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정 부장검사의 여조부 검사실]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사건 발생 시 사업주의 조치의무

정수정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2026. 5.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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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도 반복되는 '로이스 젠슨' 사건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영화 '노스 컨트리'는 1980년대에 있었던 미국 역사상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인 '로이스 젠슨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로이스 젠슨은 1975년 미국 미네소타주 북부의 에블레스 타코나이트 철광산 작업장에 취직했다. 그녀를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은 다수의 남성 동료로부터 노골적인 성적 농담, 신체 접촉, 스토킹 등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회사는 이를 '남자들 사이의 장난'으로 치부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로이스 젠슨과 동료들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Jenson v. Eveleth Taconite Co.). 피해 여성들은 10년이 넘는 오랜 법정 다툼 끝에 1998년에 사측과 수백만 달러에 합의하고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성희롱 행위에 대한 사업주의 방임이 불러온 냉혹한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25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1,608건이던 직장 내 성희롱 신고는 2024년 1,997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8월까지만 해도 1,280건이 접수되었다. 또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 의하면 2025년 성폭력 상담 인원 중에 직장 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19.8%로 전체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법이 정한 사업주의 구체적 조치 의무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에게 구체적인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성적 언동에는 추행이나 강간도 포함될 수 있다.

사업주가 성희롱 신고를 받거나 그와 같은 사실을 인지할 때는 바로 조사에 착수해야 하고, 피해자가 요청하는 경우 근무 장소 변경, 유급 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성희롱 사실이 확인되면 가해자에 대하여 징계·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고, 성희롱 사실의 신고 등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

피해 조사 의무,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조치 의무 등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데에 그치지만,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와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양벌규정에 따라 행위자 외에 법인까지 처벌될 수 있다.

'불리한 처우'의 의미와 판례로 살펴본 사례 유형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불리한 처우에 대하여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① 파면, 해임, 해고 등 신분 상실에 해당하는 불이익 조치, ②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조치, ③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④ 성과 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 차별이나 그에 따른 임금 또는 상여금 등의 차별 지급, ⑤ 직업능력 개발 및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의 제한, ⑥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가 그것이다.

'신분 상실' 불이익 사례로는 △직원들로 하여금 수사기관에서 조사받게 하고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다는 이유로 성추행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를 해고한 사례(부산지법 2018고단3845), △피해자를 원장실로 불러 끌어안고 입맞춤하여 추행한 사업주에게 피해자가 항의하며 문제를 제기하자 '사업주를 무고한다'라며 해고한 사례(천안지원 2025고단1466), △안아보고 싶다며 끌어안고 가슴을 만져 추행한 사업주에게 피해자가 항의하자, '고발하고 사표를 쓰라'라고 말하며 피해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퇴직 처리한 사례(서울중앙지법 2022고단5966), △회사 지사장이 파견근로자인 피해자와 단둘이 가진 2차 회식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려고 하거나 팔을 잡는 등의 행동을 하고, 피해자로부터 '두 사람만 회식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는 항의를 받자, 파견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한 사례(서울중앙지법 2016고단767) 등이 있다.

부당한 또는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치 사례로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인사팀에 신고하고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후 직장 동료로부터 소송에 필요한 진술서를 받자, 동료를 협박해서 진술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징계한 사례(2020도16868), △부서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취지로 고충 처리 신청을 한 피해자를 그 의사에 반하여 연구원으로 직무 재배치한 사례(서울중앙지법 2021고단5921) 등이 있다.

성과 평가의 차별에 해당하는 사례로는 △식사 자리에서 추행당한 피해자가 회사 대표에게 이를 알리고 유급 휴가를 사용하자, 3년 전부터 하지 않던 인사 평가를 갑자기 실시하여 피해자를 최하위로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권고사직을 통보한 사례(서울중앙지법 2023고단3827)가 있고, 교육훈련 기회를 제한한 사례로는 △신입사원인 피해자가 상급자들의 부적절한 성적 발언을 문제 삼자 신입사원 교육훈련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외하고, 수습 평가표를 불리하게 작성한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거부한 사례(순천지원 2021고단1309)가 있다.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한 사례로는, △추행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사직하겠다고 하는 피해자에게 '멍청한 돌대가리', '뽑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고 폭언한 사례(의정부지법 2025고단1668), △연구센터장이 추행 피해를 당한 인턴연구원에게 '딸이 있는 아빠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고가 들어가면 센터가 감점을 받는다'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례(대전지법 2024고단3165)가 있다.

'불이익'을 판단하는 기준
판례의 사례들에 등장하는 사업주들은 피해자에게 가해진 불이익 처우와 성희롱 사건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면서, 그와 같은 조치는 회사 차원에서 필요하고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의 해고, 인사 조치, 성과 평가 등 특정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과는 무관한 정당한 인사권의 행사라거나 회사 운영을 위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성희롱 피해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필요하고 적정한 경영권 행사의 일환이라는 사정이 소명될 때는 법 위반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실무에서는 성희롱 피해 사실의 신고와 불이익 처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 등을 통해 위와 같은 사업주의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주요한 쟁점이 된다.

불리한 처우인지를 판단할 때는 사업주의 불리한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를 한 경위와 과정, 불리한 조치를 하면서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피해자의 문제 제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인지, 피해자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 침해 정도와 불리한 조치로 피해자가 입은 불이익의 정도,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하여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불리한 조치에 대하여 피해자가 구제신청을 한 경우 그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참조).

피해자 보호는 사업주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
2026년 2월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회사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51.4%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직장 내 성범죄와 회사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사업주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이스 젠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업주가 사건을 방치하거나 피해자를 외면하면 회사 역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밖에 없다. 장기간의 소송은 물론 회사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을 입고 건강한 기업경영에 저해 요인을 자초하는 격이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단지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하는 의무이다. 나아가 보호해야 하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범죄이다.

정수정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 이 글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소속기관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