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만난 50 언저리 두 여성의 버디물···‘소라와 진경’ 이 모험을 응원하며[위근우의 리플레이]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6. 5.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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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불확실한 미래를 통과하며 지금에 이른 두 사람
삶의 경로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그들이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는 대신 다시 현재를 살아보려
미래를 향해 걷는다, 숨을 헐떡이며 현재의 워킹으로
<소라와 진경>의 한 장면. MBC 제공

MBC 새 예능 <소라와 진경>의 기획을 보고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소라와 홍진경이 재회해서 예능을 찍는다고? 너무 천재적인데? 둘째, 그런데 둘을 데리고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에 도전한다고?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이유는 단순했다. 이미 모델 선후배로서 과거의 인연이 있고, 서로의 자리에서 꾸준히 흥미로운 커리어를 쌓아왔던 두 사람이 지금 이곳에서 추억을 나누고 15년 간 만나지 않았던 관계의 공백을 소소한 일상적 경험으로 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연스럽고 재미있을 텐데, 왕년의 모델이라고 런웨이에 도전하는 건 제작진의 과욕처럼 보였다. 그리고 첫 화를 본 소감은 이렇다. 그들의 런웨이 도전기가 너무나 궁금하다.

기껏 정성 들여 준비한 포트폴리오 북이 현역 모델인 신현지에게 식당 메뉴판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웃겨서만도 아니고, 역시 현역 모델 앞에서 워킹 중 고릿적 중간 턴을 했다가 홍진경에게까지 놀림을 받고 멋쩍어하는 이소라의 허당끼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프로그램 패널인 김원훈의 표현을 빌리면 ‘50 언저리’인 두 사람이 요즘 트렌드와의 거리감에 당황하거나 외려 당당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건 사실이다. 고현정 같은 50대 톱스타가 유튜브나 SNS를 시작하며 겪는 동시대 문물 적응기가 그 자체로 인간미 넘치는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거나, 아예 20년의 시대적 괴리를 콘셉트로 삼는 채연의 유튜브 채널 ‘2005 채연’이 인기를 끄는 흐름이 <소라와 진경>에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다만 그게 다는 아니다. 두 사람의 런웨이 도전은 그들이 모델로 활동했던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는 장치인 동시에, 그들이 런웨이를 떠나 쌓아온 세월과 경험을 지금 이곳에서 자기만의 미학으로 드러내는 기회다. 90년대 초반 데뷔했던 모델들의 복귀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30년 넘게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아온 두 여성의 새로운 무대이기도 하다.

제작진과의 두 번째 미팅 당시 “너무 무모한 도전”이라던 홍진경은 그럼에도 미의 기준이 다양해진 최근의 런웨이 경향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다. 이소라와 홍진경이 한국 모델 역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업계 전설이자 여전히 화보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현역일 때와 동일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는 없다. 대신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이 젊은 시절의 그것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영광의 재현이 아닌 지금이기에 가능한 도전. 심지어 이소라에게 패션모델 활동 시절은 꼭 영광의 시절도 아니었다. 그는 제작진과의 대화에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혹독했던 다이어트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런 그가 다시 런웨이에 서보려는 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에게 당시와 다른 경험을 남겨주고 싶어서다.

비록 올드한 워킹을 지적받을지언정, 두 사람은 과거에 머문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포트폴리오처럼 사용하는 현직 모델들에 비해 이소라의 피드는 전략적이지 않고 산만한 편이지만, 그가 나이 들어 취미 붙인 탐조(探鳥) 게시물에 대해 후배 모델들은 이런 자연 친화적 피드가 요즘 쿨한 유럽 스타일이라고 응원해준다. 그저 유행의 우연성 때문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쿨함이든 무엇이든 모델로서의 미덕과 가능성을 1992년 슈퍼모델이 아닌 현재의 이소라로부터 찾아낸다는 것이다. 다양한 채널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인플루언서로서의 홍진경은 말할 것도 없다.

친했지만 “모두 다 힘든 시간”(이소라)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멀어졌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지난 15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애틋하지만, 또한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데뷔 초 “포즈 잘 취하는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10대의 홍진경은 실제로 MBC <무한도전>을 비롯한 여러 예능에서 전설이 된 ‘짤방’들을 탄생시켰고, 최근인 2024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에서도 수상하며, 이소라의 표현을 빌리면 TV를 틀면 나오는 사람이 됐다. 그에 반해 이소라는 화려한 전성기 이후 대외적 활동은 뜸한 편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홍진경에게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시즌제로 방영한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커리어”로 소개한다. 사실이다. 해외 프로그램을 본뜬 케이블 프로그램이 범람하던 시기에 세계적인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이던 <프로젝트 런웨이>의 포맷을 정식으로 구입해 만든 해당 프로그램은 당시 패션계에도 방송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당시 원작의 매뉴얼을 따르느라 조금 어색했던 이소라의 코멘트와 말투가 현재 세대에게 일종의 밈으로 소비되고, 홍진경의 <무한도전> 출연 장면도 온갖 곳에 밈으로 사용된다는 건 흥미로운 우연이다. 치열하게 부딪혔던 현재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그 모든 맥락에서 분리되고 파편화된 밈이 된다. 웃거나 조롱할 권리는 동시대에 주어지며 과거는 쉽게 우스운 것이 된다. 하지만 <소라와 진경>은 두 사람, 특히 ‘오운완’이라는 신조어를 사람 이름으로 아는 이소라 같은 이를 냉동인간 캐릭터로 소비하는 쉬운 유혹에 빠지기보다는 존중을 택한다. 만약 <소라와 진경>이 두 사람의 잘나가던 순간들을 소위 추억팔이로 소비했어도 충분히 재미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 순간들을 지금 뒤돌아보니 재밌는 과거로 그려내는 대신, 90년대 초반 데뷔한 두 사람이 계속해서 새롭게 맞이해야 했던 현재적인 사건으로 연출한다. 지금 보면 당황스러운 MBC <별>에서의 세기말적인 CG 장면조차.

오랜만에 재회한 이소라와 홍진경의 애틋한 대화와 ‘50 언저리’의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 도전이 프로그램 안에서 상당히 일관성 있게 정렬되는 건 그래서다. 이소라는 김치 사업으로 성공한 홍진경의 사업 감각에 대해 “미래에서 왔어?”라고 묻는다. 방송에선 이소라 특유의 사차원 유머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굉장히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지금 홍진경을 이미 성공한 사업가로 보는 건 쉬운 일이지만, 이소라의 말처럼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미래를 예측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가 한때는 불확실한 미래였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 도전 역시 언젠가는 과거가 될 아직은 불확실한 미래다.

90년대 초반 슈퍼모델 선후배로 인연을 시작한 두 사람은 매 순간 불확실한 미래를 통과하며 현재에 이르렀고, 그 현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듯 꽤 보기 좋다. 삶의 경로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했던 그들이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는 대신 함께 다시 현재를 함께 살아보려 미래를 향해 걷는다. 숨을 헐떡이며 현재의 워킹으로. 그래서 <소라와 진경>의 장르는 버디물이다. ‘50 언저리’인 그들에게도, 아니 ‘50 언저리’에서만 가능한 경험 때문에 인생은 언제나 새로운 모험이다. 그 모험을 응원한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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