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 속의 한국] 어느 한국인 부부 울린 ‘비정한’ 추방 원칙

줄리어스 남(전 미국 LA 연방검찰청 검사) 2026. 5.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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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류 요건 7년 채운 한국인 ‘왕 부부’
‘극심한 어려움’ 주장하며 추방 유예 신청
대법원은 수용 않고 이민국 손 들어줘
트럼프 2기에도 같은 구조 반복
행정부의 선별적 통제 수단으로 기능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온지 15개월이 지난 오늘, 미국의 추방 절차는 과거보다 훨씬 신속하고 강경하게 운영되고 있다. 국토안보부(DHS)가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그 행정 절차를 시작하고 있고, 추방 명령을 내리는 권한이 있는 법무부 산하 이민법원에 사건을 조속히 회부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추방 절차를 가속하기 위해 대상자들의 보석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구금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민법이 허락하는 급행 추방의 적용 범위도 확대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이민법원에서의 정식 재판 없이 신속히 추방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대한으로 추방을 피하거나 미루기를 원하는 추방대상자들에게는 (1) 추방의 특정 요건으로부터의 면제, 그리고 (2) 이미 명령된 추방의 취소라는 구제 수단이 있다. 추방 요건 면제 요청의 경우에는 "극심한 어려움(extreme hardship)," 그리고 추방 취소 청원의 경우에는 "예외적이고 극심한 특이한 어려움(exceptional and extremely unusual hardship)"을 더욱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써 입증해야 하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민법이 "극심한 어려움"이라는 문구나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준은 예전에는 비교적 너그럽게 풀이되었으나 이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그 이유에는,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이 있지만, 그 기저에는 어느 한국인 가족을 둘러싼1981년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자리 잡고 있다.

왕종하·왕경화부부와 '극심한어려움'
바로 '이민국 대 왕종하·왕경화(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 v. Wang, 450 U.S. 139 (1981))' 사건이다. 한국 국적의 왕 부부는 1970년에 무역인 비자로 미국 입국 후 1972년에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1974년에 추방명령을 받았다. 이후 주어진 자발적 출국 기회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민국 내의 재심에서도 실패하였다. 그 사이에 자녀를 둘 낳았고, 1977년에는 추방 절차 재개를 신청하면서 추방유예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법률은 추방유예를 받기 위해서는 ① 7년 이상 체류 ② 선량한 품성 ③ 추방 시 '극심한 어려움' 발생을 요구하였고, 승인이 되면 '임시보호신분'을 받아 미국 체류가 가능하였다. 왕 부부는 셋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미국에서 태어난 두 어린 자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교육 환경 변화로 심각한 정서적·교육적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추방 시 할 수밖에 없을 자산의 강제 청산으로 인한 손실로 인해 자신들과 자녀들이 치명적인 경제적 피해를 볼 것이고, 그것 역시 추방유예를 위한 '극심한 어려움'이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 산하 이민항소국는 왕 부부의 요청을 기각하였다. 교육 기회의 상실이나 경제적 손실은 '통상적 추방 결과'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부부가 주장하는 자녀들의 심리적·교육적 피해에 대해서는 입증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중요시 하였다. 그래서 왕 부부의 두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겪을 어려움은 '극심한' 수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왕 부부는 상고했고, 연방고등법원은 그들이 그래도 일응의 증거를 제시했으므로 이민항소국이 새로운 심리를 진행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에는 이민국이 항소했고, 연방대법원은 구두 변론없이 6대3의 결정으로 고법의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의 결정'(per curiam)으로 집필자 이름 없이 나온 다수의견은 '극심한 어려움'의 해석을 법무부장관과 이민항소국의 재량과 전문성에 맡기고, 법원이 이를 확장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래서 6명의 대법관은 이민항소국이 결정한 것처럼,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과의 분리 및 자녀의 교육·문화적 충격은 통상적 범주에 속하고 '극심한 곤란'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나머지 3명의 대법관은 구두변론 및 대법원에서의 모든 절차를 거친 후에 판결을 내리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나, 다수의 논리에 대한 실질적인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 판결은 행정부가 '극심한 어려움'을 매우 좁게 해석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 준 결정이었다.

기준의상향과제도화
대법원이 이민국과 이민항소국의 추방 결정과 그 이유에 대해 존중의 자세를 보이도록 판결을 낸 이후, '극심한 어려움'의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1996년 불법이민개혁 및 이민자책임법(IIRIRA)은 '극심한 어려움'보다 더 높은 '예외적이고 극심한 특이한 어려움'의 기준을 추방 취소를 요청하는 많은 비영주권자의 절차에 도입하였다. 그 기준은 단순한 가족 분리나 경제적 손실을 원칙적으로 배제하였고, 훨씬 예외적인 상황만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극심한 어려움'의 법적 정의가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이민국은 그 기준을 판단할 때, 건강, 재정, 교육, 국가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그 총합이 추방의 일반적인 부산물보다 더욱 심각해야 한다는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판단은 행정기관의 재량과 정책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구조적문제
45년이 지난 오늘, 왕 부부의 사건으로부터 확립된 구조가 거의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화된 추방 절차 속에서, '극심한 어려움'은 여전히 핵심 구제 기준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

시민권 자녀의 존재, 가족 분리, 교육·정서적 충격은 여전히 '통상적 결과'로 평가되고, 추방 조건으로부터의 면제나 추방 취소의 구제는 심각한 의료적 위기나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만 허용된다.

결국 '극심한 어려움'은 인도적 보호장치라기보다, 높은 문턱을 설정하는 선별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다.

객관적 잣대없는기준, 계속되는질문
'극심한 어려움'은 이민법상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명확한 정의 없이 행정부의 재량에 의해 운영된다. 그 결과, 동일한 가족의 고통조차 정책과 시대에 따라 때로는 극심하게 다르게 평가된다.

2026년의 엄격한 추방 현실 속에서, 왕 부부의 사건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무엇이 '극심한'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구의 관점에서 정해지는가?

줄리어스 남 변호사 (브라운 화이트 앤 아즈본 로펌, 전 미국 LA 연방검찰청 검사)

미국 연방검사 출신 재미 법조인. 1983년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UCLA 로스쿨 졸업하고 Morrison & Foerster LA 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2015~2024년 캘리포니아 LA 지역 연방검찰청에서 민권전담 검사로 근무했다. 미국 법무부 형사 정책 및 법제 부서에서도 근무했다. 2025년에는 법무부 민권갈등조정국(CRS)의 국장대행을 맡았다. 이후 CRS Restoration Project 대표로 해체된 CRS의 기능을 복원하고 지역사회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중재자 역할에 매진했다. 2026년 5월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로펌 브라운, 화이트 앤 아즈본(Brown, White & Osborn)에서 파트너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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