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쇼크에 탄소배출권 고공행진…국내 시장 전망은

전범진 2026. 5. 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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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투자 트렌드


이란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쇼크 속에 탄소배출권이 전 세계 금융권과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 사용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탄소배출권 수요도 덩달아 확대된 결과다.

탄소배출권의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에선 일부 국가들이 배출권의 적용범위 축소를 요구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 한 달 새 고공행진

지난 3월 17일부터 4월 17일까지 탄소배출권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돋보이는 성과를 올렸다. 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의 벤치마크인 유럽연합 탄소배출권(EUA)은 한 달 사이 14.48% 상승해 톤당 77.46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국내 2025년 할당 탄소배출권(KAU25)도 3월 이후 21.81% 급등해 4월 17일 종가 기준 톤당 1만6750원에 거래되었다. 지난해 8월 톤당 8000원대까지 떨어졌던 가격이 8개월 사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테마 가운데 돋보이는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EUA와 캘리포니아(CCA), 미 북동부(RGGI) 시장의 탄소배출권 선물에 투자하는 HANARO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 ETF는 최근 한 달 동안 17.6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유럽선 ‘전력 기업 예외 처리’ 요구도

탄소배출권 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유럽에선 정치권까지 나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TS)에 대한 논쟁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이에 따라 에너지 생산 가격도 오르자 발전 단가에 녹아 있는 탄소배출권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다.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건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1990년 주요 선진국 중 사실상 최초로 탈원전을 완료한 이래 구조적으로 높은 전기가격에 시달려 왔다. 에너지 데이터 집계업체인 글로벌페트롤프라이시스닷컴에 따르면 2023년 1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3년 동안의 전기 가격을 비교한 결과 이탈리아의 평균 가정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0.415달러였다. 이는 해당 업체가 집계하는 145개 국가 중 3위로, 한국(kWh당 0.126달러)의 3배가 넘는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사실상 EU가 각국에 부과하는 실질적 세금”이라며 “에너지 생산 기업들을 탄소배출권 거래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아예 전력 부문에서 ETS 적용 중단을 공식 요구하는 요청안을 유럽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 폴란드 등 총 10개국이 해당 요청에 동조하며 “현행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산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탈리아만큼이나 높은 전기요금으로 알려진 영국도 행동에 나섰다. 영국 재무부는 4월 16일 화석연료 발전소에 부과해 온 톤당 18파운드의 추가 탄소세를 2028년부터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페트롤프라이시닷컴이 집계한 영국의 평균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당 0.404달러로 145개국 중 7위다.

논란 속 개편 발표… 우상향 전망 여전

논란이 지속되자 EU 집행위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주요 축인 시장안정화비축제(MSR)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과거까지 EU는 과잉 공급되는 배출권을 MSR에 비축해 해당 물량이 4억 톤을 넘으면 초과분을 매년 자동으로 소각했다. 과잉 공급을 막아 탄소배출권의 가격 하락을 막고,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개편을 통해 소각 규정은 삭제되고, 오히려 배출권 가격이 과열되면 필요에 따라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도입됐다. 

그럼에도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탄소배출권 거래제 개혁안을 고려하면 EUA 가격의 구조적 우상향을 전망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개혁안에 따라 무상 할당되는 배출권의 양은 축소되고, 유럽으로 수입되는 고탄소 제품에 배출권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확대 적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 가격의 장기 상승 경로는 유지될 것”이라며 “단기 정치적 노이즈로 인한 가격 조정은 오히려 구조적 저평가 국면의 투자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배출권 가격도 글로벌에 수렴할 것”

탄소배출권 시장의 후발 주자인 동아시아도 점진적으로 거래제 확대에 나섰다. 지난 4월부터 일본 내 탄소배출량이 연간 10만 톤을 넘는 400여 개 기업은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고, 9월까지 배출량 감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일본 전체 탄소 배출량의 60%를 차지하는 이들 기업을 의무적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에 참여시키는 구상이다.

국내에서도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고 일반 투자자에게 개방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배출권 거래시장은 2015년부터 한국거래소에 의해 개설 및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위탁매매 제도가 도입되면서 증권사를 통한 개인 거래도 가능해졌다.

거래소는 내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탄소배출권 선물시장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 선물시장이 열리면 ETF나 상장지수증권(ETN) 등 선물을 기반으로 한 간접투자 상품 출시가 가능해진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4개 탄소배출권 ETF와 3개 ETN은 모두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배출권 선물을 담은 지수를 추종하는 구조다. 

아직까지 국내 배출권 가격은 해외 시장에 비해 크게 저평가되어 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4월 17일 기준 종가인 톤당 1만6750원은 EUA 가격 77.46유로(약 13만4320원)의 12.4% 수준이다. 중국과 비교해도 약 80%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확정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의 구조를 고려하면 국내 배출권 가격도 장기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기 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2030년까지의 배출허용 총량은 25억3730만 톤으로 이전 4년 대비 16.8% 감축됐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도 2025년 10%에서 2030년 50%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돼 무상 공급량이 축소되는 구조다.

전범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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