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자글 고추장 제육볶음… 입안서 터지는 감칠맛 향연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예산시장 골목 오랜 세월 품은 백반집
특산품 돼지고기 떠올라 시킨 제육볶음
은쟁반에 담긴 ‘구첩반상’ 감탄 절로
쫄깃한 오겹살과 매콤한 양념 하모니
장터 국밥에 못지않은 된장국도 일품

예산의 한 고등학교에 출강한 지 두어 달이 되어 간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가운 인연인 예산의 고등학교로 가는 길은 눈빛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이 기다리기에 늘 설렌다. 새벽녘 쌀쌀했던 차가운 공기를 맞이하며 시작했던 수업이 이제 어느덧 따뜻한 봄 냄새가 나는 계절이 됐다. 봄 아지랑이가 눈앞을 너울거리는 길을 2시간가량 달리다 창문을 열어 스쳐 지나갈 이 계절을 만끽해 본다.
오전 수업을 마치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온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는 모든 손님이 식사를 마친 뒤에야 점심 식사를 먹을 수 있지만, 강의할 때는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제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다소 낯설지만 마냥 즐겁다.
그날은 날이 너무 좋아 학교 급식이 아닌 예산 시장으로 나섰는데, 군청 앞 골목임에도 다소 적막한 모습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이곳도 분명 예전에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리라. 한 집 건너 임대로 나와 있는 빈 상가들을 보니 괜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나도 모르게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이들에게 감정에 대입되는 듯하다.
요즘엔 서울도 빈 상가가 많다. 내 집 앞 빈 상가는 15년 전에는 만화책 대여점, 10년 전에는 고깃집이었는데, 국숫집을 마지막으로 계속 비어있다. 추억의 이정표이던 그 상가들은 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 사람들도 어디선가 다시 열심히 살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쉬는 시간에 미리 검색해 찾아놓은 식당에 도착했다. 구름이 없는 봄 햇빛이 다소 덥게 느껴졌다. 문을 열려고 하니 아뿔싸, 오늘은 정기 휴일이다. 세상에 이렇게 허탈할 일이 또 있을까. 제대로 검색하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빠르게 골목 밖을 나섰다. 이럴 때는 새로운 곳을 검색하기보다 식도락가의 운을 믿는 편이 낫다.


예산 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이 서지 않은 시장터는 그 특유의 한적함이 참 매력적이다. 길 건너에 아침 식사가 가능한 백반집이 보인다. ‘매일식당’이다.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것에 비해 리뷰 하나가 없는 독특한 곳이다. 한정된 점심시간 때문에 더는 고민 없이 가게로 들어간다. 장이 없는 날의 식당은 여유로워 보였다. 열어놓은 문 안으로 봄 햇살이 밀려들어 온다. 자리에 앉아 켜져 있는 TV 소리를 들으며 메뉴판을 본다. 2인부터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많아 살짝 아쉬움이 다가왔다. 백반을 먹을까 고민하다 예전 예산은 돼지고기가 특산품이라는 글을 썼던 게 기억이 나 삼겹제육볶음을 주문한 뒤 한숨을 돌렸다.

사각 은쟁반에 음식들이 가득 차려 나온다. 순간 ‘로또 당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권 한번 당첨돼 본 적은 없지만 스스로 먹을 복은 타고난 것 같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삼겹살 제육볶음까지 구첩반상이 나왔다. 이 음식이 1만2000원이라니 감동이 밀려온다.
직접 만든 찬들과 건더기 가득한 장국에 침이 고인다. 자글자글한 붉은 빛의 제육볶음은 매콤한 고추장 양념을 드레스처럼 두르며 자기가 주인공임을 숨기지 않는다. 삼겹살이 아닌 오겹살 특유의 쫄깃함과 고추장 양념이 마치 “처음부터 우린 하나였어”라고 말하는 듯, 맛이 잘 어우러진다. 특히 밥 위에 얹은 삼겹살 한 점은 유명한 식당의 오마카세 초밥보다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 같다. 제육볶음은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양이다.

◆고추장과 고추장 요리
고추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과 발효의 감각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16세기, 임진왜란 전후로 추정되며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장 문화, 특히 된장과 간장의 베이스 위에 고추가 더해지며 지금의 고추장이 완성된다.
문헌으로는 조선 후기의 ‘증보산림경제’에 고추장 제조법이 등장한다. 이미 그 시점에서 고추장은 저장이 아닌 요리의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추장은 단맛, 짠맛, 매운맛, 그리고 발효에서 오는 깊은 감칠맛까지 갖고 있다. 이 복합적인 구조는 단순히 음식을 맵게 하는 양념이 아니라, 재료를 끌어올리는 소스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고추장은 볶음, 찜, 무침, 심지어는 소스의 베이스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비빔밥, 떡볶이, 고추장찌개 같은 요리들은 고추장이 중심이 되어 완성된다. 현장에서 느끼는 고추장의 진짜 힘은 열을 받았을 때 드러난다. 고추장은 불과 만나면서 당이 캐러멜화되고, 발효된 아미노산이 더 입체적으로 올라온다. 이때 고추장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요리의 방향을 결정한다.

<재료> 보리50g, 쌀 50g, 다진 마늘 15g, 다진 양파 30g, 다진새송이버섯 30g, 총알 버섯 100g, 된장 10g, 고추장 30g, 버터 30g, 닭육수 300ml, 화이트와인 30ml, 소고기 30g, 가루 파마산 치즈 5g, 블록파마산 치즈 15g, 올리브오일 10ml
<만드는 법> ① 고추장과 된장, 버터는 섞어 버무려 놓는다. ② 냄비에 오일을 두르고 소고기, 마늘, 양파, 새송이버섯을 볶아준 후 물에 불려 놓은 쌀과 보리를 볶아준다. ③ 화이트와인을 넣고 끓여 준 후 닭육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자글자글 끓여준다. ④ 쌀이 익으면 고추장 버터를 넣어 준 후 가루 파마산 치즈를 넣고 섞어준다. ⑤ 마지막으로 구운 총알 버섯과 블록 파마산 치즈를 뿌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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