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석탑을 우리 집 냉동실에서 꺼내는, 그 낯선 즐거움···국중박 ‘경천사 십층석탑’[김미경의 '문화유산, 뮷즈가 되다']

김미경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2026. 5.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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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위용 그대로 ‘얼음’


“경천사 십층석탑도 얼려버리는 뮷즈, 힙하다!”

지난해 뮷즈 공식 SNS에 신상품 사진이 올라왔을 때 가장 눈에 띈 댓글이다. 박물관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석탑을 우리 집 냉장고에서 직접 얼려 꺼낸다는 발상. 그 ‘낯설고도 유쾌한 변신’에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시대’를 연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역사의 길’ 끝자락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압도적으로 맞이해온 주인공은 단연 ‘경천사 십층석탑’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마다 한 번도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이 탑은, 명실상부 박물관의 이정표이자 모두의 포토존이다. 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이제 박물관의 일상이 되었다.

이 탑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한국 석탑의 전형인 홀수 층수(3·5층)를 벗어나 10층이라는 파격을 택했고, 석탑임에도 목조 건물의 형식을 고스란히 품었다. 처마의 곡선과 기둥의 비례, 층층이 포개지는 방식은 마치 나무로 지은 탑을 돌로 옮겨놓은 듯 정교하다. 재질 또한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이라 조각의 세밀함이 더욱 또렷하게 살아난다.

탑 전체에 촘촘히 새겨진 ‘서유기’와 ‘불보살’의 장면들은 마치 불교 대서사시 한 권을 읽어 내려가는 듯 경이롭다. 탑의 아래쪽 ‘기단부’에는 원나라 황실의 안녕을 비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심에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고려 출신 ‘기황후’가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원나라의 간섭이라는 아픈 시대상과 일제강점기 일본 반출이라는 수난의 역사도 서려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위용은 단순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끈질기게 ‘지켜낸 결과’인 셈이다.

상징성과 완성도가 높은 유물일수록 상품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다 지난해 용산 개관 20주년을 계기로 다시 머리를 맞댔다. ‘이 유물을 지금의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그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얼음틀’이었다.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아파트 5층 높이 정도 되는 13.5m라는 거대한 수직 구조를 한 뼘 크기의 틀에 담으려니 유물의 비율과 세부 조형 재현이 난관이었다. 세로로 긴 탑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얼음이 깨지지 않게 분리하는 설계를 찾기 위해 여름 내내 고민을 거듭했다. 시제품에서 물이 새고 형태가 뭉개질 때마다 출시를 미루고 설계를 고쳤다. ‘박물관 상품’이 갖춰야 할 품격은 결국 디테일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경천사 십층석탑 얼음틀(위쪽 작은 사진)’은 계절을 지나 출시되었음에도 반응이 뜨거웠다. 사람들은 투명한 생수뿐 아니라 진한 커피, 알록달록한 주스를 얼려 저마다의 탑을 세웠다. SNS에는 각자의 잔 속에서 단단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작은 탑들의 사진이 줄을 이었다. 박물관 입구 먼발치에서 우러러보던 유물이, 이제 누군가의 식탁 위 유리잔 속에서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경천사 십층석탑


역사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는 거대한 석탑이 우리 집 냉동실에서 만들어진다는 상상. 그 낯선 즐거움은 결국 우리를 다시 박물관으로 이끈다. 잔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작은 얼음탑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마음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길’ 한복판에 가닿는다.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우리 문화유산이 어느새 일상의 온도로 스며드는 순간이다.

곧 여름이다. 올해는 용산의 공기를 담은 경천사 십층석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그 정도면 일상의 보물로 충분하지 않을까.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문화유산에 오늘의 감성을 더하는 브랜드 뮷즈(MU:DS)의 총괄 기획을 맡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국립중앙박물관을 ‘굿즈 맛집’으로 이끌었다.

김미경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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