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전자·200닉스’가 끝이 아니다?… 바통 이어받을 ‘종목’은?

정채희 2026. 5. 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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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게임 A. 1억원 딸 확률 100%
게임 B. 1억원 딸 확률 89%, 5억원 딸 확률 10%, 꽝 확률 1%

최근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화제를 모은 설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은 생전 한국인의 투자 심리를 두고 “왜 내 이론대로 행동하지 않느냐”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전 세계인 대부분이 안전한 ‘A’를 선택할 때 한국인은 기꺼이 ‘B’를 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획득의 순간에 모험을 피한다는 그의 ‘손실회피성향’ 이론이 유독 한국 시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100% 확률의 1억원보다 1%의 ‘꽝’이 섞였을지언정 5억원을 거머쥘 수 있는 89%의 확률에 베팅하는 한국인의 기질은 올여름 반도체 투자 시장에서 다시 한번 증명될 전망이다.

 레버리지가 바꿀 삼전닉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6,600선을 돌파한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현황판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종가가 표시돼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 4월 28일 금융투자교육원이 개설한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P 거래 사전교육’ 온라인 과정에는 첫날에만 2056명이 몰려들었다. 이 중 1654명은 1시간의 추가 이수 과정을 당일에 즉시 끝마쳤다.

5월 22일로 예정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량주 기초자산의 ‘단일종목 레버리지(±2배) 상품’ 등장을 앞두고 벌어진 진풍경이다. 금융당국이 까다로운 요건을 갖춘 종목에 한해 이 판을 허용하자 투자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승부수를 던질 준비를 마쳤다. 

전문가들은 연초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삼전닉스’의 투자 전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분석한다.

KB증권은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메모리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AI 추론 시대의 핵심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목표주가 36만원을 제시했다. JP모간(30만원), 노무라증권(32만원), 화타이증권(35만6000원) 등 국내외 주요 증권사들 역시 장밋빛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목표주가 200만원 시대가 열렸다. 노무라증권이 목표가를 234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데 이어 미래에셋, 다올, 한국투자증권 등도 일제히 200만원 이상을 부르고 나섰다.

우선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는 노조의 ‘5월 총파업’ 예고라는 대형 악재를 맞닥뜨리며 강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노조가 5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을 예고함에 따라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주가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오히려 가격 상승의 트리거로 해석하는 역설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파업이 현실화된다면 메모리 생산 차질이 공급 부족을 심화시켜 가격 상승 압력을 한층 강화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삼성전자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고려할 때, 생산 라인 정지는 전 세계 공급망에 거대한 구멍을 낸다. 이는 공급 감소가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삼성전자가 보유한 기존 재고 가치가 치솟는 ‘역설적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가 파업 우려로 주가가 눌려 있는 사이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특히 레버리지 ETF의 출시는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부을 전망이다. 상품 운용 과정에서 개별 종목의 선물 매수 수요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의 선물 약정대금이 현물 거래대금 대비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선물 수요 증가는 SK하이닉스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외적인 환경도 우호적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서프라이즈는 AI 관련 수요를 재확인시켰다. 특히 인텔의 발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에 국한됐던 수요가 CPU까지 확산되고 있음이 드러나며 업계 전반에 훈풍이 불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4월 29일 “반도체 산업이 과거의 변동성 큰 ‘붐 앤드 버스트(호황 뒤 불황)’ 주기에서 마침내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요의 중심이 가전제품에서 거대 AI 빅테크로 이동하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이 2028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계론도 존재한다. 삼성전자의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반도체 산업의 생명인 ‘적기 공급(Just-In-Time)’에 차질이 생기면 거물급 고객사들이 리스크 분산을 위해 삼성전자의 비중을 낮추는 ‘멀티 벤더’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 번 이탈한 고객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며 파업 시 영업이익이 최대 10조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 심리 면에서는 고점 신호가 감지된다. BNK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과 밸류에이션 부담을 근거로 투자의견을 ‘보유’로 하향 조정하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이경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개인 거래 비중 증가와 외국인 순매도 등 과거 반도체 업종 하락을 유발했던 조건들이 충족된 상태”라며 5월부터는 다른 업종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부품주의 화려한 재평가

반도체 대형주에 일부 신중론이 고개 들고 있지만 이를 업종 자체의 퇴보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근 주가 상승이 칩 설계(팹리스)와 제조사에 집중됐던 만큼 최근 들어 그 온기가 후방 산업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핵심 부품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17년 말과 2021년 초 사례를 보면 대형주가 고점을 기록한 이후에도 후공정 소부장주의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졌다.


‘낙수효과’의 중심에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자리한다. ‘삼전닉스’가 닦아놓은 AI 반도체 길 위로 고사양 기판이라는 핵심 부품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제 반도체 칩이라는 알맹이를 넘어 그 집을 짓는 ‘기판’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리기판’ 등 차세대 기술이 부각되면서 전통적인 부품주로 분류되던 기업들이 반도체 핵심 파트너로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고사양 패키징 기판(FC-BGA)의 공급 부족은 주가에 불을 붙였다.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이 차세대 GPU로의 전환을 가속화함에 따라 기판이 더 커지고 층수가 높아지는 ‘대면적·고다층화’가 진행되면서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4월 한 달에만 주가가 두 배 넘게 뛰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AI 서버용 기판의 병목 현상이 심화하자 유리기판 선두주자인 삼성전기에 자금이 몰린 결과다. KB증권은 삼성전기의 목표주가를 105만원까지 대폭 상향하며,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와 패키징 기판 등 AI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 수혜가 실적에 즉각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전기의 MLCC 가동률은 작년부터 95% 이상의 풀가동 상태를 유지하며 가파른 실적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그간 스마트폰 업황에 실적이 묶여 ‘저성장 부품주’로 인식되던 LG이노텍 역시 기판주로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글로벌 선두 업체들이 AI 서버용 초고성능 기판에만 생산 역량을 집중하면서 역설적으로 범용 기판 및 서버용 CPU, 자율주행용 기판에서 거대한 공급 공백이 발생했다. LG이노텍은 이 틈새를 공략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를 LG이노텍 기판 부문이 스마트폰 중심의 밸류에이션에서 탈피해 반도체 기판 중심의 밸류에이션으로 재평가받는 원년으로 꼽았다. FC-BGA 매출 가세에 힘입어 기판 부문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4.8%에서 올해 11.2%까지 수직 상승할 전망이다.

 삼전닉스보다 더 잘나간 소부장 

대형 부품주뿐만 아니라 전문 소부장 업체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 한 달간 소부장 종목들은 삼성전자(32.78%)와 SK하이닉스(61.09%)의 상승률을 압도하는 성적표를 내놓았다.

장비주에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114.99%의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고 티에스이(65.37%)와 테스(56.32%) 역시 강력한 오름세를 나타냈다. 소재 부문에서는 후성이 99.57% 상승하며 저력을 과시했고 원익머트리얼즈(39.92%)와 에스앤에스텍(35.18%)도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기판 및 부품 전문 기업들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심텍은 한 달 새 82.30% 급등했으며, FC-BGA 비중이 큰 대덕전자는 42.50%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이미 증설을 검토해야 할 정도로 가동률이 치솟고 있다. iM증권은 대덕전자가 자율주행차와 데이터센터용 양산을 본격화하면서 내년 1분기에는 가동률 100%(올해 1분기 70%)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티씨케이 역시 38.29% 오르며 힘을 보탰다.

반도체 랠리는 ‘칩’에서 ‘기판’으로, 그리고 ‘전공정’에서 ‘후공정’으로 매수세가 확산되는 전형적인 순환매 장세의 양상을 띠고 있다. 반도체 완제품 가격 상승과 HBM 수요 폭증은 결국 이를 뒷받침하는 소부장 생태계 전체의 단가 상승과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선순환 고리다. 

전문가들은 이 뜨거운 랠리의 끝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로 ‘금리’를 주목한다. ‘금반지(금융·반도체·지주회사)’라는 투자 키워드로 반향을 일으킨 이선엽 AFW파트너스 대표는 “진짜 매도 시그널은 전쟁이 아닌 금리에 있다”고 단언한다. 전쟁 변수가 시장을 위협했던 근본적인 이유도 결국 유가가 물가를 자극하고 금리를 건드릴 가능성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금리가 오르면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점을 핵심으로 꼽는다. 주가가 계속 오르기 위해서는 누군가 뒤에서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받아줘야 하는데 유동성이 마르면 그럴 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스페이스X나 오픈AI 같은 거물급 IPO 물량이 쏟아져 나오며 자금을 흡수하는 수요처는 늘어나는 반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돈의 공급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이 대표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돈의 공급이 줄기 때문에 그때가 정점”이라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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