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특권과 지방의 서러움… 문화라는 이름의 문턱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6. 5. 2. 10: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 지난 2017년 4월16~1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COLDPLAY)'가 열렸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지방도시에 살면 서러울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음악 공연을 보러갈 때 실감한다.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내는 건 필수 사항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매번 '큰맘'을 먹고 표를 예매하게 된다. 콜드플레이나 마룬5 같은 대형 공연이야 그렇게라도 간다. 서울에서 열리는 작고 소소한 공연까지 그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다.

지방도시에서는 애초에 작고 독특한 공연을 접할 기회 자체가 드물다. 물론 “찾아보면 다 있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찾아보는 노력'은 이미 관심이 생겨야 가능하다. 문제는 그 관심이 싹틀 계기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즐기고 안 즐기고를 떠나, 언제든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곁에 있다는 것. 그 문화생활을 언제든지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 서울·수도권의 특권이다.

지방도시는 문화예술 저변이 취약하다. 지방에서 취향이라는 큰 범주로 사람들을 구분한다면, 평범함의 규율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후자는 말하자면 탱고를 배우고, 누벨바그 영화를 찾아보고,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다.

지방도시에서는 평균의 구심력이 강하게 작동한다. 취향의 그라데이션이 없다. 평범하거나, 이탈자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사이 완충지대가 없다.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소수의 취향이 유난스럽고 별난 것으로 보이기 일쑤다. 낯선 것이 끼어들 틈이 지극히 좁다. 그 틈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것에는 본능적인 경계심과 혐오, 때로는 분노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취향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반복해서 접할 때 비로소 경험의 물꼬가 트인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공연장, 길을 걷다 마주친 전시, 카페에 흘러나온 재즈 한 소절에서 취향의 물길이 열린다. 이런 환경 자체가 없다면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망도 쉽게 생기지 않는다.

이 문제를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둘 수는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는 것이 시장의 순리다. 반대로 적게 소비되는 것에는 공급이 메말라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수요 없는 경험'들이 사회를 다채롭게 만든다. 저마다 자신만의 낯섦을 품고 있는 공동체는 포용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수익성 없는 공간을 억지로 흑자로 만들려고 서두르지 않고, 적자를 견디면서도 사라지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 시장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비효율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공공 서비스다.

그러나 지방의 행정과 정치는 이 역할을 외면할 때가 많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그럴듯한 하드웨어에 치중한다. 문화예술을 토목사업처럼 다룬다. 관광객 수, 경제 효과, 일자리 숫자를 앞세운다. 경남 창원의 SM타운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시민이 누리는 문화공간이 아니라, 관광객을 끌어들여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지금 남은 것은 텅 빈 공간과 소송뿐이다.

▲ 경남도민일보 유튜브 방송 '왜 '800억' 창원 SM타운은 망했을까? (내부 전격 공개)' 갈무리.

최근 정치권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광주로 이전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안을 보면 '소재지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한다'는 한 문장만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계획과 취지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입안자로서는 교육기관이 지방에 자리 잡으면 그곳을 거점으로 문화예술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또 하나의 '랜드마크' 건설, 치적을 위한 사업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는 반복되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형성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크고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작고 비효율적인 공간들이다.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들이 지역 곳곳에 가지를 쳤으면 한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