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카발란 게 섰거라”...K-라이스위스키의 빛나는 도전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6. 5. 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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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위스키와 쌀품종 개발’ 심포지엄
매경애그테크혁신센터·벤처농업대 주최
“쌀은 고품질 위스키의 원료로 잠재력 커”
“라이스위스키 커지면 쌀 수급에 큰 도움”
“고급 위스키 위해선 전용 쌀 품종도 필요”
쌀·위스키 콜라보...시드피아·글린트 MOU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허동웅 농림축산식품부 과장, 고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장지윤 농협중앙회 식품지원부장,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조원동 한국ST거래 대표, 민승규 박사, 이준연 글린트증류소 대표,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 고화순 대한민국 나물명인, 권예섬 한국벤처농업포럼 대표.[이승환기자]
“라이스위스키 시장을 키우면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고품질의 라이스위스키 생산을 위해서는 전용 쌀 품종 개발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벼 품종 개발에 있어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고희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30일 매경미디어센터 12층 대강당에서 개최된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양조용 벼 품종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고 명예교수는 “양조용 쌀 품종을 보급해 고급 라이스위스키 시장을 발전시키면 새로운 쌀 소비시장이 창출됨에 따라 벼 수급 안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쌀의 고부가가치화로 수출과 농가소득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주제발표를 경청하고 있다.[이승환기자]
매경 애그테크혁신센터와 한국벤처농업대학이 공동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은 ‘쌀 품종 개발과 K-라이스위스키의 새로운 시장 창출’을 주제로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고 명예교수는 ‘K-라이스위스키 품종 개발의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위스키와 같은 술의 원료가 되기 위한 쌀 즉 양조미는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희종 서울대 명예교수가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그가 밝힌 좋은 양조미의 조건은 첫째, 쌀알 중심부에 있는 불투명한 하얀 부분인 ‘심백’의 크기가 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누룩곰팡이의 균사가 쌀알 중심부까지 깊숙이 침투할 수 있어 당화 효력이 극대화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둘째, 쌀의 단백질과 지방질 함량이 낮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단백질과 지방이 발효 과정에서 분해돼 생성되는 아미노산과 지방산이 과하면 술에서 잡미나 불쾌한 향이 나오기 때문이다. 셋째, 물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일정하고, 겉은 단단하지만 내부는 부드러운 특성을 가져야 한다. 넷째, 일반 쌀보다 알갱이가 크고 무거운 쌀이 양조에 유리하다. 술 제조를 위해 쌀을 정미할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 명예교수는 “양조용 벼 품종 육성을 위해서는 육종회사와 양조업체간 협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양조용 쌀 시범사업 지역을 선정한 뒤에 전략작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승규 박사가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차관을 지낸 민승규 박사는 ‘쌀, 잘 짓는 나라에서 잘 쓰는 나라로...쌀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세금으로 매입해 돈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민 박사는 “이제 쌀 산업의 핵심은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산된 쌀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로 바뀌었다”며 “정책의 중심이 공급이 아니라 수요 설계로 이동한 만큼 지금 쌀 산업에 필요한 것은 생산 억제보다 새로운 쓰임의 창출”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사케용 쌀로 연간 20~25만톤을 소비하고, 미국 버번위스키가 옥수수 과잉 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쌀을 이용해 위스키와 같은 고급 술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글린트증류소가 라이스위스키를 만들 때 사용하고 있는 원료인 발아된 볍씨의 모습.
민 박사는 이를 위한 전략으로 5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미국 버번위스키가 위스키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라이스위스키라는 독자적인 네이밍을 확립하고, 대만이 일군 세계적인 위스키 ‘카발란’처럼 해외에서 성공한 위스키 사례를 잘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원가 절감보다는 품질을 우선해 몰트 위스키를 능가하는 풍미를 구현하고, 고객 수요에 맞춘 실험적이고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해 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셋째, 글렌디픽이 블렌디드 관행을 깨고 세계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품화했던 것처럼 라이스위스키만의 창의적인 마케팅 혁신이 필요하다. 넷째, 쌀로 만든 술은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가치 중심의 가격 결정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인 맥켈란이 전용 보리 품종을 사용하는 것처럼 라이스위스키 전용 쌀 품종을 개발해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혁훈 매일경제 농업전문기자가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이승환기자]
‘한국의 버번 위스키를 꿈꾼다’를 주제로 발표한 매일경제 농업전문기자 정혁훈 박사는 미국이 옥수수 생산 과잉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버번위스키를 만들어 세계적인 위스키로 성장했고, 가장 신생 위스키인 대만 카발란이 아열대 기후의 약점을 오히려 가속 숙성이라는 장점으로 뒤집어 세계 위스키계를 깜작놀래킨 것처럼 한국도 쌀을 원료로 하는 라이스위스키로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 박사는 라이스위스키가 큰 가능성을 갖는 이유로 △한국에서 쌀을 원료로 하는 증류식 소주 시장의 성장과 오크통 숙성 시장의 발전 △오크통 풍미의 강한 흡수력 등 위스키 원료로서 쌀이 갖는 강점 △뚜렷한 4계절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숙성의 미학 △고품질 쌀의 안정적 공급망 체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K-푸드와의 페어링 확대 가능성을 꼽았다. 정 박사는 “라이스 위스키를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이를 잘 판매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위스키를 병으로 판매하는 것에서 오크통째로 판매해 구매후 시간이 지날 수록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나 곧 국내에서도 실용화될 증권형토큰(STO)이나 실물기반자산(RWA) 같은 블록체인 기반의 투자 수단을 활용해 조각투자 방식을 적용하는 등의 판매 혁신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 종합토론에서 허동웅 농림축산식품부 과장(왼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이승환기자]
민승규 박사가 진행한 종합토론에는 주제발표자와 함께 이준연 글린트증류소 대표,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 허동웅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이 참여했다. 글린트증류소는 스카치위스키를 만들 때 보리를 발아한 맥아 즉 몰트를 활용하는 것처럼 벼를 발아시키는 방식으로 라이스위스키에 대한 첫 제조면허를 획득한 곳이다. 시드피아는 골든퀸3호 벼 품종으로 대한민국우수품종 대통령상을 받은 민간 벼 육종회사다.

토론에서 이준연 대표는 “일본하면 바로 사케, 중국하면 백주, 영국하면 스카치위스키가 떠오르지만 한국은 K-푸드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생각나는 술이 없다”며 “라이스위스키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키운다면 K-푸드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공급 과잉에 신음하고 있는 쌀 소비를 늘리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쌀 1톤이면 225리터 오크통 한 통의 라이스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며 “라이스위스키 오크통 1000개를 만들면 쌀 소비를 1000톤 늘릴 수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연 글린트증류소 대표(왼쪽)와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유현 대표는 “일본과 중국에서는 벼 품종 개발에 있어서 이미 민간의 역할이 공공의 영역을 크게 추월해 있지만 우리나라는 벼 품종 개발에 있어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2~3%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며 “부가가치 높은 고품질의 벼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역할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지금 상황을 보면 벼 품종 개발을 위한 정부 R&D 과제가 거의 공공영역으로만 배정되고 있어 오히려 민간의 개발 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민간 벼 품종 개발 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허동웅 과장은 이와 관련해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이 매우 신선하고, K-라이스위스키의 잠재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며 “라이스위스키와 같은 쌀 가공식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키워 쌀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연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과장은 “민간에서 앞서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며 “벼 품종 개발에 있어서도 민간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시드피아와 글린트증류소간 양해각서(MOU) 체결식도 열렸다. 양사는 이 협약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초 라이스 위스키 생산과 원료 생산을 위해 위스키 전용 쌀을 개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또한 라이스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쌀 소비가 활성화되고, 농업의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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