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읽지도 않을 책을 쌓아 두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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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사한 후, 아직도 책을 정리 중이다.
책상, 소파, 방바닥 등 여기저기 책을 두고, 한 권이라도 더 챙기려 애쓰고 있다.
새로 주문한 책이 밀려들고, 받은 책도 쌓인다.
그러나 눈에 띄는 책을 일단 사는 걸 멈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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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사한 후, 아직도 책을 정리 중이다. 책상, 소파, 방바닥 등 여기저기 책을 두고, 한 권이라도 더 챙기려 애쓰고 있다. 책장에 책을 두 겹으로 쟁였는데도 작업은 끝이 없다. 새로 주문한 책이 밀려들고, 받은 책도 쌓인다. 아마 영원히 마치지 못할 것이다. 아내가 타박한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대다수 책은 펼쳐져 읽힐 날을 하염없이 기다릴 테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읽히지 않을 책이 있을지 모른다. 어리석다. 그러나 눈에 띄는 책을 일단 사는 걸 멈추지 못한다. 방 가득 쌓인 책을 보면 만족감이 느껴지면서 심장에서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이 솟아난다. 행복하다. 다행히, 책이 좋아 삶터 전체를 양보한, 나 같은 사람이 곳곳에 있다. '적독 생활'(서해문집 펴냄)을 쓴 일본의 열혈 독자 집단 타이키 라이토 핌도 그런 사람들이다.
이 책은 츤도쿠(積ん讀) 이야기를 다룬다. 츤도쿠란 쌓다(積)와 읽다(讀)를 합친 말이다. "책을 읽기는커녕 집 안 곳곳에 쌓기만 하는 행동"을 뜻한다. 용어의 기원은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가 시작해 삶의 규칙이 허물어지고 생활이 달라지는 격변의 시기에 사람들은 책에 기대어 불안을 달랬다. 책은 그들에게 시간을 이겨낸 굳센 지성과 지혜, 단단한 전통과 문화의 존재를 환기했다. 인간은 이런 감정, 나를 뛰어넘는 거룩하고 위대한 것에 연결돼 있다는 느낌 없이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집 안 곳곳에 쌓인 책은 인간을 무한의 감정과 연결한다. 가만히 책들을 바라보면, '언젠가 이 책들을 모두 읽겠지' 하는 뿌듯한 마음이 솟아난다. 제목이, 표지가, 드문드문 떠오르는 구절이 정신을 각성시키며, 영혼을 고양하며, 직관을 자극하고, 감정을 일깨운다. "읽고, 알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자각"은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깨닫게 한다."
책들을 껴안고 사는 건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볼 때의 경외와 공경을 나날이 경험하는 일과 같다. 책의 우주는 내 생각이 얼마나 짧은지, 내 자아가 얼마나 작은지 알려준다. 내가 더 넓은 세계, 아득한 우주에 속함을 일깨운다. 쌓인 책을 천천히 둘러보는 건 곧 우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미지의 가능성이 피어나고, 이룩할 희망이 싹트는 순간이다.
읽은 책이 시대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에게 삶의 길을 보여준다면, 아직 읽지 않고 쌓은 책은 우리에게 확신과 안정을 돌려준다. 그러므로 읽은 책도, 읽지 않은 책도 똑같이 소중하다. 좋은 삶을 위해서라면 나날이 책을 쌓지 않을 수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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