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꿈 꾸는 문어…과학자들이 문어 ‘뇌’에 빠진 이유
인간과 유사하게 작동하는 두족류 뇌
오랜 시간 인간 신경과학 연구에 기여
번식 어렵고 윤리 문제로 실험 쉽지 않아
문어는 신비한 생명체다. 세 개의 심장을 갖고 있으며,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 피가 흐른다. 피부는 빛과 화학물질을 감지하고, 일부 종은 잘린 팔을 다시 자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문어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뇌’다.
문어와 오징어, 갑오징어처럼 머리에 여러 개의 팔이 달린 동물을 ‘두족류’라고 부른다. 두족류는 무척추동물 가운데 드물게 정교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먹이를 얻기 위해 문제를 풀기도 한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처럼 보상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행동도 보인다. 문어는 어떻게 이런 지능을 갖게 된 것일까.

문어의 뇌는 도넛처럼 생겼다. 식도가 뇌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독특한 구조다. 전체 뉴런의 절반 이상은 중앙 뇌가 아니라 여덟 개의 팔을 조절하는 신경삭에 퍼져 있다. 각 팔이 일종의 ‘작은 뇌’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문어의 팔은 겉보기에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빨판을 이용해 주변을 정교하게 탐색하고 먹이를 감지한다.
문어의 시각 처리 과정도 과학자들의 관심사다. 문어는 뛰어난 눈을 갖고 있지만,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문어의 시각계에서 척추동물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파민 수용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두족류의 뇌가 인간과 비슷한 문제를 전혀 다른 분자적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신경과학은 이미 두족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1929년 영국 동물학자 존 재커리 영은 오징어에서 거대한 신경섬유를 발견했다. 폭이 최대 1㎜에 이르는 이 신경섬유는 전극을 꽂아 신경 신호를 연구하기에 적합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뉴런이 전기적 신호를 발생시키는 기본 원리를 밝혀냈고, 현대 신경과학의 토대를 세웠다.
최근 연구자들은 문어가 길을 찾을 때 포유류의 ‘장소 세포’와 비슷한 세포를 사용하는지, 갑오징어가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을 바꿀 때 뇌가 어떤 계산을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갑오징어는 단 몇 초 만에 피부 무늬와 색을 바꿀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분석하면 두족류의 뇌가 주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하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어가 꿈을 꾼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연구진은 잠자는 문어가 피부색을 빠르게 바꾸는 장면을 관찰하고, 문어가 수면 중에도 시각적 경험을 재현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마치 사람이 꿈을 꾸는 동안 뇌에서 낮 동안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어를 실험동물로 활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번식과 사육이 까다롭고, 움직임이 불규칙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신경 활동을 기록하기 어렵다. 여기에 윤리 문제도 커지고 있다. 척추동물 실험에는 비교적 촘촘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무척추동물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어처럼 복잡한 뇌와 행동을 가진 생물에게도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연구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두족류를 동물실험 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문어 연구는 인간의 뇌를 직접 설명하기 위한 지름길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어는 인간과 전혀 다른 몸과 신경계를 갖고도 기억하고, 판단하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이 문어의 뇌를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능은 하나의 길로만 진화하지 않았다. 문어는 그 사실을 바닷속에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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