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대기만 꽂아도 당선? 경쟁이 있어야 지역이 바뀐다 [하헌기의 콘텍스트]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2026. 5.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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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이 당선’인 구조에선 유권자 대신 권력자 눈치를 보게 돼
“호남이 눈부시게 발전했으면 영남 표심 알아서 바뀌었을 것”

(시사저널=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 산 지 오래됐다. 그래도 아직까진 대구에서 살았던 인생이 더 길다. 동네 분위기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사뭇 낯설다. 처음 보는 민심의 흐름 때문이다. 솔직히 신기하다. 

내가 아는 한, 대구에는 '샤이 보수'가 없다. 보통 '샤이 보수'는 준거집단이 민주당 지지자이거나 보수 비판자들일 때, 자신이 보수 정당 지지자임을 티 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정치 성향을 감추는 것이다. 대구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어느 모임에 가도 대체로 보수 지지자가 더 많다. '보수가 상황이 안 좋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샤이'할 이유도 없다.

4월29일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시사저널 최준필
4월29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선거사무소 ⓒ시사저널 최준필

대구에 '샤이 보수'는 없다

반대로 '샤이 민주당'은 있다. 대구에서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히면 피곤해진다. 사랑하는 이들과 불필요한 논쟁을 벌여 얼굴 붉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서 대구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저 조용히 투표장에 가서 의사를 표시한다. 그래서 최근의 여론조사는 매우 심상치 않다.

요즘 대구에 자주 간다. 여전히 지인들이 대구에 많이 산다. 평생 보수 정당만 찍었던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대놓고 '김부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이 문장의 방점은 '대놓고'에 있다. 국민의힘을 '대놓고' 비난하는 경우야 종종 있었다. 자기 팀 욕하는 거야 야구팬들만 그렇겠는가? 그런데 상대 정당을 찍어버리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요즘엔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그기 그렇게 빨리 되는 거였나? 그람 이때까진 뭐 한기고." 김부겸 후보가 통합신공항에 예산 1조원을 투입하기로 여당과 합의했으며, 내년에 첫 삽을 뜨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지인들로부터 들은 반응 중 하나였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는 TK신공항을 국가사업으로 전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대구시 한 해 예산이 10조원 남짓인데 군 공항 이전 건설에 최소 10조원 이상, 금융비용까지 따지면 20조원 가까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군 공항 이전 비용을 지자체가 알아서 직접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지난 정부의 경제부총리였지 않은가? 경제부총리를 사임한 후에는 여당의 원내대표였지 않은가? 예산을 다루는 경제 수장이었으니 자신들이 그렇게 추진할 수 있었는데 왜 그땐 안 했을까?

찾아보니 추경호 후보가 경제부총리이던 시절, TK신공항 이전 사업에 대해 '대구 군 공항 이전 기부대양여 사업계획 및 합의안'을 직접 심의·의결하며 주도했었다. 황당했다. 기부대양여 사업이란 사업시행자가 자기 자금으로 대체 시설물을 조성해 국가에 기부하고, 그 대가로 국가가 기부한 자에게 이전 대상 시설물을 양여하는 방식을 뜻한다. 여기서 사업시행자란 통상 해당 지자체나 SPC(특수목적법인)다. 말하자면 자신이 국가의 경제 수장일 때는 대구의 군 공항 이전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구조로 정책을 펼쳐놓고, 지금은 "군 공항 이전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유체이탈인가?

얼마 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TK신공항 사업이 막힌 배경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원해 주라고 지시했는데,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을 안 들었다"며 "그때 기재부 장관 하던 사람이 전임자도 TK고 후임자도 TK인데, 자기 고향에 공항 하는 걸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그게 추경호인지, 최상목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윤석열 정부 기재부가 TK통합신공항 사업을 국가 주도로 끌고 갈 생각은 없었던 셈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 사업'도 비슷했다. '달빛철도 특별법'은 공동발의자 의원 숫자만 해도 261명이었다. 헌정사상 최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 명단에 정작 대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추 후보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공동발의를 안 해도 사업을 도울 방법은 많다. 

그런데 이 사업 역시 찾아보니 윤석열 정부 기재부가 제동을 걸어 지연된 면이 있었다. 특별법에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기재부는 예타 면제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이때 기재부 장관 역시 추 후보였다. 필자는 처음엔 그가 경제부총리로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생각해 수문장 노릇을 한 것이라고 선해하려 했다. 그런데 웬걸? 작년엔 의원 신분으로 달빛철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확정을 촉구하는 공동선언 발표에 떡하니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같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경쟁이 없으니 지역 발전도 없다

얼마 전에 봤던 쇼츠 하나. 방송인 오윤혜씨의 발언이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 TK·PK 밭갈이가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수십 년 동안 민주당을 찍어왔던 호남이 만약 경제가 굉장히 발전하고 사람이 살기 좋아져서 그게 소문이 나면 대구나 부산 시민들이 알아서 밭갈이가 됐을 거라고 본다. (중략) 보수랑 진보랑 돌아가며 찍어야지 (지금의 평택처럼) 거길 더 신경 쓸 텐데."

물론 광주와 대구를 수평 비교할 순 없다.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민주당만 찍지 않는다. 대구는 국민의힘만 찍는다. 20대 총선 때 민주당은 광주에서 전 지역구에서 패배했다. 오윤혜씨가 말한 그 맥락이 내포된 '호남 홀대론'에 대한 심판이었다. 역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광주는 민정당의 후신 정당에 결코 표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대안만 있다면 얼마든지 민주당을 심판한다. 그래서 호남 지역구 의원들은 내가 생각할 때는 TK 의원들보다는 훨씬 지역에 열심히 헌신한다. 대구에는 그런 경쟁이 있었던 적이 없다. 늘 국민의힘 일색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씨의 말은 진실을 담은 통찰이라고 본다. 경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것이 보수의 이념인 시장경제의 원리 아닌가? 정당 간 경쟁이 발생하는 지역이라면, 정치인들은 그 지역에 무엇 하나라도 더 갖다주고 평가받기 위해 뛰어다닐 거다. 적어도 대구 발전을 위한 숙원 사업에 대해 추 후보 같은 태도로 임하진 못한다. 

정당 간 경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지역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요구가 아니라 공천권자나 당내 권력자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된다. 공천이 곧 당선인데 줄을 서는 게 더 합리적이지 무엇 하러 성과 경쟁을 할까. 결국 보수의 심장이 살아나려면 거기에 보수의 이념을 복원해야 한다. '경쟁을 통한 발전' 말이다. 그것이 대구와 보수 모두를 재도약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상인의 도시 대구에는 정치 시장의 경쟁이 필요하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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