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명성, ‘글로벌 대도시’ 서울 네트워크 효과…광주 이전 시 한예종 잃을 수도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2026. 5. 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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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 서울 인프라 지방 보내는 식의 국토균형, 국가 경쟁력 저해

● ‘지방 선거용 떡밥’ 돼 버린 한예종 광주 이전
● 서울 집적된 문화 인프라로 만든 ‘네트워크 효과’
● 광주로 이전하면 세계적 예술대학으로 남기 어려워
● 서울 기관 무분별한 ‘지방 이전’→‘혁신도시’ 실패
● 선심성 공약으로 서울·수도권 ‘팔다리’ 지방에 내줘선 안 돼

"현재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어 지역 간 문화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지역 청년 예술인들의 수도권 유출로 인해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4월 22일,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제안이유 중 일부다. 한예종을 '고등교육법'에 따른 각종학교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의 국립학교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법률안의 골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교사 전경. 뉴스1
한예종은 다른 대학과 다르다. 학사 과정 대신 그에 준하는 '예술사' 과정이 있고, 석사나 박사에 해당하는 학위는 '예술전문사'라고 부른다. 특히 문제는 예술전문사다. 어디까지나 석박사 학위에 준할 뿐 석박사가 아니기에, 한예종은 '대학원 없는 대학'이라는 애매한 지위에 머물러 있다.

캠퍼스 구성도 문제다. 음악원은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근에, 영상·연극원은 성북구 석관동과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해 있는 등 캠퍼스가 나뉘어 있다. 각 예술 분야의 중심지와 가깝게 위치했다는 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서로 다른 전공을 지닌 학생들이 부대끼며 창발적인 예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민주당은 한예종을 서울이 아닌 광주에 이전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아시아문화예술전당을 핵심 거점으로 삼아, 6개 학과가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한예종의 숙원사업인 대학원 과정 역시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법안 발의 다음날인 4월 23일, 정 의원은 민형배, 전진숙 등 민주당의 광주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한예종 광주 유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예종의 전남 광주 이전은 광주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예술 거점 도시로 도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을 곱씹고 있노라면, 한예종을 옮기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학생은 물론 교수까지 반대하는 한예종 광주 이전

민주당의 선의와는 다르게 한예종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이전에 반대한다. 한예종 학생들만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한예종의 법적 지위가 달라지면 각종학교가 아닌 종합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을 테지만 교수들 역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통합 캠퍼스와 대학원 설치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은 주제다. 한예종 관계자 뿐 아니라 한예종이 발전하여 간접적인 혜택을 입게 될 온 국민이 찬성할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 쟁점은 '지방 이전'일 수밖에 없다.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 예술대학을 지방에 이전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일까.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광주광역시로 이전하는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한예종 이전에도 수많은 대학이 나름의 이유로 지방에 분교를 개설하거나 이전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던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이 각 지방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그리고 대학을 넘어 민간 영역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올해 초, 경기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운을 띄우자 정부와 여당 관계자가 거들고 나섰다. 비현실적일 뿐더러 해롭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러한 논의가 제기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한예종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수도권과 그 외 지방의 격차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에 있는 인프라를 지방에 내려보내라'는 식으로 과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4월 28일, 한예종은 광주 이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문에 따르면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본교의 경쟁력은 국내 최고 수준의 강사진과 풍부한 공연·전시 인프라, 그리고 예술 현장과의 긴밀한 연계"에서 나온다. 그런데 광주에는 그런 강사진도, 인프라도, 예술 현장도 없다. 그러니 "충분한 준비가 전제되지 않은 물리적 이전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 예술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국가적 예술 자산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예술 교육의 핵심인 '현장성'과 '네트워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반대 논리다. 여기서 좀 더 큰 방점이 찍혀야 할 키워드는 '네트워크'다. 한예종이 서울이라는 현장에 있어야 할 이유도 결국 그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서 만들어내는 네트워크와 그 효과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한예종 존립 어렵다

‘네트워크 효과'는 본래 경제학 용어다. 어떤 상품의 수요자가 많아질수록 해당 상품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독자가 많은 신문은 그렇지 않은 신문에 비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현상은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할 때에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 세계 문화 예술의 수도 역할을 했던 파리를 떠올려 보자.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예술가와 지망생들이 몰려들었다. 예술가와 수집가가 한 곳에 모이면서,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고 문화가 꽃피어 올랐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후 세계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파리 대신 뉴욕이 세계의 문화 수도 지위를 넘겨받았지만, 지금까지도 파리는 문화 예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곳으로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실리콘밸리다. 휴렛팩커드(HP)는 1939년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에서 첫 발을 뗐다. HP가 성공을 거두면서 인재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IT 산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 등 핵심 기업이 팔로알토 및 미국의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출발했다. 그런 기업에서 채용되거나 채용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인재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 그렇게 기업이 인재를 모으고, 자리를 잡은 인재들이 그곳에서 또 다른 기업을 꾸리면서, IT 산업의 중심지 실리콘밸리가 탄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위치한 휴렛팩커드(HP) 본사. 동아DB
도시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집적 경제(Aglomeration Economies)'라 부른다. 특정 도시에 어떤 이유로 사람과 산업이 모이면, 그 네트워크가 더 많은 인재와 기업과 인프라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렇게 도시는 점점 커진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성립하고 있는 일종의 법칙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 법칙에 '도시의 승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예종의 구성원들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한예종이 아시아 최고의 예술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내고 있는 네트워크 효과, 혹은 집적 경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예종을 광주로 내려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주는 한예종을 얻고, 한예종은 대학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예종에 대학원이 설립되긴 하겠지만, 광주는 한예종을 얻지 못한다. 글로벌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는 한예종이 세계적인 예술대학으로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주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한예종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가 있다. 왜 하필 지금 이런 논란이 던져졌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한예종 광주 이전을 광주와 호남 유권자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는 소재로만 여긴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선거용 떡밥'으로 한예종이 소비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해석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 대도시 게임'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쟁을 엉터리로 치르고 있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와 같은 '지방 이전론'은 지난 수십 년간 수없이 반복되어왔다. 실제로 수많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지방의 '혁신도시'로 향했다. 한예종 이전 논란은 그 길고 지루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편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지방, 서울과 경쟁할 것 아니라 세계와 경쟁해야

그 결과 한국은 내수 불황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쌍두마차의 힘으로 코스피 지수가 6600을 넘고 26년도 1분기 GDP 또한 전분기 대비 1.7% 성장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출 대기업, 그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기업에 한정된 호황일 뿐이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 없다. 거리를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서울 시내 중심가의 상가마저도 임대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이 태반이다. 수출 호황과 내수 불황이 겹쳐 있는 가운데, 주가 상승의 팡파레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4월 29일 서울 종로2가 대로변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한국 경제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손 대고 있지 못하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특정 수출 대기업에 의존한 경제 구조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루거나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그러한 경제 구조 해결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한국이 무엇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할지 생각하면서 지역 균형 개발과 지방자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글로벌 대도시 서울이 필요하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 요컨대 서울의 경쟁력을 깎아먹는 방향의 '국토 균형론'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도권 1극 체제를 수수방관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는 동남권에 하나, 그리고 서남권에 하나의 글로벌 메가 시티를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국가 전략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남권은 이미 제조업의 인프라가 충분하다. 서남권의 넓은 땅을 기반으로 한 '네덜란드식 푸드테크' 산업이 개척된다면 어떨까. '모든 지방'을 살리겠다는 발상을 잠시 접어둔 채, 서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산업이나 시설을 바탕으로 하여, 서울과 맞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는 글로벌 대도시를 더 키워야 한다. 지방이 서울과 경쟁하는 대신 서울과 함께 세계와 경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역 균형 개발의 방향성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정치다. 지금처럼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으로 서울과 수도권의 팔다리를 잘라 지방에 내주자는 식의 공약이 판치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가 아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 둘이 아니라 셋 혹은 그 이상의 메가시티가 살아 숨쉬는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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