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버리느니 길에서 잘 거야··· 홈리스에게 반려동물이란 [경계의 사람들]
지독하게 추운 밤이다. 클레오가 몸을 둥글게 말고 떤다. 단모종의 짧은 털만으로는 체온을 유지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온 클레오에겐 이집트 사냥개인 파라오 하운드의 피가 많이 섞여 있다고 했다. 지중해성 기후에 알맞게 열이 잘 빠지도록 발달한 커다란 귀가 샌프란시스코 밤공기에 차게 식어간다. 차를 세우고 있는 곳은 도시의 서쪽, 오랫동안 ‘바깥의 땅(Outside Lands)’이라 불리던 곳이다. 밖으로 밀려난 둘의 상황과 닮았다. 떨어져가는 돈을 긁어모아 간신히 예약한 값싼 숙소는 개를 두고 와야 투숙이 가능하다며 둘을 거절했다. 함께 다시 길 위다.
이런 밤에는 몸을 누일 낡은 자동차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금세 차 바깥 온도와 다르지 않게 내부가 식어버리곤 하지만. 다음 날 동물병원 건강검진이 있으니 클레오를 일단 잘 재워야 한다. “미안해, 클레오. 차에서 자게 해서.” 엔젤은 뒷좌석에 나란히 붙어 앉아 클레오를 다독이며 위로한다. 다른 홈리스들이 비틀대며 걷다가 차로 다가와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클레오가 섬찟 놀라 짖는다. 엔젤을 지키려 한다. 위협적으로 짖는 클레오 덕분에 사람들이 물러나지만, 엔젤은 클레오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런 경험을 다시는 안 시키고 싶다고, 엔젤은 머릿속으로 되뇐다. 트렁크 쪽으로 손을 뻗어 하나 있는 담요를 꺼낸다. 클레오에게 덮어준다. 클레오가 엔젤의 무릎에 긴 주둥이를 기대온다. 맞닿은 피부가 서로를 데운다. 긴 밤이다.

처음 입양하던 날, 유독 귀가 뾰족한 황금빛 강아지에게 이집트 여왕처럼 생겼다며 ‘클레오파트라’라고 이름 붙이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까. 그날도 엔젤은 확신이 부족한 채 유기견 입양 줄에 섰다 빠져나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기르기엔 시간도, 돈도 부족한가 싶어 2년간 동물보호소 자원봉사만 하며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엔젤의 이름이 불리자 4개월 된 클레오가 그를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모든 망설임이 사라졌다.
이어진 9년은 두 존재가 온전히 겹쳐진 삶이었다. 식당 일을 하던 엔젤은 보통 10시간 넘게 외출해야 했는데, 클레오가 분리불안을 겪자 프리랜서 수리공으로 직업을 바꿨다. 오래 혼자 두기 미안했다. 4년 전 홈리스가 된 뒤로도 클레오를 버릴 순 없었다. 어디든 함께였다. 형제, 친척, 친구 집 소파를 전전했다. 차에서 자는 날도 생겼다. 주거가 불안정해지자 일을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엔젤의 가방에는 클레오의 털을 윤기 나게 빗어줄 빗과 목을 축일 물, 먹일 간식이 들어 있다. 엔젤이 굶는 날도 클레오의 밥만은 어떻게든 구했다. 늘 클레오가 먼저 먹는다. 지금까지 단 한 끼도 밥을 거르게 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도시의 동쪽에서도 다른 인간과 개가 길을 떠돈다. “짐 챙겨서 나가주세요.” 경찰관이 건조하게 말한다. 여성 홈리스인 메르시는 앙상한 손목으로 검은 개 로버의 목줄을 잡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래 머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어디서든 쫓겨난다. 짐을 싸는 일은 익숙하다. 추위는 혹독해서 가만히 누워 있어도 눈물이 고일 정도다. 중전철 환승역인 파월스트리트 역은 바깥보다 따뜻해서 되도록 오래 머무르고 싶었는데 아쉽다.
싱글 맘으로 아들을 키우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홈리스는 처음이다. 세 들어 살던 낡은 집에 곰팡이가 심하게 피었는데, 건물주는 수리를 핑계로 메르시 가족을 내보냈다. 거리로 나가기 두렵다. 추위가 아니라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다. 출근길에 낯선 사람에게 인종차별 폭행을 당한 뒤로 메르시는 늘 거리를 두려워했다. 4년 전, 버려진 강아지 로버를 구조하지 않았다면 우울증에 빠져 다시 밖으로 나올 수조차 없었을 거다. 홈리스가 되자 다들 개부터 포기하라고 했다. 개가 있으면 쉼터에 들어가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고들 했고,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생후 5주부터 돌봐온 유기견 로버는 가족이다. 임시 보호를 부탁해온 지인은 연락을 끊고 로버를 메르시에게 버렸다. 한 번 버림받은 개를 다시 버릴 순 없다. 메르시는 로버를 데리고 거리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후회는 없다. 가장 큰 공포도 로버가 버려지거나 안락사되는 것보다 두렵지는 않다. 로버를 자기 몸에 묶고 길에서 잠들고, 로버는 메르시를 지킨다. 메르시가 울면 로버가 눈물을 핥는다. 로버가 먹을 무료 사료 구하러 다니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로버가 충분히 먹고 쉬고 나면, 둘은 메르시가 먹을 음식을 찾아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다.

흔한 문제는 영양부족 아닌 과체중
수의사인 일라나는 거리의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진료를 보곤 했다. 거리 진료소(VetSOS)를 하는 날에는 여기저기서 기부받은 의약품과 사료 따위를 승합차에 가득 싣고, 홈리스들이 모여 사는 고속도로 고가나 폐차장 같은 장소로 찾아갔다. 홈리스들은 수의사를 쉽게 믿지 않았다. 동물통제국처럼 반려동물을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외려 겁을 집어먹었다. 승합차를 천천히 몰고 다니며 아이스크림 트럭처럼 “수의사가 왔어요, 수의사 도움이 필요한 분?”이라며 외치고 다녀야 했다. 일라나는 우선 개들에게 백신을 놔주고 간단한 치료를 하며 신뢰를 얻었다. 처음엔 믿지 않던 홈리스들도 무료 진료를 해준다는 입소문을 듣고 점차 개를 데리고 왔다. 다리를 저는 개, 이빨이 상한 개, 발톱이 길게 자란 개가 주인에게 이끌려 거리 진료소로 왔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하룻밤 개를 데려가도 된다는 보호자 동의를 받을 만큼 신뢰를 키우는 데는 보통 한 달쯤 걸렸다. 일라나는 혹시 홈리스들이 수술이 끝난 개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그들은 개를 내버리기는커녕 건물 바깥에서 밤을 지새우며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 이른 아침 문을 두드리며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윤리적 결단이 필요할 만큼 돌봄 상태가 끔찍한 동물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일라나의 우려는 지난 25년간 거리 진료소 현장에서 매번 기분 좋게 깨졌다. 개들은 전반적으로 건강하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가장 흔한 문제는 영양부족이 아니라 과체중이다. 엔젤과 메르시처럼 자신이 먹지 못할 때도 개에게만은 음식을 먹이는 데다, 보통 사료를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으니 큰 그릇에 쏟아놓고 마음껏 먹게 해서다. 개들은 길거리에서 자라 사교성이 높은 편이다. 일라나는 별 장난감이 없어도 길에 버려진 담요라도 주워 개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아주는 주인들을 보곤 했다.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관계가 끊긴 홈리스들에겐 반려동물이 유일한 가족인 경우가 많다. 주거가 없는 상태로 개를 기르려면 두고 다닐 수 없다는 걸 감수해야 한다.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니 서로 관계가 아주 끈끈하다. 주인에게 정신질환 문제가 없는 이상 학대는 본 적이 없다. 홈리스들은 반려동물과 동행할 수 없다면 쉼터나 지원 주거보다 차라리 차나 텐트에서 자길 택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홈리스의 절반가량이 쉼터에서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는 한 조사 결과가 이들이 처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홈리스의 거의 유일한 관계 자원인 반려동물이, 살 곳을 구할 때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홈리스에게 나름의 선의를 섞어 개를 팔라는 제안을 하곤 한다. ‘불쌍한’ 개를 구해주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일라나는 그런 제안에 응한 홈리스를 보지 못했다. “제 가족을 팔라는 말인가요?”라며 그들이 두고두고 상처받는 걸 일라나는 보았다.

홈리스와 반려동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며 일라나를 찾아온 사회학자 레슬리 역시 홈리스에게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콜로라도주 볼더의 여름, 교차로의 교통섬에서 개와 함께 구걸하는 홈리스를 보고 개가 안쓰러웠던 나머지, 자기에게 개를 팔면 ‘좋은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권했다. 당신은 홈리스의 삶을 택했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개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단호히 거부하며 레슬리와 실랑이를 벌이던 홈리스가 소리쳤다. “내 개는 잘 살고 있어요. 하루 종일 숲에서 뛰어논다고요. 배불리 먹고 물도 충분히 마시고 백신도 다 맞혔어요. 절대 나한테서 떨어지는 법이 없는 개니까 제발 우리 좀 내버려둬요.” 이 경험의 충격은 연구의 실마리가 되었다. 여기에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에서 목격한 상황이 더해졌다. 한 주인은 집이 있었지만, 개가 집에서 도망쳐 나와 보호소에 맡겨지자 귀찮다며 데리러 오지 않고 며칠을 끌었다. 반면, 한 홈리스 주인은 한 켤레뿐인 신발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걸어 다니며 잃어버린 개를 찾아다녔다. 매일 보호소에 들러 자기 개가 있는지 울며 확인했다. 홈리스가 ‘좋은 주인’이 아니라는 레슬리의 고정관념에 금이 갔다.
그 뒤로 레슬리는 이들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라나 등의 도움을 받아 반려동물을 기르는 홈리스 75명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에선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삶을 변화시키거나, 목숨을 끊지 않도록 도와준 존재로 등장하곤 했다. 가족과 유대를 잃고, 긴 거리 생활로 친구마저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반려동물에겐 의지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은 그들 삶의 닻이 되어 목적의식을 주고 ‘선한 자아’를 붙들게 해주었다. 연구 말미에 레슬리는 ‘자신을 넘어선 헌신’을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구원 서사가 특권적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게 아니며, 홈리스처럼 흔히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온 사람들도 반려동물을 향한 헌신으로 구원 서사를 지닐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그건 흔한 개인주의적 서사가 아니라 상호 의존 서사이기도 하다. 레슬리의 연구는 그간 일라나가 현장에서 관찰해온 이들의 관계성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2001년, 거리 진료소의 출발점에도 서로를 구원한 사람과 동물이 있었다. 팰리와 반려견 레드밸리다. 팰리는 ‘야생의 아이’였다. 엄마는 홈리스였다. 팰리와 남동생은 방치된 채 자랐다. 엄마가 재워주거나 옷을 입혀준 기억도 없다. 수풀에서 자곤 했다. 엄마는 알코올의존증과 약물중독이 있고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끌려가곤 했다. 자주 불안하고 시간 감각도 희미했다. 기억은 트라우마, 폭력, 혼란, 경찰 따위의 단어로 조각나 허공을 떠돌 뿐이다. 엄마는 팰리가 열 살 무렵 죽었다. 무연고자 무덤에 묻혔다고 했는데 어딘지는 모른다. 팰리는 무감각했다. 열한 살에 팰리는 이미 마약에 손을 댔다. 홈리스 공동체에 어울려 살았다. “영혼이 죽었다”라는 걸 마약조차 효과가 없을 때쯤 깨달았다.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건 동물들과 있는 순간뿐이었다.
맥도날드에서 하루 영업이 끝난 뒤 폐기하는 햄버거를 긁어 모아 폐차장으로 갔다. 햄버거 자루를 들고 낡고 부서진 차 안에 앉으면 아홉 마리는 족히 되는 개들이 짖으며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몇 시간이고 햄버거를 먹이고 있노라면 개들이 팰리 곁에 원을 그리며 누웠다. 폐차장에 다친 비둘기나 뼈만 앙상한 새끼 고양이가 보이면 며칠씩 돌봐줬다. 그러다 보면 혼란이 잠시 멈추고 고요가 찾아왔다. 기분이 바닥을 칠 때 동물보호소에 유기견을 보러 갔다. 입양은 꿈도 못 꿨다. 지금 환경에선 안전하게 기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호소에서 팰리를 응시하는 한 검은 개와 눈이 마주쳤다. 앞다리로 철창 문을 두드리며 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직원이 “저 개, 곧 안락사당한다”라고 툭 뱉고 지나갔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희망도 없던 어린 시절이 스쳐갔다. 두고 올 수 없었다. 팰리는 있지도 않은 집 주소를 꾸며내 서류에 적고 개를 데려왔다. 그게 레드밸리, 팰리의 첫 반려견이었다.

책임감 있는 주인이 되고 싶어서
폭력이 일상이던 팰리는 얻어맞을 때조차 무감각한 상태였는데, 당시 만나던 남자가 공격적으로 굴자 레드밸리가 격렬하게 떠는 걸 보고야 그 관계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온 마음을 다해 그 개를 지키고 싶어서였다. 개가 두려워한다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기존 무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와중에 감옥에 갇혔다. 3주 정도 레드밸리와 떨어져야 했던 죄책감은 그 뒤로 팰리의 인생을 바꿨다. 출소하던 날, 비가 내리는 거리에 맨발로 선 팰리는 이제껏 알아온 유일한 삶 밖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레드밸리에게 책임감 있는 주인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 레드밸리를 맡아주는 동안 팰리는 제 발로 중독치료 시설에 들어갔다. 술도 마약도 끊었다. 그 뒤엔 시립대학에 진학해 사진을 배웠다. 홈리스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홈리스를 위한 무료 진료 승합차에 동승해 촬영을 다녔는데, 홈리스 중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상당하니 무료 동물 진료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그때 생각해냈다. 홈리스들이 자기가 아플 때는 진료소에 가지 않더라도, 개는 꼭 치료받게 한다는 걸 팰리는 경험으로 알았다.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일라나는 최적의 파트너가 됐다. 거리 진료소 초기 시절, 팰리는 일라나와 승합차에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해 반려동물이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홈리스로 살아온 경험이 유효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지원을 받아 레드밸리와 살 첫 번째 집을 구했다. 집이 생기고 나서 유기견 임시보호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는 동물 구조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지난 25년간 팰리는 안락사될 동물, 버려진 동물 등 3만5000여 마리의 생명을 구했다. 누구에게도 받은 적 없는, 삶이라는 건축물을 쌓아 올릴 벽돌을 레드밸리와 동물들이 줬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동물을 위해 옳은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됐다. 팰리는 레드밸리가 ‘진짜 사랑’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엔젤은 얼마 전 4년 만에 간신히 임대 계약서를 작성했다. 클레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주려고 애써온 결과다. 새로운 집은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지역에 있는 단일 객실 주거(SRO)다. 오랫동안 저렴한 숙박업소로 쓰이던 건물을 노숙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로 전환한 공간이다. 방 한 칸은 2평쯤 된다. 긴 복도 끝에 공용 화장실이 있다. 세면도구를 챙겨 방 밖으로 나가면 클레오가 버려지는 줄 알고 깜짝 놀라니 앞으로 적응이 더 필요하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완전히 이뤄냈다고 말할 순 없지만, 클레오 덕분에 한 발짝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클레오가 아침에 코로 톡톡 쳐서 엔젤을 깨우고, 클레오가 이끄는 곳이 어디든 한참 둘이서 산책하다 보면 어느덧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장소에 도달하는 것과도 비슷한 일이다.
이사 온 첫날 밤, 엔젤은 클레오를 다정히 다독이며 말을 건다. “클레오, 우리 새집 찾았다. 엄청 좋은 집은 아니지만 이제 여기서 한동안 머무를 수 있어. 이웃이 많다 보니 좀 활발한 건물이다, 그치?” 옆방에서 대화나 발걸음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자 클레오가 귀를 쫑긋 세운다. “걱정 마. 우리 집에 왔어.” 클레오는 엔젤을 바라보더니 침대에 올라와 어깨에 기대온다. 클레오가 알아들은 것 같다고 엔젤은 생각한다. 클레오가 이내 침대 위로 몸을 길게 뻗고 눕는다. 그리고 까무룩 잠든다. 엔젤이 줄곧 보길 기다려온 장면이다.
샌프란시스코·김인정 (논픽션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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