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저수지가 ‘귀신 명소’로… 괴담 타고 인파 몰려든다
[정덕현의 컬처톡톡]
공포 영화 ‘살목지’ 흥행 배경
캄캄한 곳에 모여드는 사람들

최근 충남 예산군에 있는 저수지, 살목지가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은 간간이 낚시꾼들이 찾던 평범한 저수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밤낮으로 찾는 방문객들 때문에 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야간 방문을 통제할 정도로 붐비는 관광지가 됐다. 공포영화 ‘살목지’ 때문이다. 개봉 20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인 살목지를 ‘성지’로 만들었다.
영화는 살목지 로드뷰에 찍힌 정체불명의 형체 때문에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간 촬영팀이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다뤘다. 과거 공동묘지였던 곳을 이장하지 않고 저수지로 만든 이후 흉흉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는 물귀신이 출몰하는데, 물귀신의 특징은 사람을 홀린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연인이나 동료가 알고 보니 귀신이었다는 섬뜩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살목지가 심령스폿으로 떠오른 건 2022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두 차례에 걸쳐 살목지 소재의 괴담이 제보자에 의해 소개되면서다.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갔다가 저수지에 빠질 뻔한 경험을 한 제보자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환청과 환영을 경험하는 등 갖가지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무당을 찾아간 제보자는 저수지에서 센 귀신이 붙었다는 말을 듣는다. 해당 예능에서는 제보자가 겪은 일을 추적하기 위해 제작진이 살목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이상한 일들도 담겼다. 저수지 방향으로 카메라 렌즈를 돌리면 멀쩡하던 전원이 꺼지고 차 안으로 들어오면 켜지는 기현상이 벌어졌고, 동행한 무속인은 제보자가 유령을 본 장소와 실제 물에 빠질 뻔했던 지점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화 ‘살목지’는 이러한 촬영팀이 겪은 이야기를 이곳의 괴담과 섞어 로드뷰 제작팀의 이야기로 재창조한 셈이다.
“거긴 살아서는 못 나와요”라는 영화 속 대사와 맞물려 ‘살목지’라는 지명은 어딘가 살벌한 느낌을 준다. ‘살’자가 ‘죽일 살(殺)’자처럼 느껴져서다. 하지만 ‘살목지’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곳에 자생하는 화살나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즉 막연한 이름의 느낌에 덧붙여진 사람들의 상상과 저수지 인근의 인프라가 없어 야간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물리적 환경이 더해져 살목지가 괴담의 소재로 떠오른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열악한 공간이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의 소재가 되곤 한다는 건, 현대에 들어서 ‘귀신 이야기’가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어딜 가나 밤이 돼도 불빛이 환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이 한창 공포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1970~1980년대만 해도 밤 9시만 되면 지역 전체가 깜깜한 곳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역도 도시화되는 변화를 겪었고, 그러면서 공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귀신이 아니라 범죄였다. 밤길에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 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사이에 벌어졌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지존파 사건 같은 범죄들이 현대인들의 새로운 공포의 소재로 떠올랐다. 2008년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런 정서적 변화는 과거 ‘전설의 고향’의 대표적인 공포 소재였던 ‘구미호’ 이야기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2010년에 방영된 ‘구미호:여우누이뎐’에서는 딸을 구하려고 구미호의 간을 빼먹으려는 인간이 등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귀신이 공포물에서 영영 사라진 건 아니다. ‘도시괴담’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귀신들이 도시인들을 오싹하게 만드는데, 여기서 중요해진 건 특정 공간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공간 같은 곳은 도시괴담의 단골 소재가 됐다. 흉가 체험을 하는 유튜버들이 그 오싹한 체험기를 통해 조회 수를 올리는 시대에 들어온 것이다. 2018년 개봉해 공포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268만 관객을 동원한 ‘곤지암’은 이런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 도시괴담 공포물이다. 역시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에 대한 각종 도시괴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공포체험의 성지가 된 ‘곤지암 정신병원’을 찾아간 7명의 멤버들이 겪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다뤘다.
‘살목지’에 로드뷰 촬영팀이 등장하고, ‘곤지암’에 유튜버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도시괴담에서 빠질 수 없는 건 페이크 다큐 형태를 띤 영상들이다. 영상에 포착된 이상한 형체가 주는 으스스함은, 밤이 돼도 낮처럼 환한 불빛 같은 문명의 이기 속에 안전하다 여기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뒤통수를 친다. 가야 할 길을 안전하게 알려줘야 할 내비게이션이 오작동해 죽을 길로 인도하거나, 아무도 없는 집에 센서등이 저 혼자 켜진다거나, 자동차로 빠져나올 수 있다 생각했던 길이 계속 반복된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림보다 사진이, 사진보다 영상이 더 확실한 실체를 찍을 거라 믿는 현대인들에게 ‘곤지암’이나 ‘살목지’의 귀신이 포착된 영상들은 그 믿음과 합리성을 깨버리는 지점에서 소름을 안긴다.
영상이 도시괴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우리 일상의 일부로 자리하게 된 모바일 같은 영상 미디어들의 영향 때문이다. 어디서든 찍어 공유할 수 있게 된 이미지 정보들은 도시괴담 영화들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이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는 파괴력을 만든다. ‘살목지’가 신드롬이 되는 과정을 보면, 영화를 그저 관람하는 차원을 넘어 이를 2차 저작물로 만들어 공유하려는 현 세대들의 욕망이 들어 있다. 이른바 ‘공포인증’을 하는 것인데, 실제 살목지에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도 이 욕망 때문이다. 이제 보면 공포물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은 얼마나 무서운가가 아니라 그 일상 공포를 갖고 놀 수 있는 얼마나 다양한 놀이(?)가 있는가가 아닐까. 잔혹한 범죄에 밀려 사라질 것 같았던 귀신들이 도시괴담을 통해 다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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