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하원 시간 맞춘 퇴근…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txt]

한겨레 2026. 5. 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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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 l 물류 공장의 택배 발송 담당 최윤정씨
사회복지사로 10년 일하다 출산 뒤 경력 단절
하원 시간 맞출 수 있는 일자리 찾아 이곳으로
“송장이 가벼워질 때 희열과 보람 느껴요”
‘일하는 엄마’의 설 자리 여전히 좁은 현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최윤정씨는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는 물류 공장에서 택배 보내는 일을 한다. 그는 아이를 낳기 전 사회복지사로 10년 일했지만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최윤정씨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최윤정씨는 물류 공장에서 일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10년 동안 일했던 그는 2019년 10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거주지를 옮겼다. 윤정씨가 정착한 곳은 인천이었다. 결혼 직전까지만 해도 그는 ‘수도권이라면 답답해서 사람 살 데가 못 된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인천에 와서 윤정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공을 살려 일할 곳을 찾는 것이었다. 복지관과 공공복지센터 여럿에 이력서를 제출한 직후에, 그는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 복지관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배가 불러올수록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이제 막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이 육아휴직을 떠나면 자신이라도 싫을 것 같다고, 윤정씨는 생각했다.

예쁜 남자아이가 태어난 뒤에, 한동안 그는 일하는 삶을 뒤로 미루고 육아에 힘썼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 여유가 생기자,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 풀타임 직업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윤정씨는 각종 구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머지않아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나 카페 아르바이트라는 걸 깨달았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안 각종 자격증을 따두었다. 웃음 치료 같은 자격증은 물론이고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있었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들고 카페 면접에 가는 열정도 보였지만,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줄 일터는 없었다.

“직장 상황 때문에 아이 아빠가 몇년 전에 지역을 옮겼어요. 그 바람에 갑자기 주말부부가 되었고요. 따라서 옮기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육아만 하다 보니 몸이 힘든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서 좀 우울했어요.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이렇게라면 정말 안 되겠다, 밖으로 나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이래저래 일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남편의 권유도 있었다. 더 여유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맞벌이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물어물어 찾게 된 자리가 물류 공장에서 택배를 포장하는 일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고, 회사가 아이 엄마로서의 일정을 이해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나갔다.

그래도 사회복지사로 일했을 때가 가끔 기억난다. 10년 내내 별일을 다 겪었다. 그 시작은 수능을 앞두었을 즈음이었다. 아버지와 어느 대학교 앞을 지나다가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학과를 홍보하는 펼침막에 ‘사회복지학과’라고 적혀 있었고, 그게 멋져 보였다.

“아버지한테 ‘나 사회복지학 어떨까?’ 했더니 그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에 전공을 결정해버렸어요. 아이를 좋아해서 유아교육학도 함께 전공했고요. 유치원 선생님을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청소년 복지센터에 취직하게 되었고, 몇년 뒤에는 노인 복지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복지관으로 이직했어요. 그다음으로 광역시 구청 소속 지역자활센터에서 지역 사회 복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경력이 끊겼어요.”

비교적 최근인 자활센터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들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문턱이 닳도록 경찰서에 갔다는 얘기부터 한다. 사정이 딱한 사람들도 너무 많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들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데 윤정씨 스스로 감성적인 사람이다 보니 일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가정폭력으로 도망 나온 아이 엄마와 서로를 붙들고 울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한 50대 남성은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갔더니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냐고 물었다. 근사한 이야기는 못 하겠다면서, 윤정씨는 말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이 고생하는 거라고, 너만 고생하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도요. 일할 때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말라는 말도 좀 해주고 싶네요. 밤마다 제발 울지 좀 말라고요.”

최윤정씨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는데 오후 5시에 하원한다. 최씨는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사진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 최윤정씨 제공

그래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게 좋았다는 윤정씨에게 다시 사회복지사로 일해보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다.

“때가 되면 다시 일하게 되겠죠. 아이가 학교에 간다거나 하는 계기로 지금보다 제 시간에 여유가 생길 수도 있을 테고요. 전업으로 직장 잡을 기회가 생긴다면 원래 했던 일들을 먼저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기회가 없어서 전공했던 일들을 이어가지 못해도, 아무 회사나 가도 상관없어요.”

사람 좋아하고 감정 풍부한 윤정씨는 지금은 인천 북항의 한 공장으로 들어가 물건을 보내는 일을 한다. 윤정씨는 택배 송장에 물건 받을 사람 이름이 적혀 있으니, 그것도 사람을 위한 일 아니겠냐고 했다. 윤정씨와 일을 함께 시작한 사람은 3명이었는데, 다들 윤정씨처럼 아이를 키우는 주부였다. 다만 윤정씨는 ‘주변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아이 하원을 직접 해야 하니 오후 5시에 퇴근이 가능해야 출근할 수 있다’고 회사에 말했다. 회사는 윤정씨의 상황을 이해해줬다. 그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출근하면 우선 주문 들어온 물건들을 포장하고 택배 발송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요. 특히 주말이나 긴 연휴 다음날이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요.”

윤정씨가 출근하는 회사는 송장이 오전 한번, 오후 두번으로 세번 나온다. 오전 발송 업무가 오후까지 넘어가는 일은 허다하다. 택배 발송 업무가 끝나면 반품으로 되돌아온 물건들이 윤정씨를 기다린다. 목록을 확인하고 반품 선반에 정리한 뒤에는, 발송해서 부족해진 물건들을 보충해둔다. 그 와중에 새 상품까지 들어오면 말 그대로 혼이 나갈 듯 바빠진다. 상품은 보통 커다란 컨테이너로 들어오는데, 지게차로 화물 운반대를 옮길 때 주변에 있으면 다칠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물건이 보충되어서 공장이 북적북적해지면, 윤정씨는 컨테이너 없는 쪽으로 가져가 택배 포장을 하거나 물건들을 정리해둔다. 좀 쉬어도 될 때에도 윤정씨는 계속 몸을 움직인다.

“물건으로 꽉 찬 박스를 옮기는 일은 제가 힘이 부족해서 못 하니까, 다른 거라도 도와드려야 마음이 놓여요.”

윤정씨가 일을 시작한 건 겨울이었는데, 공장이 컨테이너 건물이라서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실내에 난로가 있었지만,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거센 탓에 공기가 한번도 제대로 따뜻해진 적이 없었다. 여름에는 끔찍하게 더운데, 송장이 날려 섞여버리기 때문에 선풍기를 쐴 수도 없다. 더운 게 너무 싫다는 윤정씨는 더워져가는 날씨를 보며 단단히 각오 중이다.

언제 보람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그는 들고 있던 송장이 가벼워져갈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퇴근 때까지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미루지 않고 그날 해야 하는 일을 마무리하면 개운하다. 가끔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낼 때와 비슷할 정도로 뿌듯함이 찾아와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제가 보내는 택배의 수신처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많아요. 그들이 회사 물건을 착용하고 나올 때, ‘내가 보낸 물건일 수도 있겠네’ 생각해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지압 슬리퍼를 쓰고 있으면 ‘저 사람도 나랑 취향이 비슷하려나’ 하고 웃기도 해요.”

몇 시간 동안 그 일을 반복하고 나면 아이 하원 시간이 금방 돌아온다. 다시 엄마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하원한 아이를 데려가 밥을 먹이고, 씻기고, 아이와 놀아주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어느새 잠을 잘 시간이 된다. 아이 아빠는 토요일이 되면 집에 돌아와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에 간다. 최근 문자 메시지를 쓸 줄 알게 된 아이가 아빠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면, 주중에 새벽 근무를 마치고서라도 집에 왔다 갈 때도 있다.

윤정씨는 요즘 자기 손으로 번 돈을 모으는 일이 뿌듯하다. 얼마 되지 않아도 부지런히 모아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와 여행을 많이 가고 싶다. 유럽에서 공부한 언니 덕분에 외국에 일찍 나가 여행의 재미도 알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때마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 넓은 세상을 아이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여행도 가겠죠. 아이가 잘 성장해나갈 수 있게, 단단하고 예쁜 마음으로 세상에 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윤정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일에서 반드시 어떤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내가 오래 갖고 있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자고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윤정씨는 어떤 일이든 해야 했다. 일의 경중, 종류, 선호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이해해준 회사에 감사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더 찾아본다는 윤정씨의 마음을 나는 한참이나 되새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엄마의 마음이었다. 인터뷰하던 날 윤정씨는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여섯살 된 아이는 건강한 편인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감기에 자주 걸려 온다. 감기를 엄마에게 옮기는 일도 예삿일이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윤정씨가 언제 쉬는지 궁금해졌다. 그 질문을 받고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이를 낳고 혼자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도무지 계획적으로 되는 일이 없다고, 그런데 또 어떻게 하다 보면 살아지더라고.

“제가 아프면 안 되니까 아이가 잘 때 무조건 함께 자려고 해요. 아이가 일어나면 제가 아프든 말든 일어나야죠. 5분 대기조 같네요.”

아이 낳은 걸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윤정씨는 마지막까지 강조했다. 몸이 허약해 임신이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생긴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건강히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윤정씨. 그것이야말로 단단한 마음, 아이가 세상을 오롯이 살아가도록 돕고 싶은 부모의 마음 아닐까. 나는 윤정씨를 보며 새삼 ‘엄마’는 아무래도 가장 강한 단어 아닐까, 생각했다. 한편으로 나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만약 그에게 경력을 이어가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럼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싶은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엄마를 배려하는 일터가 여전히 적다는 사실, 더군다나 그의 전문 분야는 사회에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복지였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최유안 작가

최유안 l 월급사실주의 동인.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보통 맛’, 장편소설 ‘백 오피스’, ‘새벽의 그림자’ 등을 썼으며,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유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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