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아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 모성은 언제 무너지는가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5. 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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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의 어머니' 명동예술극장서
아들의 성범죄 후 어머니의 삶 그려
원작자 플레이시 "일방적 공감넘어
사유와 생각 촉발하는게 연극 역할"
배우 진서연 "인생 3대 극한 작품"
국립극단이 선보인 연극 '그의 어머니'에서 어머니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 국립극단

"난 매튜가 한 행동을 증오해. 근데 매튜는 미워할 수가 없어. 그게 자식의 저주야."

평범했던 가정 속으로 굴러들어 온 '악'의 존재. 아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 때문에 외부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할 가정이 그를 옥죄는 감옥이 된다. 어머니로서 아들을 보호하려는 모성과 사회적 선(善)에 부합하려는 시민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극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가 돌아왔다. 지난해 국립극단 신작 중 관객 평가 종합 1위를 차지하며 '관객Pick'으로 선정된 이 작품(에반 플레이시 작, 류주연 연출)은 새 캐스트와 함께 명동예술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작품은 17세 아들이 하룻밤 사이 여성 3명을 강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브렌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브렌다는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원망하면서도 감형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하고 학교를 보내던 평범한 일상에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금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가해자의 어머니를 다룬 작품으로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가 널리 알려져 있다. 에반 플레이시는 두 작품의 차이점에 대해 "영화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인생을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까지 면밀하게 되돌아보지만 연극에서는 범죄가 일어난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고 짚었다.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 직후 아들을 계속 지지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재의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원작은 캐나다·영국 출신 극작가 플레이시의 장편 희곡 데뷔작으로, 2010년 초연 이후 캐나다 극작가상과 영국 킹스 크로스 어워드를 받았다. 플레이시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어머니가 자신의 지인이었던 경험에서 작품을 구상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느 시점에 소멸되는가"라는 질문이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연에서는 배우 김선영이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며 브렌다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류주연 연출은 작년에 작품이 다뤘던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한층 더 깊은 질문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그는 최근 라운드 인터뷰에서 "작년에는 어머니에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등장인물 전체로 초점이 넓어졌다"며 "일방적 공감이 아니라 돌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연극의 역할"이라고 했다.

류 연출은 "우리 사회에서 괴물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작품을 하면서 그 괴물에게도 가족이 있고 심지어 괴물이라고 해도 예전만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것이 창작물의 위대함"이라고도 했다. 작품은 브렌다를 무조건적인 공감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미디어의 극심한 관심에 노출된 브렌다는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반복한다. 관객은 그런 브렌다를 보며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묻게 된다.

연출 변화의 중심에 새 브렌다, 진서연이 있다. 류 연출은 "작년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로 김선영 배우에게 제안했다면 이번에는 제 연출 의도에 더 부합하는 배우를 찾았다. 도시적이고 강한 면의 캐릭터로 생각했다"고 캐스팅 의도를 밝혔다.

영화 '독전', 드라마 '행복배틀'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온 진서연은 이 연극을 영화 '독전'의 보령 역 도전, 예능 '무쇠소녀단'에서의 철인3종 완주에 이어 "인생 3대 극한 작품"이라고 불렀다. 아홉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 그는 극중 막내 제이슨의 나이가 자신의 아들과 비슷해 감정 몰입에 도움이 됐다며 "가해자 엄마 역할을 하면서 생각의 그릇이 커졌다. 나라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번 재연에는 원작자 플레이시가 직접 내한해 공연을 관람했다. 플레이시는 "한국 공연이 이야기의 핵심을 잘 포착했다"고 평가하며 "막이 내리고 공연장을 떠나면서 '재밌었다'고 하는 것보다 사유와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 시어터의 본질"이라고 했다. 공연은 명동예술극장에서 5월 17일까지.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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