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대로 ‘고무줄’…수시로 바뀌는 북한군 창건일[박성진의 국방 B컷](56)

2026. 5. 1. 14: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기념 열병식이 전날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열병식을 보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은 북한의 94주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이다. 이날은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빨치산)의 모태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고 북한이 기념하는 날이다. 반일인민유격대는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한 항일 무장군사조직으로 첫 ‘주체적 혁명무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사출판사가 2015년에 출간한 책인 <동북항일연군사>를 보면 “1932년 4월 25일, 안투현 샤오사허에서 정규 반일인민유격대가 설립됐으며, 김일성은 유격대 대장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됐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특별한 활동 기록은 없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가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해 일제와의 항일혁명전쟁에서 역사적 승리를 쟁취했다는 등 과장된 전과를 포장해왔다. 이는 김일성 우상화와 관계가 깊다. 게다가 반일인민유격대를 계승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직이 실재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5년 이전의 기록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항일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며 이날을 북한군들의 사상 무장을 강조하는 날로 삼고 있다. 올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군의 박격포 시범 경기가 열렸다. 그러나 북한이 주요 행사일마다 개최하는 열병식은 열리지 않았다.

16년을 건너뛴 북한군 생일

북한은 ‘북한군 생일’을 수시로 바꿔왔다. 당초 북한은 북한군 생일인 ‘건군절’을 북한 정권 수립(1948년 9월 9일)을 앞두고 창설한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이 출범한 1948년 2월 8일로 정했다. 그러다 1978년부터는 건군절을 4월 25일로 변경했다. 북한군이 탄생한 ‘생일’을 햇수로 16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날짜로 바꾼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1932년 4월 25일 중국 동북지역에서 북한군 정규군 모태가 된 첫 ‘주체적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북한의 4·25문화회관, 4·25체육선수단, 4·25예술영화촬영소, 4·25훈련소, 4·25여관 등에 붙은 숫자 ‘4·25’는 바로 4월 25일에서 비롯됐다.

북한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조직했다는 반일인민유격대는 1934년 3월에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됐다. 이후 조선인민혁명군은 1948년 2월 8일에 정규 무력집단인 조선인민군으로 다시 개편됐다. 즉 반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조선인민군으로 변화한 것이다.

북한은 정권 수립 전부터 정규 무력군인 조선인민군 창설일인 2월 8일을 건군절로 정했다가, 1978년부터 2017년까지 40년 동안에는 항일유격대가 조직된 4월 25일을 건군절로 불렀다. 그러다가 북한 당 중앙위 정치국은 김정은 집권 7년차인 2018년 1월에 “4월 25일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로 부르고, 2월 8일을 2·8절(건군절)로 한다”고 공표했다. 조선인민군이 출범한 1948년 2월 8일을 다시 ‘건군절’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월 26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기념 열병식이 전날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열병식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군 건군절의 변경은 당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선대의 흔적을 지우고 대신 자신의 독자성을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올해의 경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8일 건군절 77주년 연설을 통해 “핵무력을 더욱 고도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2015년부터 3년간 건군절을 2월 8일로 환원하려고 준비했다. 북한은 2015년 2월 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황병서 당시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당시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당시 군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부 고위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보고 행사를 개최했다. 북한군부가 정규군 창설일인 2월 8일을 기념해 총출동해 행사를 치른 것이다.

북한 전역에서는 전쟁 노병들과의 상봉 모임, 참전 열사묘 참배, 전쟁기념관 참관, 예술공연과 무도회 등 다양한 경축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중요한 기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나오는 노동신문 사설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 혁명무력으로 강화 발전시키신 일흔 돌이 되는 올해”라고 언급하면서 2월 8일 기념식을 위한 열병식도 준비했다. 1978년 4·25가 건군절로 된 이후 2월 8일이 평일 취급을 받아온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북한이 2월 8일을 건군절로 다시 바꾼 것은 김정은이 선대인 김일성, 김정일과 차별성을 노린 일종의 북한판 ‘군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이었다. 항일투쟁 과정에서 무장세력(군)이 당을 만들었다는 북한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의 통치이념인 이른바 ‘선군후당’과 반대로 당을 앞세우는 ‘선당후군’을 내세워 노동당이 군을 만든 것으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를 통해 비대해진 군부 권력을 견제하면서 북한이 군이 통치하던 비상 국가에서 당이 주도하는 정상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일석이조를 노렸다. 유격대 전통을 강조하던 선대를 벗어나 당 국가체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당시 중국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항일유격대는 북한과 중국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항일유격대가 만들어진 날에 대한 의미를 축소했다. 게다가 북한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은 소련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한겨울’ 열병식

북한 열병식은 과거 사례를 보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7월 27일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일), 8월 15일 해방일(광복절),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일,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등에 주로 열렸다. 북한은 통상 열병식 준비에 6개월을 준비하고, 열병식 4개월 전부터는 북한군이 평양 미림비행장에 집결해 실전 연습에 들어갔다.

북한은 2018년 2월 8일로 75주년 건군절 날짜를 변경하고 이날 열병식을 치렀다. 북한 최초의 한겨울 열병식이었다. 당시 열병식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한파에서 군인 수만명이 동원됐다. 북한 역사상 겨울에 열린 첫 열병식이었다. 당시 추위에 화장실, 샤워 시설 등이 열악한 탓에 열병식 훈련 도중 건강상 문제로 중도 탈락자가 속출했다. 추위의 영향인지 북한 건군절 열병식은 2023년 2월 8일 행사 이후에는 열리지 않고 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