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인 줄 알았는데... 부모님께 드린 영양제가 치매 키운다?

"요새 OOO 좋다고 방송에 많이 나와. 혈액순환이 좋아지니까 치매도 예방된다 하던데."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A씨(40대)는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는 부모님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영양제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만병통치약'처럼 여겨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선물용 건강기능식품(건기식) 구매가 늘어나는 달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고령층이 염려하는 질환 중 하나로 꼽히는 치매 예방을 위한 건기식이 많이 판매된다. 문제는 영양제 등의 효능만 믿다가 오히려 초기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자칫 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매는 초기 단계에서 의료기관을 통해 치료를 시작해야 높은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기억력 괜찮으면 안심?… 증상 없어도 뇌 변화는 이미 진행 중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치매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는 '기억력 저하'다. 냉장고 안에 휴대전화를 넣어두는가 하면, 집으로 가는 길도 잊어버린다. 치매는 기억력 저하를 비롯해 인지 기능 이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거의 없다가 서서히 일상생활에서 기억력 저하 등이 나타난다.
치매는 주관적 인지저하(SCD), 경도인지장애(MCI)를 거쳐 중증 치매로 이어진다. 경도인지장애는 동일 연령에 비해 인지 기능이 뚜렷하게 저하돼 있으나 일상생활의 독립성은 유지되는 상태다. 그 이전 단계인 주관적 인지저하는 본인은 기억력 저하를 느끼지만 검사상 별다른 이상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의료진은 치매 원인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전 단계에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정상적으로도 생성되는 물질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 축적되거나 서로 뭉치기 시작하면 신경세포 간 정보 전달을 방해하고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베타아밀로이드는 초기에는 작은 단위로 존재하다가 점차 '올리고머' 형태로 응집되며 독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지속적 응집을 통해 섬유 형태인 프로토피브릴과 플라크로 뭉쳐져 신경 신경세포를 파괴하고 뇌 위축을 가져온다. 이런 변화는 임상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수년간 진행되기 때문에 조기에 감지가 가능하다. 반면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이 심해져 뇌세포가 손상된 이후에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초기부터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영양제'로 불리는 건기식… 광고가 부추기는 착각
치매는 단일 원인보다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진행되는 질환이다. 노화는 물론 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청력, 사회생활, 음주, 흡연 등 생활 습관의 전반적 영역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특정 영양제나 성분을 통한 예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치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인자에 대한 복합적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뇌영양제', '기억력 개선제' 등으로 불리는 건강기능식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제품명과 광고 표현은 의약품과 유사하게 구성돼 있지만, 이들 제품은 질환 치료 목적이 아닌 건강 유지와 영양 보충을 위한 식품이다. 이런 제품은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문제는 광고가 '매우 그럴 듯하다'는 것이다. 기억력 개선이나 인지 기능 향상을 강조하는 문구와 함께 전문가가 인터뷰 형식으로 효능을 설명한다. 전문 임상 용어를 활용한 설명이 등장하면 소비자는 의약품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고 기대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에는 기존 인지기능 개선제 시장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급여 축소 이후 환자 부담이 증가하면서 처방 환경이 달라졌고, 일부 수요가 건강기능식품으로 이동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건강기능식품은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과 같은 기능성만 인정되며 의약품처럼 질환 치료 효과를 입증하거나 치료 대상(적응증)을 부여받지 않는다. 정제·캡슐 형태와 성분 중심의 홍보 방식까지 더해지면서 일반 소비자가 의약품과 구분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뇌영양제로는 포스파티딜세린, 오메가3, 은행잎 추출물 등을 함유한 제품이 꼽힌다. 건강기능식품 공전에 따르면 포스파티딜세린 제품 시장은 2022년 77억원에서 2024년 495억원 규모로 확대했다. 2년 만에 6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포스파티딜세린은 대두 등 식물성 원료에서 추출되는 성분으로 체내에서도 생성되지만 노화에 따라 감소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단기간 인지 기능 지표 개선이 관찰된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연구는 대상 규모나 기간에 제한이 있으며, 건강기능식품은 의약품과 달리 질환 치료를 위한 적응증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와 같은 질환의 진행을 억제하는 치료 효과로 인정된 근거는 없다.
또한 건강기능식품은 질환 치료를 전제로 한 용량 설정이나 임상적 검증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품별 성분 함량이나 배합에 따라 효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며, 동일 성분이라도 제품 간 편차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포스파티딜세린을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은 영양 보충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주관적 인지장애 등 극초기 단계에서의 발견과 의료진의 개입을 통한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같은 '은행잎 추출물' 아냐…건기식 vs 의약품 기준 차이
치매 예방과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성분은 '은행잎 추출물'이다. 이 성분이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에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다.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도 은행잎 추출물과 포스파티딜세린 등을 결합한 제품 출시가 늘어나며 관련 시장 확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구매 가능한 은행잎 제품은 모두 건강기능식품이다. 의학적 효과를 내는 의약품은 병원 처방이나 약국을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건강기능식품과 동일한 성분으로 보이지만, 일단 용량부터 차이가 크다.
건강기능식품은 1일 최대 150mg 수준으로 섭취가 제한되지만, 의약품은 통상 240mg 용량이 사용된다. 베타아밀로이드 영향 연구를 포함해 주요 임상 연구와 전문가 권고에서도 240mg 용량이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주성분의 품질 관리 기준도 다르다. 또한 의약품은 주요 성분 함량이 표준화된 기준에 따라 관리된다. 은행잎 의약품은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따라 플라보노이드와 테르펜 락톤 함량이 일정 범위 내에서 관리된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이러한 표준화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제품 간 성분 함량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은행잎 추출물 성분은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혈소판 응집을 억제해 코피가 자주 나거나 멍이 쉽게 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또 아스피린이나 와파린, 항혈소판제와 함께 복용하면 위험이 더 커진다. 따라서 은행잎 추출물 성분은 병원 등 의료 전문 기관을 방문해 전반적 치료와 함께 의약품으로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는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억력 저하나 집중력 감소 등 인지 기능 변화가 보인다면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의료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효과가 입증된 의약품은 임상 근거와 용량 기준이 명확하게 마련돼 있는 만큼, 필요할 경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권나연 기자 (kny8@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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