses)는 12살 무렵부터 70대 후반까지 평범한 농부로 살아갔으나 76살 무렵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80살 이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며 세상을 떠난 101살이 될 때까지 총 16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100살 이후에도 25점을 그리는 등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가로서 투혼을 발휘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은 사람이 다름 아닌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을 만큼,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할머니 화가다.


2024년 자신의 화실로 그림을 배우겠다며 며느리와 함께 불쑥 찾아온 좌기춘 할머니를 마주한 순간, 유 화백은 그로부터 몇 해 전 아흔을 넘겨 임종하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돌아가실 때까지 유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좌기춘 할머니의 맑은 얼굴에 오버랩되면서 그 즉시 '선생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좌기춘 할머니의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그림 선생이 되어줄 분을 수소문하다 유창훈 화백을 소개받고 무작정 화실로 찾아갔던 일화다.
허나, 유 화백은 단 한 번도 지난 2년간 좌기춘 할머니에게 그리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림을 가르치는 것 대신, 살아온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색이 되고 선이 되어 캔버스 위에 번져 나오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미 완성된 삶 앞에서, 그림 선생의 역할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비켜서는 것이었다.
유 화백은 "좌기춘 어르신과의 그림 수업은 특별했다. 대학에선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좌기춘 어르신에게는 제가 그림을 배우고 있다"라며 "그분에게는 제가 붓을 함께 잡아준 것이 아니라, 대신 그분의 삶이 그림이 되는 순간을 그저 함께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깊은 삶이 경험이 어느 순간 색이 되고 선이 되어 캔버스를 채워 가더라. 저는 그걸 지켜봤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