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여상(女商)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중학생 상당수가 상고(商高)에 진학했다. 덕수상고 같은 명문 상고 합격선은 대부분 인문계고보다 크게 높았다. 합격하려면 중학교 성적이 상위 5%에 들어야 했다. 여상(女商)은 더 높아서 최상위 학교는 상위 1% 안에 들어야 입학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엔 시대의 음영도 깃들어 있었다. 온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많은 가정이 “아들은 대학 보내고 딸은 가계에 보탬이 되게 여상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보다 똑똑했던 여학생들이 대학 못 간다고 인생의 꿈마저 접은 것은 아니었다. 여상 출신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이가 적지 않다. 최초의 삼성전자 상무에 오른 양향자 21대 의원은 광주여상 출신이다. 금융권의 활약은 더 도드라진다. 강신숙 전 수협은행장(전주여상), 신순철 전 신한은행 부행장보(대전여상), 윤유숙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서울여상), 김덕자 전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본부 본부장(부산여상) 등이다.
▶1960~70년대만 해도 공부에 한(恨) 맺힌 여성이 많았다. 1970년대 주경야독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여공을 위한 산업체 부설 학교도 그때 생겨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장 시찰 중 만난 여공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교복 입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눈시울 붉히며 “소원을 들어주라”고 수행한 관료에게 지시한 것이 계기였다. 그런 학교에서 낮에 일하고 밤에 부기와 주산을 배웠다.
▶한국 최초의 여성 실업 교육 기관으로 문을 연 서울여상이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세기, 4만287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공기업과 금융계 고위층까지 오른 이가 적지 않다. 2000년대 초까지 4대 고시로 통하던 공인회계사 시험에 졸업생이 한 해 10명 넘게 합격한 적도 있다. 지금도 희망자는 100% 취업에 성공하고 대입 합격률도 높다.
▶여상은 이 나라가 가난을 떨치고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해 고도 성장을 이어가던 시절, 한국 산업을 떠받치는 주요 인력의 산실이었다. 남자 대졸자만으론 기업에 필요한 인력 충원이 버겁던 1980년대에도 똑똑하고 부지런한 여상 출신 인재들이 크게 활약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여성의 교육 차별도 사라지면서 여상의 인기가 퇴조하고 있다. 이제는 전국에 20곳 정도만 남아 있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맞춰 인재를 키워내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여상 100년이 이 나라 여성이 흘린 땀과 노고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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