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폭등에… 美 오일 메이저, 베네수엘라 유전 되찾으러 나섰다

류재민 기자 2026. 5. 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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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Why] 다시 뜨거워지는 베네수엘라 석유시장
4월 13일 카라카스의 미라플로레스 궁전에서 열린 셰브론 베네수엘라와 베네수엘라 정부 간의 협정 서명식에서,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이 셰브론 베네수엘라의 마리아노 벨라 사장이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핵심 상업 지구 ‘엘 로살(El Rosal)’에 위치한 5성급 호텔 JW 메리어트. 2019년 3월 미·베네수엘라 국교 단절 이후 철수했다가 올해 초 업무를 재개한 미국 대사관이 임시 사무실을 꾸린 곳이다. 최근 이 호텔 로비는 베네수엘라 정부 관계자는 물론, 유전 복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기업인·엔지니어·변호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북적이는 이들 사이에서는 다가오는 기회에 대한 기대감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며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유가가 치솟자 베네수엘라의 낡은 유전을 복원하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공통된 비전 아래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는 약 3030억 배럴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해 전 세계 매장량의 약 17%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 국가로 추정된다. 하지만 약 20년 전 우고 차베스 정권은 에너지 인프라를 대거 국유화하면서 미국 ‘오일 메이저’ 기업의 자산을 몰수했다. 당시 엑손모빌은 10억달러, 코노코필립스는 120억달러 규모의 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들어서고 2019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PDVSA)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현지 사업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2월 25일 텍사스주 휴스턴 항구에서 베네수엘라고 향할 포르투갈 국적의 선박 ‘로이베이라호’에 석유 및 가스 산업용 기계와 장비가 실려있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기류는 180도 달라졌다. 지난 1월 마두로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 새 정권과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석유·광산 등 핵심 자원 시장 문호를 서방 자본에 빠르게 개방하고 있다. “불확실한 법적·상업적 환경을 고려하면 도저히 투자할 수 없는 상태”라며 고개를 저었던 오일 메이저들도 유전 복원 가능성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엑손모빌은 최근 기술팀을 파견해 2007년 강제 국유화 사태 이전 자신들이 직접 운영했던 초대형 중질유 생산 시설의 복원 가능성을 타진하는 현장 실사를 마쳤다. 코노코필립스 역시 사업 참여 기회를 적극적으로 엿보고 있다. 제재 속에서도 유일하게 남아있던 셰브론은 최근 현지 유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향후 1년 반 내에 원유 생산량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분위기 반전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지난 3월 미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45만7000배럴을 기록하며, 제재가 시작된 2019년 1월 이후 7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30일(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마이케티아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에 착륙한 미국 항공기의 조종사가 조종석 창문 밖으로 베네수엘라 국기를 들고 있다. 이날 미국-베네수엘라 간 직항 노선이 7년 만에 재개되었다. /AP 연합뉴스

여기에 지난 30일에는 미국과 베네수엘라를 잇는 하늘길도 다시 열렸다.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와 카라카스를 잇는 직항편이 2019년 단항 이후 7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하루 1회로 시작해 오는 21일부터는 하루 2회로 증편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에너지 고문으로 베네수엘라 측과 석유 시추 재개를 긴밀히 협의 중인 재러드 에이전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NEDC) 사무총장은 “직항편 재개로 더 많은 사업 기회와 투자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가 다시 ‘핫스폿’이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마두로의 측근’이었던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변신이 있다. 에너지광업부 국장, 석유부 장관 등을 지낸 ‘에너지통(通)’ 로드리게스는 법 개정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국유화 정책을 폐기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대대적인 친시장 개혁으로 서방 자본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美, 제재 풀어달라” 30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미국 제재에 맞서는 순례’에 참가한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앞줄 오른손 든 여성)이 ‘자유롭게 비행하는 베네수엘라’라는 문구가 적힌 무개차에 올라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이 집회에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딸 등 좌파 진영의 상징적 인물들이 대거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남은 제재의 전면 해제를 촉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에 더해 이란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이 기폭제가 됐다.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달러를 돌파해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석유 공급이 정상화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암울한 예측 속에, 막대한 매장량을 품은 베네수엘라의 버려진 유전들이 매력적인 대체재로 급부상한 것이다.

다만 미국 기업들이 당장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붓는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를 위한 법적·사업적 환경이 대폭 개선됐지만, 궁극적으로는 베네수엘라가 ‘민주적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정치적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해야만 본격적인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WSJ에 “정치적 안정뿐만 아니라 자원 채굴의 경제성도 아직 모두 파악된 것이 아니다”라며 “최근의 급진전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자원 사업은 결국 장기전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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