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는 OPEC 도망가고 美기름집은 ‘이익 참사’ [트럼프 스톡커]
엑손모빌·셰브런 등 생산 차질에 순익 급감
트럼프 “봉쇄 몇 달 더”...베네수 사업 타진
이달말 글로벌 원유 재고 한계...스태그 위험
UAE는 장기 전쟁 틈타 59년만 OPEC 탈퇴
美 보호 속 사우디 견제...시장 판도 재편 가속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원유 업계의 판도도 크게 재편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1일(현지 시간)부터 59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하는가 하면, 미국 석유 기업들의 이익도 급감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 위에서 들썩이다 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름 가격을 당장 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눈 감아줄 수 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글로벌 원유 재고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곧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엑손모빌과 셰브런의 실적이 악화한 것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이들 회사가 보유한 중동 지역 시설의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또 전쟁으로 인한 석유 공급 혼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 관련 일회성 손실이 발생한 점도 1분기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CNBC에서 “전체 생산량의 약 15%가 이란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원유 수송 흐름이 정상화되는 데 최대 2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이크 워스 셰브런 CEO도 CNBC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이 극심한 긴장 상황에 놓여 있다”며 “셰브런은 그래도 경쟁사보다 중동 전쟁에 따른 생산 차질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락하는 가운데서도 미국의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생산량 증대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우즈 CEO는 실적발표회에서 엑손모빌이 미국과 가이아나에서 생산을 늘리고는 있지만, 생산량이 기존에 설정된 계획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CEO도 지난달 30일 실적발표회에서 “거시 환경의 변동성이 전망을 내놓기 불가능할 정도로 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코노코필립스는 1분기 매출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1%, 22.8%씩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엑손모빌, 셰브런, 코노코필립스 등이 석유 공급난으로 그동안 접근하길 꺼렸던 베네수엘라에도 직원을 파견해 사업 가능성을 평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석유회사 기술팀과 변호사들은 미국 대사관 임시 사무실로 쓰이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노후화된 유전 재건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 대형 에너지 기업 관계자 수십 명은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도 면담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생포한 올 1월까지만 해도 우즈 CEO 등이 베네수엘라 투자에 부정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중동 전쟁이 이들의 인식을 바꾼 셈이다.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때인 2007년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 자산을 국유화하자 큰 손해를 입고 현지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와 관련해서는 28일 WSJ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장기적 해상 봉쇄를 준비하라고 보좌진에게 지시했다고 전했다. 군사 행동보다는 경제적 압박으로 핵 포기 등 이란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미국 선박에 미국 항구 간 운송 독점권을 부여하는 ‘존스법’에 대한 유예 조치를 오는 8월까지 90일 더 연장하기도 했다.
현재 이란은 2월 28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 내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까지 지난달 13일부터 해상 봉쇄에 돌입했다. 이 해협은 전쟁 이전까지 전 세계 하루 원유 물동량 약 20%가 오가던 곳으로 하루 평균 125∼140척의 선박이 통과했다. 이란 반정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 등에 따르면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소속 알라에딘 보루제르디 의원은 27일 중앙은행이 ‘호르무즈해협 안보 법안’ 시행을 위해 미국 달러, 중국 위안, 유로, 이란 리알 통화를 기반으로 한 4개 특별 계좌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해협을 지나는 배들에 돈을 걷을 채비까지 하는 셈이다.
국제 유가도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장기 해상 봉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29일에는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29일 장중 한때 126.41달러까지 치솟아 2022년 6월 이후 최고치에 이르렀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도 장중 110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다 이란이 중재국인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에 새 협상안을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일에는 브렌트유 선물이 2.0% 하락한 배럴당 108.17달러, WTI 선물이 2.98% 내린 배럴당 101.94달러로 내려갔다. 전미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달 28일 갤런(약 3.78ℓ)당 4.18달러로 집계돼 2022년 8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그 사이 전 세계 석유 보유량은 심각한 상태까지 다다랐다. 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유 업계와 전문가들이 이달 말이면 원유와 휘발유, 경유, 항공유 재고가 위태로울 정도로 적은 수준이 돼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칫 잘못하면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UAE의 OPEC 탈퇴는 국제 유가를 사실상 좌우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오일 카르텔’이 저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수하일 무함마드 알마즈루에이 UAE 에너지 장관은 로이터통신에 “OPEC과 OPEC+를 탈퇴함으로써 이들이 부과하는 산유량 의무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갖게 됐다”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어떤 나라와도 탈퇴와 관련해 직접 협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OPEC과 OPEC+이 정하는 할당량에 구애받지 않고 산유량을 자체적으로 정하겠다는 뜻이었다. 중동 전쟁이 한창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원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의미였다. UAE 정부도 “탈퇴 이후 UAE는 계속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며 “원유 시장의 수요와 여건에 맞게 점진적이고 신중한 방식으로 기름을 시장에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1960년 9월 14일 결성된 OPEC은 회원국들의 석유 생산량을 조율하는 쿼터 제도를 통해 국제 사회에 막강한 힘을 떨쳤다. 토후국 연방 체제인 UAE는 1971년 OPEC에 가입했지만, 이 나라 원유 매장량의 95%를 차지하는 아부다비는 1967년 회원국이 됐다.
그간 OPEC 내에서 주도국 역할을 맡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독단적인 할당량 결정에 불만을 내비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인도네시아,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4년 앙골라 등도 OPEC을 떠났지만, 그래도 이들은 UAE만큼 거대 산유국은 아니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전 UAE는 OPEC의 하루 원유 생산량에서 약 12%를 차지했다.
OPEC에 대한 UAE의 불만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고유가를 유지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맞서 증산을 요구하며 표면화됐다. OPEC 자료에 따르면 전쟁 전 UAE의 산유량은 OPEC의 쿼터제에 따라 하루 평균 약 340만 배럴이었으나, 이 나라는 내년부터 이를 500만 배럴로 늘리고 싶어 한다.

두 나라는 정치적으로도 예멘,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내전에서 서로 다른 진영을 지원하면서 사실상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가 UAE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공습하면서 양측이 군사 충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경제 부문에서도 투자·교역·관광 중심지인 두바이를 앞세워 UAE가 치고 나가자 사우디아라비아가 탈(脫)석유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추진하며 이를 견제하고 있다.
UAE의 OPEC 탈퇴가 국제 유가 급등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UAE의 예견되지 않은 독자 행보가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막 아래 이뤄졌다는 해석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UAE의 OPEC 탈퇴는 대단한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유가를 떨어뜨리고 모든 것의 가격을 낮추는 데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을 거론하며 “그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라며 “아마 자기 길을 가고 싶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FT는 28일 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가 천연가스 사업을 위해 미국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보도도 내놓았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의 해외투자 부문인 XRG의 나미르 시디퀴 신임 최고투자책임(CIO)는 FT 인터뷰에서 “글로벌 가스 사업을 수직 통합하기 위해 29건의 잠재적 거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이 지금처럼 교착 상태를 이어가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석유 업계의 판도도 가파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 국가 간 역학 관계는 물론 미국 기업들의 사업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산유국이면서 제재를 받았던 러시아와 중동 원유에 상당분을 의존했던 중국의 이해관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가장 피했으면 하는 시나리오는 단기 원유 공급난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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