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도시' 인도 함피… 눈물의 LG냉장고

홍성식 경북매일 기자 2026. 5. 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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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4)

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20년 전 인도를 여행할 때 방문했던 함피의 사원.

1960년대 스물두어 살 무렵엔 ‘못 말리는 히피(hippie)’로 살았다는 이탈리아 할머니와 더불어 예쁜 물총새가 그려진 ‘킹피셔 맥주’를 마시던 고아(Goa)에서의 일주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매연 내뿜는 낡은 버스를 타고 팔롤렘 해변으로 소풍을 갔을 땐 프랑스에서 왔다는 유쾌한 대학생 두 명까지 의기투합해 인도식 덮밥 비리야니(biryani)를 가운데 놓고 사탕수수로 만든 독한 럼(rum)까지 깔깔대며 마구 들이켰다.

인도의 서쪽 바다, 즉 아라비아해는 사람의 심장을 뒤흔드는 힘을 가졌다. 안주나 해변 모래밭에 앉아 석양을 기다려본 여행자들은 안다. 일몰이 일출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아무리 좋아도 한 곳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계획한 인도 여행은 1개월. 가능하면 동서남북 여러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그랬기에 바다를 떠나 역삼각형 인도 땅의 내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사람 좋게 웃던 운전기사가 자신의 잎담배를 나눠 주며 “피워보라”고 권했다. 2006년 인도에선 대중교통 안 흡연이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 근사한 라이방을 낀 이탈리아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힌두교와 이슬람 유적이 도처에 산재했기에 인도 사람들이 “홀리 플레이스(holy place)”라 부르는 함피(Hampi)에 도착한 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열 시간쯤 흙먼지 날리는 길을 터덜터덜 달려왔으니 버스도 지치고 승객도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숙소부터 찾아야 했다. 늦은 밤인데도 오토바이를 소형 택시로 개조한 ‘오토릭샤’ 여러 대가 터미널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가장 조그맣고 어려 보이는 오토릭샤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닉네임 프랭키. 열여덟 살이라고 했다.

“싸고 깨끗한 호텔까지 태워다 줄게요”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소년의 착한 미소가 보기 좋았다. 프랭키만이 아니다. 인도인들은 너나없이 잘 웃었다. 대다수가 빈곤 속을 헤엄치면서도 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프랭키가 소개한 숙소 앞에서 약속을 했다. 내일 아침부터 하루에 20달러를 주고 사흘간 그의 오토릭샤를 대절하기로. 짧은 기간이지만 손님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일정 금액을 벌 수 있게 된 것이 좋아서였을까? “고맙다”는 프랭키의 인사엔 진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함피 여행 중 사흘간 전용 오토릭샤 기사이자 밥 친구가 되어 준 열여덟 소년 프랭키. 작은 체구의 그가 조카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행했을 당시 함피의 낮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렸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유적지나 식당을 찾아다니기엔 힘든 날씨. 달리는 오토릭샤 뒷좌석은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고 쾌적했다.

나는 한영애나 정태춘의 한국 노래를 부르고, 프랭키는 인도 노래를 허밍하며 비루팍샤 사원, 비탈라 사원, 몰락한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왕궁, 황량해서 더욱 매혹적인 마랴반타 언덕 등을 하루 종일 쏘다녔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으니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없었다. 원하는 곳이면 어디건 데려가는 조카뻘의 좋은 친구가 생겼으니 점심은 물론 저녁도 사주고 싶었다.

“오토릭샤 대절비에서 네 밥값을 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켰지만, 프랭키는 메뉴판에서 50루피(800원 남짓) 이상의 음식을 고르지 못했다.

함피에서의 마지막 날.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탄두리치킨(tandoori chicken)을 판다는 식당에 가서 두 마리를 포장했다. 한 마리는 프랭키가 모시고 사는 어머니와 이모 몫으로, 한 마리는 우리 둘의 ‘최후 만찬’(?)을 위해.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프랭키의 모친은 작은 호의에도 크게 고마워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프랭키의 품성은 분명 어머니에게서 유전된 것이리라.

함피에서 함께한 마지막 날, 탄두리치킨에 맥주를 같이 마시며 프랭키가 들려줬던 성실하고 고단한 그와 그 가족의 이야기가, 그 착한 마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언스플래쉬

‘성스러운 도시’인지라 술을 파는 식당이 드문 함피. 저물어가는 외진 강변에 내 몫으론 올드 몽크(old monk)라는 이름의 럼 한 병이 놓였다. 화덕에 잘 구운 탄두리치킨 다리를 안주 삼아 프랭키도 맥주를 딱 한 잔 마셨다. 기억에 남을 풍경 같은 저녁이었다. 소년가장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을 프랭키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일찍 남편 잃은 엄마가 가엾다. 자식이 없는 이모도 측은하다. 돈을 벌어 두 사람에게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사주고 싶다. TV는 얼마 전에 샀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LG냉장고는 너무 비싸서…. 그래도 내년엔 꼭 선물할 거다.”

오토릭샤 수십 대를 가진 사업주에게 보잘것없는 박봉을 받아 세 명의 생활비를 댄다는 프랭키가 엄마에게 LG냉장고를 사줬을까? 오토릭샤 한 대쯤은 자기 소유로 가진 어른으로 컸을까?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인도 ‘성스러운 도시’ 강가에서 본 열여덟 소년의 물기 어린 눈동자가 도통 잊히지 않는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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