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서 만나는 南北… “통일 기다리며 개성 음식 만들죠”

박진성 기자 2026. 5. 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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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전통 음식 대전’ 여는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30일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만난 윤숙자 대표가 ‘개성 탕반’을 들어 보였다. 그의 앞에 놓인 ‘장땡이’(앞줄 왼쪽) ‘배피떡’ ‘개성주악’ 등의 음식은 모두 개성 사람들의 ‘소울 푸드’다. /장경식 기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78) 대표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세 살 무렵 어머니 등에 업혀 고향인 개성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왔다. 고향이 그리울 때, 2남 2녀를 홀로 키운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황성 옛터’를 부른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잡초 덮인 개성 만월대의 쓸쓸함을 담은 이 노래를 어머니가 부엌에서 자주 불렀다. 조용히 읊조리다 보면 ‘장땡이’(개성 향토 음식)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손길, 만월대 부근에서 그네를 타던 단오의 풍경이 흐릿하게 스쳐간다.

윤 대표는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통 음식 대전’에서 북녘이 고향인 어르신들을 초청해 음식을 차렸다. 30일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만난 윤 대표는 이들을 부모님처럼 여기며 정성을 담았다고 했다. “평안도 노티떡과 개성 배피떡을 드시고는 고향 생각 나신다며 눈시울을 붉히셨지요. 다들 연로하시다 보니 매년 오시는 분이 줄어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개성 음식 '절창'(개성순대,위 사진)과 한국 음식 '화전'. 대체로 북한 음식은 크기가 크고 간이 심심한 편이다. 각종 순대류처럼 재료 안에 재료를 넣는 음식이 많다. 절창은 돼지고기에 숙주나물과 우거지, 두부, 선지 등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여 일반적인 순대보다 맛이 훨씬 담백하고 풍미가 깊다. 반면 한국의 음식은 작고 화려한 음식이 많다. 남쪽으로 갈수록 간이 센 편이다. 화전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동백, 매화 등의 꽃잎을 수놓듯 붙여 지진 떡이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 대표가 2007년 시작한 대한민국 전통 음식 대전은 한반도 전역의 음식 문화를 조명하는 행사다. 올해는 ‘한반도 평화 통일 기원-남과 북의 음식 이야기’를 주제로 음식 경연·체험 등을 진행했다. 개성 출신 실향민 2세대가 부모 세대의 음식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며 시작한 행사는 어느덧 20년째. 그사이 K푸드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행사엔 프랑스·영국·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음식 전문가들이 찾아와 남북의 김치를 주제로 요리를 펼쳤다.

그의 연구소를 찾은 해외 인사도 많다. ‘와인 대통령’이라 불리는 로버트 파커는 인삼주·동동주 같은 전통주를 맛보고 갔다. “‘한국 술이 이렇게 훌륭한 줄 몰랐다’면서 ‘절주방’(맑은 전통주의 일종)을 특히 맛있게 마셨지요.”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속 셰프 샘 카스는 이곳에서 음식을 배운 뒤 윤 대표를 미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유독 좋으셨어요. 가을이면 달달하고 시원한 무로 ‘갈람국’(맑은뭇국) ‘개성무찜’을 차려주셨죠. 손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요리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으셨던지요.” 어머니는 봄엔 봄나물, 가을엔 버섯처럼 계절의 기운이 담긴 제철 음식을 강조했다. 식품영양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윤 대표는 전통 조리학 교수로 연구하고 가르치며 선대의 손맛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더 깊이 깨닫게 됐다.

4월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만난 윤숙자 대표. /장경식 기자

이후 윤 대표는 2018년 개성과 20㎞ 떨어진 경기 연천군 장남면에 ‘개성 식문화연구원’을 열었다. 담백하면서 고려 수도의 품격이 담긴 음식들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있다. 대체로 투박한 외형의 북한 음식과 다르게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은 음식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한마디로 ‘절제된 세련미’죠. 격식을 갖추면서도 깔끔한 조리법은 요즘 현대인들이 찾는 ‘건강한 미식’의 기준과도 같습니다.” 그는 한창 12세기 ‘고려도경’, 15세기 ‘고려사절요’ 등 옛 문헌과 관련 연구를 바탕으로 ‘고려왕실의 의례음식’ 책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다.

윤 대표가 피란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성에 가본 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다. 남한 측 답례 만찬을 총괄한 그는 버스를 타고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갔다. 고향 어른들이 ‘아기를 밴 임산부 모습’이라던 송악산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벌떡 일어나 ‘송악산이다!’ 그랬더니 북한 요원들이 ‘앉으시라요!’ 소리쳐서 얼마나 무서웠게요 하하. 추수하던 개성 주민들이 참 정겨우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에 잠겼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통일이라는 이야기는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시대지만, 윤 대표는 여전히 통일을 기다린다. “요즘도 연천 호로고루 성지에 올라 임진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 통일이 올까 생각합니다. 우리 음식이 남과 북을 이을 열쇠가 되면 좋겠습니다.”

4월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만난 윤숙자 대표. /장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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