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직전의 이순신·단종을 2026년으로 데려온다면…
강양구의 ‘SF 사고실험실’
![[사진 챗GPT 생성 이미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2/joongangsunday/20260502001436408jcmb.jpg)
꼭 단종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당장 설문조사를 해보면 한국 역사 속 인물 가운데 현대로 데려오고 싶은 최우선 순위는 이순신 장군일 테다. 이 장군은 양력 1598년 12월 16일 새벽에 현재의 남해군 노량해협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 장군이 유탄에 맞아서 쓰러진 그 순간,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유언을 남긴 직후 2026년으로 데려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포함한 외상외과 의료진이 총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장담컨대, 오늘날의 의학 실력으로 총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이순신 장군을 분명히 살릴 수 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순신 장군이 광화문의 자기 동상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할까.
이런 상상의 계기가 되었던 SF가 바로 영국 작가 캘리앤 브래들리(Kaliane Bradley)의 『시간 관리국』(비채)이다. 시간 배경은 2026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국 정부가 어떤 계기로 시간여행 장치를 확보한다. 어떻게 시간여행이 가능한지는 이 소설의 관심사가 아니다. 시간여행, 특히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은 현재 물리 법칙으로는 불가능하니 영리한 전략이다.

H G 웰스의 고전 SF 『타임머신』(1895)부터 시작해서 딱 100년 후인 1985년에 나온 20세기 영화 ‘백 투 더 퓨처’까지 그동안 시간여행을 소재로 수많은 소설·영화·드라마가 있었다. 여기에 웹소설과 웹툰 주인공이 영문도 모르고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물’까지 포함하면 시간여행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만하다.
당연히 이 소설은 그간 나온 시간여행과 차별화에 방점을 찍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나’)은 과거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임머신을 확보한 영국 정부가 시간여행 역설(paradox)을 아주 신중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과거로 돌아가서 시간의 흐름에 개입하는 순간 (시간이 단선적으로 이어진다면) 미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현대인이 과거로 돌아가면 숨만 쉬어도 기존의 시간 흐름에 왜곡이 생긴다. 사람과 본격적으로 접촉하다 보면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감기 바이러스조차도 과거 사람에게는 팬데믹을 초래할 수 있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여행 장치를 놀릴 수는 없다. 시간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이 장치를 사용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거듭하던 영국 정부의 선택은 과거 인물을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여기서 이 소설의 기발한 설정이 등장한다. 그 과거 인물은 그 시대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사람이어야 한다. 어떻게? 죽기 직전의 인물이면 그 조건을 만족하지 않을까.
앞에서 얘기한 한국사의 단종이나 이순신 장군을 최후의 순간에 2026년으로 데려오듯이, 영국사의 어떤 순간에 다양한 이유로 사망한 인물을 현재로 데려온다면 시간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시간여행의 효과를 검증해 볼 수 있다. 이 어려운 하지만 흥미진진한 일을 수행하는 비밀 정부 기관이 바로 ‘시간 관리국(The Ministry of Time)’이다.
시간 관리국이 신중하게 고른 후보 가운데 우여곡절 끝에 생존해서 현재로 데려온 시간 ‘이주자’는 총 다섯 명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인 ‘그레이엄 고어’는 실존 인물이다.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유럽인은 북극해를 통해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북서 항로를 개척하고자 다양한 탐험을 시도했다. (얼어붙은 북극해 때문에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가장 유명한 시도가 존 프랭클린이 이끈 1845년 탐험이다. 두 척의 배와 총 129명의 승무원이 북서 항로 개척을 시도하다가 캐나다 북쪽 빅토리아 해협의 빙상에 갇히면서 고립되었다. 최종적으로 전원 사망. 훗날 남극점에 도달하고 나서 귀환하지 못하고 전원 사망한 로버트 스콧의 남극 탐험대의 이야기와 함께 영국 탐험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꼽힌다.
그레이엄은 바로 이 프랭클린 원정대의 대원이었다. 심지어 그로 추정되는 사진도 남아 있어서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다른 대원이 생존해 있을 때 사망했던 터라서 대략적인 사망 시점도 안다. 소설 속 시간 관리국은 이 그레이엄을 1847년 빅토리아 해협의 빙상 위에서 사망하기 직전에 현재로 극적으로 구출한다.
![1845년 프랭클린 원정대의 대원이었던 그레이엄 고어. 시간관리국 요원인 소설의 주인공이 과거에서 온 고어를 전담한다. [사진 위키피디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2/joongangsunday/20260502001439533pzdl.jpg)
수백년 간극 뛰어넘는 공감과 사랑
이렇게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온 시간 이주자의 가장 큰 문제는 ‘적응’이다. 시간 관리국 요원인 주인공의 임무는 이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에게 밀착해서 적응을 돕고 시간여행의 이상 반응을 체크하고 무엇보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주인공의 담당자는 앞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던 그레이엄이다.
굳이 과거인을 현재로 데려오는 이 소설의 설정이 흥미진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렷한 장점이 있다.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현대 문명이 짧게는 약 110년 전에서 길게는 약 340년 전에 온 과거인의 눈으로 보면 기이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그 과거인의 시각으로 우리가 공기처럼 여기는 문명을 낯설게 보게끔 독자를 이끈다.
다른 효과도 있다. 일본의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는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다다서재)에서 과거의 역사를 살피는 일과 SF의 유사성을 지적한 적이 있다. 보통의 SF가 낯선 미래를 상상으로 보여주면서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해주듯이, 현재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인간 군상이 살아가는 역사 이야기 역시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간 관리국』은 이중의 효과를 노린다. 과거인을 현재로 데려와서 그들이 현대 문명에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통해서 현대 문명에 질문을 던진다. 역으로, 주인공처럼 그들과 접촉하는 현대인은 그들의 사고방식과 반응을 통해서 과거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물론, 과거나 현재나 사람 사는 곳인지라 변하지 않은 대목도 있다. 1665년에서 현재로 넘어온 여성은 뜻밖에 자기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발견한다. 데이팅 앱 사용법을 금세 배운 그 여성은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추근거리면서 시간 관리국의 골칫거리가 된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간 이주자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캄보디아의 1975~1979년의 대학살 ‘킬링필드’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난민 가족의 2세다. (실제로 작가가 캄보디아 난민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온 동아시아 이주자와 타의로 현재로 끌려온 시간 이주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위태롭고 흥미진진하다. 시간 관리국의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뒷얘기=프랭클린 탐험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 헤매는 작가가 놓칠 리가 없다. 『히페리온』(1989), 『히페리온의 몰락』(1990) 같은 SF 소설로 유명한 댄 시먼스(Dan Simmons)의 『테러 호의 악몽』(2007)은 프랭클린 탐험대의 배 두 척 가운데 하나였던 ‘테러 호’를 무대로 희망찬 탐험이 전원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공포 소설로 다시 썼다.
『시간 관리국』은 단편을 쓰면서 필명을 알리던 캘리앤 브래들리의 장편 데뷔작이다. 흥미로운 설정과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는 이야기 덕분에 곧바로 A24와 영상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고, 휴고상 장편소설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는 등 SF 소설로서 성취도 인정받았다. 넷플릭스 같은 OTT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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