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무대까지 번진 ‘영토 전쟁’…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배지에 가이아나 반발

박강현 기자 2026. 5. 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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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 각종 외교 무대에서 에세키보 지역 포함된 배지 착용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수도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열린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손을 흔들고 있다. 로드리게스가 착용한 배지를 보면 베네수엘라가 영유권을 주장해온 에세키보 지역이 포함돼 있다. /AFP 연합뉴스

이웃나라인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간 해묵은 영토 분쟁이 다시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외교 현장에서 줄곧 착용한 ‘배지’가 결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AP 보도에 따르면 가이아나 정부는 지난달 28일 ‘카리콤(CARICOM·카리브해 공동체)‘에 서한을 보내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공식 자리에서 착용하는 배지가 자국 서부 영토인 에세키보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에세키보는 베네수엘라 접경국인 가이아나가 실효 지배해온 곳으로, 베네수엘라가 오랫동안 영유권을 주장해 온 지역이기도 하다. 가이아나 국토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데, 다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돼 이 같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측면이 있다.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에세키보 지도./제미나이

가이아나는 베네수엘라가 배지를 비롯한 각종 지도에 에세키보를 포함시키며 의도적인 도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르판 알리 대통령은 테런스 드루 카리콤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배지는 베네수엘라의 영토 주장을 반영한다”며 “공식 외교 무대에서 이런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방문국이 이를 묵인하거나 용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카리콤의 가이아나 지지는 선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논란의 배지는 최근 베네수엘라 정권 인사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좌파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무력으로 축출한 이후 내부 결속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드리게스는 인근 카리브 제도 바베이도스와 그레나다 방문 때뿐만 아니라 지난달 24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을 자국에 맞이할 때도 이 배지를 착용했다.

이에 대해 로드리게스는 “이는 내가 평생 알고 지낸 유일한 베네수엘라”라고 논란을 일축하며 에세키보에 대한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영토 분쟁 관련 문제가 계류 중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베네수엘라의 입장을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델시 로드리게스(오른쪽)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디콘 미첼 그레나다 총리를 만난 당시에도 에세키보 지역이 포함된 베네수엘라 배지를 달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두 나라 간 영토 분쟁은 1899년 만국평화회의 당시 중재재판소의 국제 경계 획정 과정에서 비롯됐다. 베네수엘라는 ‘제국주의의 강압적 결정’에 따라 영국 식민지였던 가이아나에 유리하게 경계가 설정됐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이보다 앞선 1777년에 강을 경계로 두 나라의 국경선이 이미 그어졌으며, 이를 근거로 에세키보를 자국 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2023년엔 국민투표에서 국민 95.9%가 에세키보의 영토 편입에 찬성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카리콤은 성명을 내고 “현재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어떤 형태로든 이를 정당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며 “가이아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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