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사교육 안 시키니…“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
도토리마을방과후, 공동체 놀이와 관계 맺기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 키워
돌봄의 양과 질을 고려 먼저 부모의 노동시간 줄이고 인프라도 확충해야

[주간경향] “이제 AI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스스로의 탐구를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공동체 교육 방식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김두만씨)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씨는 ‘공동체 교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의 아이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도토리마을방과후 마포 협동돌봄센터에 다닌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도토리마을방과후는 부모와 교사들이 협동조합으로 꾸린 공동체로, 학교 밖 초등학생 돌봄 기관이다. 현재 초등학생 45명, 부모 88명, 교사 7명이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저녁, 이곳에서 부모와 교사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입 조합원 교육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AI 시대에 사교육 없이 아이를 교육하는 일, 도토리마을방과후의 교육 철학인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I 시대,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도토리마을방과후 아이들은 하교 후 ‘터전’이라 부르는 센터 건물로 모인다. 학교에서 걸어서 5분 남짓. 오후 6~7시 집에 가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책을 읽은 후 주변 공원이나 놀이터, 학교 운동장에서 공동체 놀이나 공놀이 등을 한다. 산에 오르거나, 택견을 배우거나, 이웃 어르신 집에 방문해 간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놀이가 끝나면 간식을 먹고, 설거지와 뒷정리는 직접 한다. 아이들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최근 ‘티볼’(야구 변형 게임) 동아리가 생겼다. 연령통합, 장애·비장애 통합 생활을 한다.
이날 교육에선 5학년 자녀를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내고 있는 안소희씨가 선배 조합원으로서, 또 20년째 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최근 학교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쇼츠’와 같은 강력한 자극이 아니면 아이들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휴대전화를 보며 밥을 혼자 먹는 아이들이 늘고 있고, 학기 초에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견디지 못해 휴대전화로 숨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무너지고,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안씨는 “미디어 노출이 일상화되고, AI 시대가 발전한 시대에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며 “호기심이 있어야 자기를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힘은 놀이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놀이와 관계 맺음은 공동체 교육에서 지향하는 핵심 가치다. 안씨의 첫째 아이 역시 도토리마을방과후를 다녔고,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중학생이 되면 사춘기를 겪고 학습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부모와 친구들과 깊은 수준의 교류가 어려워지더라”며 “그런 교류 경험을 할 수 있는 때는 초등학생 시기라는 걸 절감한다. 첫째 아이는 도토리마을방과후를 다니면서 놀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부모, 교사, 교육 전문가 모두가 급변하는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입시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사교육 시장은 꿈쩍하지 않는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7조5000억원.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4.4%(주당 7.4시간), 월평균 사교육비는 1인당 51만2000원이다. 더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노출되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고비용에도 영어학원 유치부(영어유치원)가 인기를 끄는 건 ‘우리 아이가 뒤처질까’ 하는 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작용한다.

도토리마을방과후 부모들은 아이들의 사교육을 지양한다. 교과 학습과 예체능 활동을 온전히 배척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선행학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남들 다 하는 선행 위주의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한다. 이런 선택에 고민은 없을까. 올해 2년째 도토리마을방과후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권송씨는 “제가 자랄 때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스스로 취향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며 “아이는 자기 시간을 보내면서 취향을 알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 권씨의 자녀는 한글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기 초 공개수업 날, 친구 이름을 쓰는 빙고 게임을 하길래 권씨는 내심 걱정했다고 한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가서 “이름 좀 적어줘”라고 말한 뒤 게임에 잘 참여했다. 권씨는 이웃 어른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아이를 보며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학교생활을 잘해나갈 힘을 키웠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부모들이 꼭 자녀의 ‘뛰어난 학업 성취’를 바라서 사교육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 방과 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녀의 돌봄과 사회성 발달을 도울 기관을 찾았다는 김영은씨는 올해부터 3학년이 된 아이를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보내고 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대치동 사교육’을 제외하고 보면, 예체능 활동이나 돌봄 등 사교육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기능으로 열려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아이는 1~2학년 때 조부모 돌봄, 공부방, 학교 방과 후, 사교육 뺑뺑이까지 다 해봤다. 부모들에게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건
현재 초등 방과 후 돌봄으로는 학교 안에 돌봄교실, 늘봄교실,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있다. 학교 밖에는 정부·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가 있다. 민간에선 주로 학원이 돌봄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민간 돌봄 기관이 있는데, 도토리마을방과후가 여기에 속한다. 부모 출자금과 조합비로 운영한다. 비영리 기관이고, 돌봄이라는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데도 공적 지원은 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동복지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협동돌봄센터라는 이름으로 법제화가 이뤄졌다.
다른 돌봄 기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교사대표인 장영진씨는 “보통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을 채우는 기관들이 있고, 거기서 아이들 학습과 보호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생활이라기보다는 이동과 과제 수행의 연속으로 구성돼 있다”며 “도토리마을방과후에서는 학습과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아이들이 머물고 관계를 맺고 경험을 쌓아가는 생활의 시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혼자 자라지 않고 친구, 어른, 마을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충분히 놀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이 같은 공동체 교육을 경험하는 아이가 많지는 않다. 교육·돌봄의 핵심 기관인 학교에서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날로 줄어들고, 하교 후 아이들은 여러 돌봄 기관과 사교육 현장에서 뺑뺑이를 돈다.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장씨는 “그동안 아동정책은 아동의 시선이 아니라 어른 중심으로 바뀌어왔다”며 “예를 들어 학교에서 돌봄 시간을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늘봄교실의 경우 밤 시간대까지 운영한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과연 좋은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의 양과 질을 고려해 부모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등학생 1학년 자녀를 둔 고동현씨의 말이다.
“돌봄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부모들이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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