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노조, 프레이밍되지 못한 외환위기의 슬픈 초상화
[프레임과 이야기]
[미디어오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노조 관련 발언들을 들으면서 드디어 이 문제가 주요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 같아 반가왔다. 사실 이건 이재명 대통령이 대단한 통찰을 한 것은 아니다. 노조간의 격차, 그리고 보다 촘촘하게 나뉘어져 있는 노동자간의 격차는 모두가 다는 기정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사회는 마치 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사용자 vs 노동자'라는 고전적 도식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대처해온 경향이 크다.
이 자체 문제만으로도 참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노 vs 노' 갈등 문제, 파견직부터 정규직까지 펼쳐져 있는 끔찍한 고용의 형태, 노동 안정성을 위해 안정성이 적은 노동자에게 그에 합당한 공정수당을 주는 해법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에 앞서 도대체 왜 이런 극악한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를 한 번 차분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그걸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엔 자신의 아버지가 '회사원'이라는 사실은 그 가정이 평범한 중산층임을 의미했다. 또 동시에-지금 젊은층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그 회사에서 정년까지 다니고 퇴직할 것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개인별 상황에 따라, 또 회사의 안정성에 따라 모두가 다 정년퇴직이 보장이 되는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 그럴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했다.
이걸 박살낸 것이 다름 아닌 'IMF 외환위기'였다. 재밌는 건 대부분의 사람이 '외환위기'라는 단어보다 'IMF'라고만 부른다는 사실이다. IMF가 구제 금융을 제시하는 조건으로 우리나라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은 맞지만, 외환위기를 IMF가 일으킨 것은 아님에도 그러하다.
이는 바꿔 말해 당시 발생했던 외환위기,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규직 정년 고용이라는 형태를 완전히 해체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되지 못했으며 그저 IMF가 발런이 되는 서사로만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IMF가 외국 기관이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힘 센 외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서사가 추가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구국'의 프레임을 자극하며 '금모으기'라는 형태의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의 원인도, 책임자도 모두 증발해 버렸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당시 언론은 대대적으로 한 대기업 회장을 '무리한 확장'을 해서 외환위기를 한 주범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물론 얼마전까지 오랫동안 '수출 금자탑' 프레임-박정희로부터 이어지는-은 사회적인 칭송의 핵심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각광 받던 인물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이해나 인식과는 별개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노동 안정성이 급격하게 해체되면서 현재와 같은 노동의 차별적인 위계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외환위기 이외에도 많은 다른 요소가 있겠지만 사람들의 '인식'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혹은 체념하게 되는-결정적 트리거가 된 것은 외환위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 부분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 프로파간다에 동참하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에 편승했다. 돌아보면 일종의 몰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도생'이란 불안감에 이미 함몰되었고 그 함몰 속에서 자기 자식만은 정규직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존 투쟁과,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구제해야 한다는 부동산 투쟁으로 더욱 강렬하게 치닫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민주화 완성'이라는 파티가 계속됐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 투쟁을 다룬 수많은 상업 영화가 제작되고 큰 흥행을 기록한다. 반면 개인의 자기 구제는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고전적 프레임-이건 역설적으로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외환위기 이전 고속성장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이 지속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인식과 현실의 괴리는 어느 정도의 자산을 확보한 기성세대와 무한투쟁의 사회에 발을 내딛는 젊은층을 분리시키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민주화 완성의 파티 속에서 자랑스러워하며 10대를 보낸 젊은이들은 결국 2014년 낡아빠져 폐기처리했어야 할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보게 된다. 파티는 끝났고 젊은층은 희망을 놓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레디컬 페미니즘의 지나침과 소위 2찍남들 프레임으로 젊은층을 조롱한다.
과격하고 지나치게 비약적인 해석일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끔찍한 형태의 고용 안정성과 노동 위계 그리고 차별은 외환위기를 들먹이지 않고도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문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노동 문제는 IMF 외환위기를 제외하고 결코 이야기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어쨌든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중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이 굉장히 반갑다. 아무쪼록 이를 계기로 미시적 문제 해결만이 아니라 외환위기에 대한 재평가에까지 이르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정부보다는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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