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 군락 품은 원시의 섬… ‘동양의 갈라파고스’에서 누린 날것의 자연

조유미 기자 2026. 5. 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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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일본의 숨은 보석 같은 섬
오키나와현 이리오모테
일본 전체 맹그로브의 약 70%가 오키나와현 이리오모테섬에서 자란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이리오모테섬의 맹그로브 군락지. 일본에 존재하는 일곱 종의 맹그로브가 모두 서식하는 곳은 일본 내 이 섬이 유일하다. /OCVB

이 섬의 아침은 특별하다. 호텔 객실 테라스 문을 열면, 짙은 초록의 숲과 코발트블루 빛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서늘한 나무 냄새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기분 좋게 뒤섞여 있다. 휴양지의 오션뷰가 대개 수평선만을 보여준다면 이 섬은 다르다. 빽빽한 원시 정글과 고요한 바다의 풍경을 동시에 품고 있다.

“휘이이~ 호오오~.”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휘파람을 닮은 소리. 어딜 가든 이 소리가 들렸다. 매년 4월에서 6월 사이, 붉은 깃털과 부리를 뽐내며 섬을 찾아오는 여름 철새 ‘류큐 아카쇼빈’의 울음소리다. 섬 사람들은 새의 소리를 들으며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이 섬에서만 서식하는 '이리오모테 삵'을 형상화한 조각상. /조유미 기자

이리오모테섬(西表島)은 행정구역상 일본 오키나와현 야에야마 제도에 있다. 도쿄에서 남서쪽 직선거리로 약 2100㎞, 대만 타이베이와는 불과 200㎞ 거리다. 약 289.27㎢인 면적의 90% 이상이 아열대 원시림과 맹그로브 숲으로 덮여 있어 섬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독특한 생태계와 울창한 자연 덕에 ‘동양의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이 붙었다.

오키나와현에서 본섬 다음으로 큰 면적을 자랑하지만 섬 내부에 공항이 없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약 2시간 45분 거리인 인근 이시가키섬의 ‘파이누시마 이시가키 공항’에서 항구로 이동한 뒤 페리를 타고 1시간가량 들어가야 한다. 고립된 위치 덕분에 섬은 경이로운 야생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있다. 일본의 호텔·리조트 그룹 호시노리조트가 운영하는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에서 섬의 자연을 누렸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는 이 원시의 섬에서 가장 큰 객실 규모를 자랑하는 리조트 호텔이다. 139개 객실 모두 테라스에서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디럭스 트윈'.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섬에서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리오모테섬 북단, 우에하라(上原)항에 발을 내딛자 웬 고양이 닮은 동물이 그려진 팻말이 보였다. 이 섬에서만 서식하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이리오모테 삵(야마네코)’이라고 했다. 섬 전체에 남은 개체 수가 고작 100여 마리 남짓으로 섬을 상징하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꼭 한 번 마주치길 기도하며 호텔 픽업 차량에 짐을 실었다.

섬에는 택시가 없다. 대중교통 배차 시간도 촘촘하지 않다. 섬을 돌아보려면 차량 렌트를 하거나 숙소에서 전기 자전거 등을 빌리는 편이 수월하다. 차로 10분쯤 달려 도착한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는 이 원시의 섬에서 가장 큰 객실 규모를 자랑하는 리조트 호텔이다. 객실 139실 모두 테라스에서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다.

호텔 로비는 싱싱해 보이는 파인애플로 장식돼 있었다. 아열대 기후가 빚어낸 이리오모테의 파인애플은 산미가 적고 당도가 높다. 매년 4~6월 호텔 측은 파인애플을 썰어 투숙객에게 나눠준다. 갓 썰어낸 노란 과육을 입에 물고 야외 수영장 선베드에 몸을 뉘었다. 쨍한 햇살 아래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긴장이 풀렸다.

파인애플로 장식된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로비. 매년 4~6월 호텔 측은 파인애플을 썰어 투숙객에게 나눠준다. /조유미 기자
호텔이 제공하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들고 수영장과 이어진 ‘츠키가하마 해변’으로 향했다. /조유미 기자

오후가 기울 무렵, 호텔이 제공하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들고 수영장과 이어진 ‘츠키가하마 해변’으로 향했다. 간이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이리오모테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파랗던 하늘이 순식간에 복숭앗빛에서 진한 오렌지색으로, 다시 자줏빛으로 결을 바꿨다. 파도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바다 위에 흩뿌려진 금가루 같았다. 섬에서의 시간이 시작됐다.

◇맹그로브 군락 속 원시의 심장부

이튿날 오전 7시, 맹그로브 숲이 보이는 해변에서 간단한 아침 스트레칭 수업으로 몸을 깨웠다. 이 호텔은 섬을 이해하게 돕는 ‘자연 학교’에 가깝다. 매일 저녁 로비에선 섬의 생태계와 야마네코를 주제로 한 강연이 열리고, 전문가와 함께 정글을 걷는 프로그램도 수시로 운영된다. 다만 아직 외국인에게 덜 알려진 섬이기에 일본어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섬을 즐길 차례다. 이리오모테 여행의 백미는 단연 ‘카약’과 ‘트레킹’이다. 물길을 따라 맹그로브 군락을 가로지르고 정글을 헤치며 ‘피나이사라 폭포’를 향해 걷는 여정이다. 현지 방언으로 ‘피나이’는 수염, ‘사라’는 내리 드리운 것을 의미한다. 멀리서 보면 폭포의 물줄기가 마치 노인의 하얀 수염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높이 약 55m로 오키나와현에 있는 폭포 중 가장 높다.

맹그로브 숲이 보이는 해변에서의 간단한 아침 스트레칭 수업.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이리오모테 여행의 백미는 단연 ‘카약’과 ‘트레킹’이다. /OCVB
높이 55m로 일본 오키나와현에서는 가장 높은 피나이사라 폭포. /OCVB
맑은 물이 흐르는 피나이사라 폭포 인근의 계곡. /OCVB
이리오모테섬은 면적의 90% 이상이 아열대 원시림과 맹그로브 숲으로 덮여 있다. /OCVB

호텔과 연계된 외부 업체 가이드를 따라 2인 1조로 카약에 올랐다. 정글까지는 약 30여분, 노를 저을 때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적막을 깼다. 맹그로브 군락은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 전체 맹그로브의 약 70%가 이 섬에서 자란다. 강물과 바닷물, 그리고 숲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인 기수역(汽水域). 짠 내와 젖은 풀 냄새, 눅눅한 흙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수면 위로 뻗어 나온 맹그로브 뿌리들은 거대한 거미줄을 닮아 있었다. 미로처럼 얽힌 뿌리 사이사이는 포식자를 피해 숨어든 어린 생물의 은신처 역할을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주인공을 빼닮은 가이드가 “간조 시간에는 한쪽 집게발이 거대한 ‘시오마네키(농게)’가 뿌리를 타고 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체력이 약해 걱정했던 정글 트레킹은 예상외로 할 만했다. 가이드가 곁들여 주는 흥미로운 생태 해설 덕분이다. “이 잎이 바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우산 대신 썼던 ‘쿠와즈이모’예요.” “다른 나무에 붙어사는 이 고사리는 ‘오타니와타리’입니다. 이름이 낯설다면 야구 선수 오타니를 떠올리세요.”

반나절 투어가 아닌 전일 투어를 신청하면 피나이사라 폭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사진은 폭포 위에서 바라본 바다와 정글의 모습. /OCVB

20분 정도 걸었을까,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 위를 딛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찰나,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벼랑 끝에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피나이사라 폭포다. 흩날리는 미세한 물보라가 열기로 달궈진 얼굴을 식혔다. 폭포 아래 고인 비취색 물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곧 구명조끼에 몸을 맡긴 채 물 위에 대자로 누웠다. 트레킹의 고단함이 차가운 냉기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근처 바위에 올라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마음껏 즐겨도 좋지만, 폭포수가 바로 떨어지는 암벽에 기어오르는 것은 금지돼 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바위에 서식하는 희귀 이끼나 식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섬의 자연은 야생을 배려하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리오모테섬 주변의 코발트블루 빛 바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이리오모테섬 인근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산호초 군락지인 '세키세이 쇼코'가 있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일본 최대 규모 산호초 군락으로

이리오모테섬 인근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산호초 군락지가 있다. 이시가키섬과 이리오모테섬 사이 바다인 ‘세키세이 쇼코(石西礁湖)’는 산호의 낙원이라 불린다. 그 규모만 약 400㎢ 이상으로 수백 종의 산호와 열대어가 서식하는 스노클링 명소다. 섬 내에는 셀프 스노클링을 할 만한 적합한 해변이 없다. 보트를 타고 세키세이 쇼코를 볼 수 있는 하토마섬과 바라스섬 인근으로 나가 물놀이를 즐기는 투어를 추천한다.

물을 무서워한다면 선상 위에서 바다를 즐겨봐도 좋다. 저녁 무렵, 오는 7월부터 호텔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선셋 아페로 크루즈’에 올랐다. 투명한 바닷물 덕에 배 위에서 물속의 산호가 훤히 보였다. 제공되는 블루치즈크래커와 트러플 향이 나는 견과류를 곁들여 무알코올 칵테일을 들이켜니 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장이 추천한다는 특별한 선셋 포인트에서 감상한 바다 위 노을은 환상적이었다. 바다 위에서 즐기는 조금 더 역동적인 액티비티를 원한다면 ‘선셋 패들보드’나 ‘선셋 카약’도 좋은 선택지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에서 오는 7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선셋 아페로 크루즈’. /조유미 기자
노릇하게 구워낸 ‘흑설탕 프렌치 토스트’는 먹어봐야 할 별미다. /조유미 기자

저녁은 호텔 뷔페식. 매일 저녁 메뉴가 바뀐다. 오키나와현의 대표 특산물인 길쭉한 해조류 ‘모즈쿠(큰실말)’와 쓴맛이 나는 채소 ‘고야’, 근해에서 잡힌 신선한 생참치는 꼭 한 번 먹어봐야 할 별미다. 혹시 조식을 신청했다면 반드시 노릇하게 구워낸 ‘흑설탕 프렌치 토스트’를 먹어 보시길. 섬 특산물인 흑설탕을 넣어 만들었다.

◇반딧불이와 밤에만 피는 꽃, 그리고 별

이리오모테의 밤은 낮 못지않은 생명력으로 일렁인다. 섬에 묵어야 하는 각별한 이유 몇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2월부터 5월 사이, 정글 바닥을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수놓는 ‘야에야마 히메 반딧불이(꼬마반딧불이)’가 있다. 수천 마리가 지면 근처에서 반짝이는 모습은 지상에 내려앉은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 밤에 피어 새벽이면 강물 위로 낙화하는 ‘사가리바나’도 있다.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 사이, 분홍빛 꽃송이들이 수면을 가득 채우며 떠내려가는 장면은 장관이다. 시즌이 되면 호텔 로비에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이리오모테섬에서는 2월부터 야에야마 히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밤에 피어 새벽이면 강물 위로 낙화하는 꽃 '사가리바나'.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피날레는 단연 밤하늘. 이리오모테가 속한 야에야마 제도는 일본 최초의 ‘별빛 보호 구역(Dark Sky Park)’으로 지정돼 있다. 인공적인 불빛이 적고 공기가 맑아 별을 관측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88개 별자리 중 무려 84개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섬이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는 물론, 남반구의 별자리까지 관측 가능한 독특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12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는 남쪽 하늘에서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는 4개의 밝은 별인 ‘남십자성(南十字星)’을 관찰할 수 있다.

객실로 돌아와 방의 불을 모두 끄고 테라스로 나갔다. 맨눈으로도 선명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휴대전화의 타임랩스 모드를 켜고 별의 움직임을 담았다. 수만 개의 빛나는 점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동심원을 그린다. 섬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별빛 속으로 조용히 흘러들고 있었다.

이리오모테가 속한 야에야마 제도는 일본 최초의 ‘별빛 보호 구역(Dark Sky Park)’으로 지정돼 있다. /이리오모테 호텔 바이 호시노 리조트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들. /OC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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