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데’마저 실종, 이렇게 된 이상 ‘가을데’로 가자

롯데 자이언츠에 2025년은 ‘상실의 시간’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꿋꿋이 상위권을 지켰지만, 8월 12연패를 당하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부질없는 ‘만약’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믿음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배신의 상처도 깊었다.
하지만 야구가 어떤 스포츠인가. 숱한 실패를 잘 다스려야 성공하는 역설적인 종목이다. 타자가 10번 중 7번을 아웃돼도 3할을 칠 수 있는 게 야구다. 롯데는 그 어느 팀보다 실패에 익숙하다. 21세기 들어 한국시리즈 진출이 없는 유일한 팀, 심지어 2017년 이후에는 가을야구조차 못하고 있다. 매년 실패가 반복되다보니 팬들도 회복력이 강하다. 지나간 시즌의 아픔을 다가오는 시즌의 희망으로 치유하는 법을 터득했다.
희망의 새싹은 겨울에 돋아난다. 선수 계약 및 영입으로 씨를 뿌린다. 그런데 겨우내 롯데는 유난히 조용했다. 모두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홀로 침묵을 지켰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흔한 소문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외국인 선수 계약을 포함한 여러 행보를 보였지만, 지난 시즌 아쉬움을 달래는 소식은 없었다. 꼼짝없이 내부 성장만 바라봐야 하는 현실은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실패에 익숙해진 21세기, 또 다른 2026년 봄

불안감은 이내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대만 전지훈련 도중 선수 네 명이 불법 도박 사건에 휘말렸다. 무소식이 차라리 희소식이었다. 해당 선수들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각각 출장 정지 중징계를 받았다.(김동혁 50경기, 나승엽·고승민·김세민 30경기) 가뜩이나 외부 보강이 없던 팀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
롯데의 겨울은 ‘상실의 계절’이었다. 득보다 실이 컸다. 수없이 저울질해봐도 낙관론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즌이 다가왔다. 롯데를 향한 시선은 시범경기에서 달라졌다. 시범경기를 가장 좋은 성적으로 마쳤다.(8승2무2패) 내용도 좋았다. 팀 최다 득점은 2위(79득점), 최소 실점은 1위(48실점)였다. 국가대표팀 차출이 없는 점을 고려해도 투타 균형이 잡혀 있었다. 물론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지만, 롯데는 지난 시즌 후반부터 계속되는 ‘상실감’을 끊고 가야 했다. 단순히 시범경기 순위에 의미를 두는 건 아니었다.
삼성과의 개막 시리즈는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두 경기 다 이긴 것을 비롯해 단 두 경기 만에 홈런 7개를 쏘아 올렸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가 홈런이 많이 나오는 구장이라 해도 지난 시즌 총 75홈런에 그친 팀이 개막 시리즈에서 홈런 7개를 몰아친 건 놀라웠다. 강렬하게 등장한 롯데는 시범경기 상승세를 정규시즌에서도 이어가는 듯했다.
‘3월의 롯데’가 날린 선전포고는 머지않아 힘을 잃었다. 그다음 엔씨(NC) 다이노스와의 3연전을 모두 패하더니 7연패 수렁에 빠졌다. 가까스로 7연패를 벗어난 뒤에도 5연패를 당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규시즌 첫 두 경기에서 2승을 챙겼지만, 아직도 정규시즌 10승을 올리지 못한 팀이다.(2026년 4월29일 현재 8승1무17패) 그사이 나머지 팀들이 10승 고지를 통과하면서 롯데의 순위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구도(球都)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타선이다. 승리에 필요한 점수를 뽑지 못하고 있다. 팀 득점이 꼴찌다. 경기당 평균 3.1득점으로, 투수진이 석 점 이상 내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마운드가 견고해도 득점 지원이 없으면 승리는 불가능하다. 리그 1위 케이티(KT) 위즈는 같은 기간 경기당 평균 6.1득점을 기록했다. 롯데 타선과 차원이 달랐다.
주자 나가면 물방망이… 번트 성공률도 바닥

지난 시즌 롯데는 정확성이 강점이었다. 타율 제외 파워를 측정하는 순수 장타율은 0.105로 리그 최하위였지만, 팀 타율 0.267은 리그 3위였다. 2026년에는 개막 시리즈 7홈런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듯했는데, 지금까지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하는 중이다. 팀 타율 0.244로 리그 9위다. 팀 홈런 20개도 개막 시리즈 7개를 제외하면 23경기 13홈런이다. 같은 기간 롯데보다 홈런이 적은 팀은 키움 히어로즈(12홈런)밖에 없다.
득점력은 주자가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중요하다. 주자가 출루하면 상대에게 더 압박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롯데는 주자만 나가면 움츠러들었다. 주자 있을 때 팀 타율 0.233은 리그 최하위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오피에스(OPS)도 0.618로 리그 최하위였다. 타격이 안 되면 상대 투수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주자 있을 때 타석당 볼넷률은 가장 낮았고(7.9%), 삼진율은 가장 높았다(20.6%). 그러면서 타석당 투구 수는 3.67개로 리그 최소였다. 즉, 롯데는 주자가 나가면 상대 투수들이 더 간단하게 처리하는 대상이었다. 기회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타격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리그 최고 득점력을 자랑하는 팀도 시즌 내내 타격이 불타오를 순 없다. 그래서 최소한의 점수를 마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점수를 짜낸다’고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매뉴팩처링 런스’(Manufacturing Runs)라고 일컫는다. 스몰볼을 기반으로 점수를 만드는 ‘득점 제조’로, 네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명장 브루스 보치는 “강팀과 약팀은 작은 조각들을 결합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갈린다”고 말한 바 있다.
롯데는 이러한 야구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득점 제조 방식 중 하나인 희생번트가 여섯 번으로 적은 편이었는데, 성공률을 보면 더 암울하다. 여섯 번 성공을 거두는 동안 다섯 번을 실패하면서 성공률이 54.5%에 불과하다. 리그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삼성 50.0%) 여기에 병살타가 나온 비중은 11.2%로 전체 세 번째로 높았다.(키움·기아 11.8%) 타격감이 떨어졌을 때 팀 배팅도 안 되면서 득점이 더 메말랐다.
세부 지표가 대중화된 오늘날, 타격의 종합적인 능력은 조정득점생산력(wRC+)에서 엿볼 수 있다. 리그 평균 100을 기준으로, 얼마나 더 좋고 나빴는지를 알려준다. 롯데는 조정득점생산력이 74.3으로 리그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 최하위였다. 이는 단일 시즌 가장 낮았던 1999년 쌍방울(72.5), 1993년 태평양(73), 1985년 엠비시(MBC·73.7)와 비슷한 수준이다. 모두 2000년대 이전 팀들로, 롯데 타선의 답답함을 실감할 수 있다.
선발진 평균자책점 1위… 장기전에 기대
그럼에도 이번 시즌을 포기하는 건 시기상조다. 롯데는 항상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남긴다. 올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다.
롯데는 선발진이 안정된 팀이다. 두 외국인 투수 엘빈 로드리게스와 제레미 비슬리를 중심으로, 김진욱과 나균안, 박세웅이 선발진을 구축하고 있다. 올해 김진욱이 마침내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선발진이 한층 공고해졌다. 선발진 평균자책점은 리그 1위(3.46), 선발진 이닝 소화도 리그 세 번째로 많았다(135.1이닝).
정규시즌은 144경기를 치르는 장기전이다. 단기전은 임기응변으로 버틸 수 있지만, 장기전은 기본 계산이 서야 한다. 이에 선발진이 약한 팀은 살아남기 어렵다. 투수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고, 무리한 운영은 결국 파국을 불러온다. 시즌 초반 롯데 선발진의 모습이 진짜 실력이라면, 언젠가 반등 시점이 찾아왔을 때 연승 구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저조한 득점 지원으로 제풀에 꺾이지 말아야 한다.
타선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징계받은 선수들이 5월에 복귀한다. 나승엽과 고승민은 롯데에 부족한 왼손 타자들이다. 롯데는 오른손 투수에게 성적이 더 떨어졌는데(팀 타율 좌완 상대 0.248·우완 0.242, 팀 OPS 좌완 상대 0.715·우완 상대 0.651), 두 선수가 돌아오면 이 성적은 개선될 수 있다.
선발진은 굳건하고 타선도 핵심 자원들이 합류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추진력이 더해지려면 감독의 역할이 막중하다. 롯데는 프런트보다 감독의 색이 짙은 팀이다. 두산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 3회,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군 김태형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기에 당연한 현상이다. 김태형 감독의 야구가, 곧 롯데 야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도 롯데에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임 동안 외부 보강이 없었던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지만, 그와 별개로 경기 운영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시즌 급격한 추락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속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감독이 견뎌야 할 무게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김태형 감독에서 시작돼야

롯데의 변화는 김태형 감독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 감독이 기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지난날의 실패를 답습하는 데 머무를 것이다. 롯데는 최하위 탈출을 넘어 가을야구를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웬만한 충격요법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기간 감독이 권위를 내려놓고 더 열린 자세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경직된 분위기로는 돌풍을 일으킬 수 없다.
밑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건 너무나 상투적인 응원이다. 하지만 밑바닥을 치는 와중에도 기대감이 남은 건 분명 고무적이다. 사실, 가장 큰 희망은 여전히 100경기 넘게 남은 일정이다. 2026시즌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늘 그랬듯 지나간 일은 잊고 다가오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고 했던가.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워도 동은 트는 법이다. ‘튼동’(김태형 감독의 별명)이 이끄는 롯데에도 서광이 비치길 바란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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