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명은 수학을 대하는 자세에 달렸다

설지연 2026. 5. 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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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평평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기하학을 발표했다.

당시로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순수한 수학적 사유였다.

책은 피타고라스에서 뉴턴, 오일러, 가우스를 거쳐 현대 인공지능(AI)까지 수식 없이 수학의 역사를 다룬다.

실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리만의 기하학이 아인슈타인의 손에서 우주를 설명하는 도구가 됐듯, 19세기 수학자들이 쌓아 올린 이론들은 20세기의 전기, 통신, 컴퓨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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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뼈대
송용진 지음
다산초당 / 392쪽│2만2000원
'세계 수학의 수도' 독일 괴팅겐
나치 집권으로 美에 인재 뺏겨
"수학은 문명 발전의 기본 중추"
일반상대성이론 장 방정식을 설명하고 있는 1931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54년,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평평하지 않은 공간에서의 기하학을 발표했다. 당시로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순수한 수학적 사유였다. 반세기가 지난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정확히 이 리만 기하학을 끌어다 썼다. 중력이 공간을 휘게 한다는 것을 수식으로 표현할 언어가 필요했고, 그 언어는 이미 50년 전에 준비돼 있었다.

<문명의 뼈대>의 저자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는 이 사례를 수학의 본질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제시한다. 수학은 쓰일 자리가 생기기도 전에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이다. 책은 피타고라스에서 뉴턴, 오일러, 가우스를 거쳐 현대 인공지능(AI)까지 수식 없이 수학의 역사를 다룬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단의 단장으로 30년 넘게 활동해온 저자는 수학의 5000년 역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수학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명의 운명을 갈랐다.”

저자는 독일 괴팅겐대학 이야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괴팅겐은 세계 수학의 수도였다. 가우스, 리만, 힐베르트 등 수학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곳에서 연구했다.

그러나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유대인 학자들이 하루아침에 추방됐고, 한 세대가 공들여 쌓아 올린 세계 최고의 수학 공동체는 단 몇 년 만에 해체됐다. 그 학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수학과 과학의 중심지도 함께 이동했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6년 현재 미국의 반이민 정책을 언급하며, 포용성을 기반으로 번영했던 미국의 전성기가 저물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고 짚는다.

명나라 이야기도 날카롭게 다가온다. 15세기까지 명나라는 세계 최고의 문명이었다. 하지만 유럽이 과학혁명을 거치는 동안 명나라는 빠르게 뒤처졌다. 저자는 군사력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수학과 과학을 오로지 실용적 가치로만 평가하기 시작한 순간, 지식의 축적이 멈췄다는 것이다.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순수한 진리 탐구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도약이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을 직접 겨냥한다. 연구비를 신청할 때 해당 연구가 어떤 기술과 연관이 있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했던 연구재단의 관행, 순수과학보다 응용기술을 우선 지원해온 정책 기조를 명나라의 태도와 나란히 놓는다. “수조 원의 예산을 쏟고도 60년 전 미국 수준의 로켓을 겨우 시험 발사하는 현실”이라는 문장은 책에서 가장 불편하게 읽히는 문장이기도 하다.

반면 책 곳곳에는 순수한 지적 탐구가 결국 문명을 바꾼 사례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알렉산드리아, 바그다드, 코르도바…. 수학이 번성한 도시에서 문명이 피어났고, 수학이 소외된 곳에서 문명은 뒤처졌다. 실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리만의 기하학이 아인슈타인의 손에서 우주를 설명하는 도구가 됐듯, 19세기 수학자들이 쌓아 올린 이론들은 20세기의 전기, 통신, 컴퓨터로 이어졌다.

저자는 지금 수학자들이 붙잡고 있는 추상적인 문제들 역시 언젠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순수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인 길이라는 결론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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