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죽을 뻔했다”던 이태원 참사 의인…여전히 트라우마 겪는 피해자들

“키도 크고 체격이 좋았던 아들은 이태원 참사 당일 무거운 시신들을 옮기고 사람들을 구했어요. 자신도 그날 죽을 뻔했다고 얘기했죠. 이후 트라우마도 심해지고 장사도 안되니 많이 힘들어했고, 여러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어요.”
1일 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의 영정 사진 속 30대 청년 백모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이태원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느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며 “장사가 잘됐던 가게가 참사 후 폐업하고 가족과 불화도 많아졌다”고 회상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희생자 구조를 도운 백씨는 지난달 29일 경기 포천시 왕방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지난달 19일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이태원 클라쓰> 포차 운영, 참사 후 바뀐 삶
대학에서 조리학을 전공하고 취사병으로 복무한 백씨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모티브가 된 주점을 운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을 버티고 2호점 개점을 준비 중이던 그의 삶은 참사를 겪으며 송두리째 바뀌었다. 참사 당일 인근 가게의 운영을 돕던 중 비명을 들은 백씨는 현장으로 갔다. 180㎝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그는 희생자들을 옮기고 사람들을 구했다.
사건 후 의인 호칭을 얻었지만 삶의 고통은 커졌다. 텅 빈 이태원 거리를 지키며 월세를 내기 위해 배달도 시작했다. 불법 증축 단속 등 정부의 경직된 행정 처분엔 “고생한 사람을 왜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2024년 가게는 폐업했다.
가족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백씨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백씨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로 공식 인정돼 국가트라우마센터 상담 지원 대상이 됐지만 “나를 환자 취급하느냐”며 지원을 거절했다. 아버지는 “내가 대신 센터를 10번 넘게 방문했다”며 “법이 미비하다면 제정해서라도 사람을 먼저 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트라우마 시달리는 피해자들
이태원 참사 후 네 번째 봄을 맞이했지만 수많은 피해자는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날 백씨 빈소를 찾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는 “3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생존자와 의인, 유족이 트라우마와 2차 가해 때문에 숨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도 “나도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다”며 “가족들과 말도 못 하고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표출도 못 하는 분들은 병이 깊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유가족의 40%가량이 살고 있는 지방에는 심리상담을 잘 모르는 분들이 있고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는 “참사가 발생하면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싸우지 않아도 시스템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명안전기본법안은 참사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유를 국가의 책무로 명시하고,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통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민규 기자 mingyu01@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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