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코로나19, 두렵지 않다?…만능 백신의 등장

제2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온다면 우리는 다시 백신을 기다리며 집 안에서 버텨야 할까.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는 전혀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특정 바이러스를 정밀하게 겨냥하는 대신 폐의 면역 ‘맷집’을 키워 처음 만나는 바이러스와도 잘 싸우게 만드는 ‘만능 백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한 번으로 다양한 병원체에 대비하는 시대가 가능할지 전문가와 자세히 살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유행하자, 각국 정부는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도시 봉쇄 혹은 집합 금지 명령을 시행했다. 약국에는 마스크가 동났고 비행기가 멈췄다. 세계인은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지길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2월 19일 발리 풀렌드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미생물학·면역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만능 백신’ 연구는 만약 인류가 제2의 코로나19를 마주하게 된다면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가는 게 아니라, 코에 뿌리는 ‘만능 스프레이’를 사러 약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그린다. (doi: 10.1126/science.aea1260)
● 훈련된 선천 면역의 맷집을 키워라
3월 4일 연구실에서 만난 조남혁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풀렌드란 교수팀의 연구에 관해 “흥미로운 논문”이라고 입을 뗐다. 면역학 연구자인 조 교수는 “풀렌드란 교수팀은 백신 개발에서 세계적인 연구 그룹”이라며 이 논문이 한 방에 다양한 병을 예방하는 만능 백신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기존 백신의 개념을 알아보자. 기존 백신은 특정 항원을 정밀하게 인식하고 기억하는 면역 체계를 후천적으로 만든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면역 체계를 적응 면역 혹은 획득 면역이라 부른다.
우리가 특정 항원, 예를 들어 수두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몸속 면역세포가 활동에 나서 항원을 제거한 후 대부분 죽는다. 그런데 기억 T세포, 기억 B세포라는 일부 세포가 수두 바이러스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오래 살아간다. 획득 면역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다시 수두 바이러스를 만나면 즉각적으로 활성화돼 감염 초기 단계에서 빠르게 증식하고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기존 백신은 몸에다 먼저 약하거나 죽은 수두 바이러스를 넣어줘서 실제로 수두에 걸리기 전에 몸이 획득 면역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다. 현상수배서에 얼굴이 올라온 도둑을 경찰이 즉시 알아보고 체포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수배서에 없는 도둑은 막지 못한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면역력도 있다. 선천 면역(자연 면역)이다. 선천 면역은 일종의 1차 방어 체계로 항원 비특이적으로 반응한다. 생김새 가리지 않고 처음 보는 얼굴이면 무조건 잡아들이는 셈이다. 선천 면역에선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이 활약한다. 대식세포는 병원체를 잡아먹고 수지상세포는 항원을 T세포에 전달한다.
“기존에 선천 면역은 기억 반응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어요.” 조 교수가 말했다. 기억 반응이란 항원에 두 번째로 노출될 때 더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 면역 특성이다. 그런데 약 10년 전부터 선천 면역도 어느 정도 ‘기억’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독감 바이러스에 걸렸다가 나은 경우 이후 다른 병원체인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면역력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관찰된 것이다.
이를 훈련된 선천 면역이라 부른다. 만능 백신은 이 훈련된 선천 면역을 겨냥한다. 연구팀은 선천 면역이 동작하는 방식을 밝힘으로써 일종의 ‘맷집’ 강화 능력을 훈련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 만능 백신의 열쇠, 선천 면역을 강하게 만들라
풀렌드란 교수팀은 먼저 폐를 중심으로 훈련된 선천 면역의 작동 원리를 밝혔다. 여기에는 세 가지 주요 요소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폐에 있는 ‘조직 상주 기억 T세포(TRM·Tissue-resident memory T cells)’다. TRM이란 특정 장기에 정착해 순환하지 않고 머무르는 기억 T세포다. 호흡기, 소화기, 생식기 등에 각각의 TRM이 있다.
두 번째는 대식세포다. 대식세포는 특정 항원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모든 세균과 바이러스 등을 잡아먹는 선천 면역을 일으키는 세포다. 특히 폐 속에 공기가 들어가고 나오는 작은 공기주머니인 ‘폐포’에 상주하는 폐포 대식세포는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병원체를 맨 먼저 잡아먹는다.
마지막 RANKL은 신호 단백질이다. T세포가 분비하고 대식세포가 수용하는 신호다. TRM이 RANKL 신호를 분비하면 폐포 대식세포가 RANKL 수용체를 통해 신호를 감지한다.
발리 풀렌드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미생물학·면역학과 교수는 SARS-CoV-2의 다양한 변종을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핵심은 RANKL 신호를 받은 대식세포가 더 활성화된 상태로 유지된다는 거예요.” 조 교수는 “이번 연구가 발표되기 전까지 훈련된 선천 면역 반응이 일어나는 기전이 알려진 바가 없었는데 풀렌드란 교수팀이 RANKL 신호에 의해 활성화된 대식세포가 이후 몸속에 들어오는 다양한 항원을 더 잘 잡아먹는다는 것을 밝혔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지질 나노입자 제형의 백신을 개발했다. 이후 쥐에 투여해 면역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백신에 선천 면역계를 자극하는 두 개의 성분과 OVA 항원을 넣었어요.”
두 개의 성분은 GLA란 합성 면역 자극 물질과 3M-052-LS란 면역 활성 화합물이다. 두 물질은 훈련된 선천 면역이 작동하도록 돕는다. OVA 항원은 면역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실험용 항원으로 이 실험에서는 쥐의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연구팀에서 면역 자극 물질과 활성 화합물 조합으로 특허 등록을 했을 거예요. 선천 면역계가 활성화되는 가장 좋은 조합을 찾아낸 겁니다.” 조 교수가 설명했다.
실험 결과 훈련된 선천 면역은 약 3개월 동안 지속됐다. 연구팀은 쥐에 일주일 간격으로 총 4번 ‘만능 백신’을 투여했는데, 4번째 백신 투여일로부터 3개월간이었다.

● 주사 한 대로 평생 건강한 시대 올까
“그럼 이제 구강 스프레이 하나로 매년 달라지는 독감은 물론 ‘제2의 코로나19’까지 막는 만능 백신의 시대가 올까요?”
라는 질문에 조 교수는 “가능은 하지만 백신이 유지되는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앞서 풀렌드란 교수팀의 동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만능 백신이 인체에서 유효할 기간은 약 1~2년 정도로 예상된다.
짧은 지속 기간은 훈련된 선천 면역 반응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선천 면역세포의 반응성을 일정 기간 높여 둘지라도 세포의 상태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1~2년이란 기간이 더 길어질 수는 있다. “중요한 건 이번 연구가 시작점이란 겁니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만능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많았음에도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특정 질병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범용 치료제, 범용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추세예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지원 기조도 바뀌고 있죠.
그러다가 이번에 통계적으로 상당히 유의한 효과를 내는 범용 백신을 개발했고 이러한 현상이 훈련된 선천 면역 반응에 의한 것이라는 원리를 규명한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훈련된 선천 면역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조 교수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만능 백신이 제2의 코로나19 팬데믹이 올 미래에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생겼을 때는 분명 유용할 거예요. 백신이 개발되기 전 만능 백신으로 폐의 맷집을 키워둘 수 있으니까요.”
2020년 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까지 전 세계 누적 사망자는 약 150만 명에 달했다. 감염병이 유행한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만능 백신의 ‘슈퍼 파워’는 팬데믹 대응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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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5월호, 제2의 코로나19, 두렵지 않다? 만능 백신의 등장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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