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 정부는 매입 늘린다는데…‘속도’와 ‘품질’ 딜레마

이세중 2026. 5.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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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다 지어놓고도 주인을 찾지 못한 준공 후 미분양. 건설사 입장에서는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입니다.

대출 만기가 다가오며 원금 상환 압박이 현실화하지만, 현금(분양 대금)은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 미분양 앞에 '악성'이란 글자가 따라다니게 됩니다.

정부가 집계한 지난달(3월) '악성 미분양' 물량은 전국 3만 429가구입니다. 2024년 12월 2만 1,480가구에서 2025년 12월에는 2만 8,641가구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후 올 2월에는 3만 가구를 넘었습니다.

정부는 악성 미분양 물량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직접 매입'이란 카드를 꺼냈습니다. 지난해 3,000가구, 올해 5,000가구로 매입 목표도 늘렸습니다. 하지만 악성 미분양 물량은 왜 줄지 않는 걸까요.

■ "지방 노동자 주거지원, '악성 미분양' 감소" …선도 사례 매입 29가구, 공장서 수십 km 떨어져

국토교통부는 최근 미분양 아파트 3차 매입 계획을 공고했습니다. 기존에는 준공된 미분양 주택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3개월 이내 준공 예정 아파트까지 포함하고, 단지 전체가 아닌 부분만이라도 매입할 수 있도록 개선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방 노동자에게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 첫 번째 사례로 광주광역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를 선정했습니다. 회사 인근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GGM 노동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지난해 말 광주시와 LH가 이를 위해 협약을 체결했을 당시 대통령은 관련 소식을 SNS에 올리며 "고용 창출과 지역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모범 사례"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악성 미분양 매물을 LH가 사들인 뒤, 노동자들에게 시세의 90%, 최대 8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전세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LH가 매입한 광주 물량은 1개 단지, 29가구뿐입니다. 지난달 기준 광주의 악성 미분양 물량이 715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4% 수준입니다.

게다가 LH가 매입한 29가구의 위치도 문제입니다. 회사가 위치한 광주 광산구와 30km 정도 떨어진 광주 남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광주시와 GGM 측이 수요를 조사하고 있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출퇴근하기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달 안에 세부적인 입주 기준을 마련할 방침인데, 지방 노동자들의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당초 홍보 내용과는 사뭇 달라서 이 29가구조차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매입'에 열을 내며 속도를 내는 모습과 달리 매입 규모 등을 고려하면 실제 현장은 다소 '미지근한' 모습입니다.

■ 매입 2천 가구도 못 했는데 올해 5천 가구…'악성 재고' 떠안을까 우려

당초 정부가 계획한 매입 물량은 지난해 3,000가구입니다.
하지만 실적을 보면, 1차 92가구, 2차 1,861가구 수준으로 목표 물량의 3분의 2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2차 물량은 아직도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올해 목표치를 5,000가구로 더 높여 잡았습니다. 이를 달성하려면 지금까지 사들인 물량의 2배 넘게 매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야심 찬 목표와는 다르게 매입에는 속도가 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무턱대고 사기만 했다가는 자칫 '악성 재고'를 LH가 떠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실을 볼 위기인 건설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비싼 값에 LH에 넘기고 싶어 하지만, 시세보다 높게 사들인다면 그만큼 건설사 대신 공공이 손실을 봐야 합니다.

현재 LH의 매입 상한 기준은 감정가의 90% 수준입니다. 기존에는 83% 정도였는데, 건설사 참여가 저조해지자 올린 겁니다. 당연히 공공의 부담도 그만큼 높아진 상태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사들인 주택을 청년이나 신혼부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상품성이 낮은 주택을 사들였다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공실이 발생할 거고, 이는 온전히 LH, 즉 공공의 적자로 남게 됩니다. 이 때문에 주택의 품질, 입지, 교통에 평형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에도 매입 신청 건수 대비 통과율은 20~30% 수준이었습니다.

■ 15년 만에 나온 '악성 미분양' 매입…LH '균형점' 찾을 수 있을까

지난해 정부가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나선 건 2010년 이후 15년 만이었습니다. 왜 민간 건설사의 사업 실패 비용을 공공이 떠안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상당수는 이미 시장의 평가가 끝나 임대 수요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특정 민간 건설사 지원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특히 악성 미분양 물량을 방치하면 지방 부동산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고, 해당 지역 경제를 넘어 거주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사 폐업 신고는 1,088건으로 전년보다 17.6% 늘었습니다. 최근 공사비가 급등한 데다 이 같은 악성 미분양이 계속 쌓이면서 건설사들의 유동성이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건설 경기가 미치는 연쇄적인 파급을 고려하면 일정 부분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건설 경기 위축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조치는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악성 미분양 주택 매입은 연착륙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방 미분양 물량 가운데 우량한 곳들을 중심으로 옥석을 가려 매입해야 한다. 정부가 매입 물량과 시기 등을 무리하게 강제하게 되면 목표를 채우느라 일부 심사가 부실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토부는 6월 5일까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차 매입' 신청받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현재 국토부는 올해 5,000가구를 채우겠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정부의 속도전과 '옥석 가리기' 그 사이에서 LH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놓였습니다.

[그래픽: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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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중 기자 (ce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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