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최대 출생아…정책이 낳았나, 에코세대가 낳았나

허정연 2026. 5. 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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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아 수 증가의 이면
“아이요? 낳고 싶죠. 그런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서울에서 맞벌이하는 결혼 3년차 김정윤(34)씨 부부는 최근 출산 계획을 다시 미뤘다.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대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신혼 초엔 저축해서 3년 후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지만 아직 경제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사내 육아휴직 등 각종 제도가 점점 좋아지곤 있지만 출산 후에 계속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도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산 의향은 있지만, 결정은 뒤로 미룬다. ‘부모 될 결심’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 반면 겉으로 드러나는 통계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월 출생아 수는 2만2898명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2747명(13.6%) 증가했다. 2월 기준으론 2019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고 월별 증가 폭도 역대 세 번째로 크다. 2024년 7월 이후 20개월 연속 증가세다. 특히 지난 2월 출생아 증가율은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 역시 지난 2월 0.93명으로 14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반가운 반등 소식에 정부 당국과 현장에서도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흐름을 ‘회복’으로 해석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섣부른 낙관론을 한목소리로 경계하고 있다. 최근 출생아 수가 증가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구 구조적 요인과 ‘지연된 출산’ 등이 겹친 일시적 현상으로, 젊은 부부들이 직면한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수치로 나타나는 통계의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실제로 현재 출산의 중심 연령대인 만 31~35세 여성(1991~1995년생)은 출생 인구가 일시적으로 많았던 세대에 속한다. 각 나이별로 33만~34만 명에 달해 다른 연령대보다 층이 두텁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 출생한 ‘에코 세대’ 여성들이 최근 들어 30대 초반의 핵심 출산 연령층에 진입하면서 출생아 수도 자연스럽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시기 미뤄졌던 결혼과 출산이 한꺼번에 이어진 영향도 적잖다. 코로나19 당시 연 19만 건까지 떨어졌던 혼인 건수는 지난해 25만 건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결혼 이후 2년 이내 첫 자녀를 낳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의 혼인 증가 추세가 출산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다.

정부 내에서는 꾸준한 출산율 제고 정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특히 신생아 특례 대출이 젊은층의 주거 안정에 기여하면서 출산율 상승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신생아 특례 대출 시행 이후 소득 상위 30%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84명에서 지난해 0.95명으로 올랐다. 정부 관계자는 “육아휴직 사용자의 추가 출산 이행률이 같은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은 이들보다 11~12%포인트 높게 나타나는 등 육아휴직 제도 또한 실질적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를 진행한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지원제도를 통해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부부가 둘째 임신을 준비할 확률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출산율 반등 흐름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시적인 회복을 넘어 정책 효과가 뒷받침된 의미 있는 상승세로 해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을 지속할 사회적 동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당장 핵심 출산 연령대인 29~39세 여성 인구가 2023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2029년 이후엔 다시 줄어들 전망이다. 25~44세 여성 중 기혼 여성 비중도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19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는 출생아 수가 정점을 찍었던 마지막 세대로, 이들의 결혼과 출산이 집중되는 시기 또한 2030년대 초반이면 마무리될 것”이라며 “그 이후에는 결혼 적령기 인구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설령 출산율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전체 출생아 수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혼인신고 후 7년 이내 부부 중 무자녀 비율은 2019년 31.5%에서 2023년엔 35.9%로 오히려 늘었다. 혼인율이 높아지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는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출생아 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적 여건과 제약이 여전한 것도 한계로 꼽힌다. 지난 2월 결혼 5년 만에 첫째 자녀를 출산한 박민지(39)씨는 “결혼 직후 이직을 하면서 임신 계획을 미뤘고 이후에도 경제적 사정 때문에 계속 늦어지면서 난임 시술 끝에 어렵게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며 “주변에도 결혼 후 주거와 직장 문제로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지인들이 여전히 많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청년들 삶의 현실이나 출산 결정 요인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긴 어려운 만큼 현재 증가세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오랜만에 찾아온 출산율 반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기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향후 인구 감소가 예견된 현실 속에서 출산율 제고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김정석 동국대 교수는 “혼인이 증가했다는 것은 결혼을 미루던 청년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라며 “하지만 출산은 주거·고용이나 돌봄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 만큼 결혼이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런 조건들을 함께 충족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출산율 반등 흐름을 지속하려면 단기성 현금 지원을 넘어 주거 불안과 일·가정 양립 문제 등 청년층의 고민을 덜어줄 구조적 제도 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허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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