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사회적 로그아웃 71만 명…'쉬었음' 넘어 고립으로

진태희 기자 2026. 5. 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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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오늘은 63년만에 제 이름을 찾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자는 약속이지만, 정작 노동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청년들의 현실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취업 준비마저 포기한 채 그저 '쉬었다'고 말하는 청년이 벌써 71만 명에 육박하는데요.

이들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진태희 기자가 직접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목에 걸린 사원증과 한 손의 커피.

매일 아침,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터로 향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세상의 속도에서 비켜난 채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좁은 방 한 칸.

그곳이 하루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사람들은 이 시간에 취업해서 밖에서 일을 하고 있을 텐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제가 은둔을 하고 있거나 방 안에만 있고 무직인 상태를 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이해를 못 하시죠. 젊은 애가 왜 저러고 방 안에 있고, 저러고 일도 안 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하시죠."

일을 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상태.

통계는 이를 '쉬었음'이라고 부릅니다.

"맨날 배달시켜 먹고 치우지도 않고 다 먹고 유튜브만 보고 있고 그냥 계속 취업을 회피하고 있어요."

지은 씨가 카메라를 켠 건, 뭐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가라앉을 것 같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첫 영상은 1만 회 넘게 조회되며,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지은 씨는 1년 3개월 동안 구직을 멈춘 '쉬었음' 상태였습니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영양사로 사회에 나섰지만, 적응하지 못한 직장 생활은 결국 '쉬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이지은 (가명) / 25세 

"신입인데 실수도 많고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까 자존감도 많이 내려가고, 영양사로 일을 했을 때는 너무 안 맞는다고 느꼈었고, 퇴사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예요."

지난해, '쉬었음' 청년은 71만 명을 넘었습니다. 

2030 청년 인구의 6%에 이릅니다.

흔히 경력 중심 채용 구조와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변화, 그리고 청년들의 눈이 높아서가 이유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조금 다른 진실을 말합니다.

쉬고 있는 청년들의 기대 임금은 구직 청년과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중소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비중은 더 높았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경험'입니다.

취업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은 2019년 36만 명에서 2025년 47만 7천 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반면, 취업 경험이 없는 청년은 10만 명 선에서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이 멈춘 건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된 실패 속에서 다시 발 디딜 기회를 잃어버린 결과에 가깝습니다.

인터뷰: 쉬었음 청년 A씨 / 32세 

"좋은 대학을 못 갔다는 점에서 굉장히 실패자, 이미 실패했다 그런 기준이 있잖아요. 한국에서는. 그런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나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20살 때부터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쉬었음 청년 B씨 / 30세 

"20대 초반 같은 경우에는 도전도 많이 했었고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자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한번 손 놓기 시작하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쉬었음' 상태에 있는 청년의 77%는 이 시간을 불안하다고 느낍니다. 

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재충전'이라는 인식은 줄고 '힘든 시간, 구직 의욕을 잃게 만든 시간'이라는 인식은 더 늘어납니다.

이 불안은 곧 고립과 은둔으로 이어집니다.

'쉬었음' 청년의 은둔 확률은 17.8%로 취업 청년의 6배가 넘습니다.

인터뷰: 이은애 이사장 / 고립·은둔 지원 사단법인 '씨즈' 

"원하는 회사의 취업에 실패하거나 이렇게 됐을 때 두 번째, 세 번째가 없는 거예요.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사람들한테 지적받느니 나는 내 굴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식의 선택도 많이 합니다."

효성 씨는 10년 동안 은둔과 고립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 시작은 스무 살,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겪은 폭언과 폭행이었습니다.

인터뷰: 조효성 / 30세

"엄청 혼났었거든요. 숫자 계산을 못 하는데, 특히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 시선이 너무 신경 쓰여서 계산을 못하고 온몸이 막 굳고 뇌가 굳고 생각이 굳고 이랬는데 싸대기도 맞고 그랬었거든요. 그때부터 일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이 생겼고…."

두려움을 뚫고 다시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트라우마는 매번 그를 다시 방 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떡볶이집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유니세프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이렇게 해봤는데 다 저랑 안 맞아서 이거는 내 일이 아니라고 느껴서 바로 도망쳐 나왔고…."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재명 대통령 (지난달 2일)

"'쉬었음' 청년에게는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대기업과 연계한 직업훈련인 K-뉴딜 아카데미를 신설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문턱을 낮춰 취업 경험이 없는 청년도 취업의 희망을 갖도록 폭넓게 지원하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짧은 교육이나 잠깐의 일 경험으로는 이들이 다시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겁니다.

EBS 취재진은 고립은둔청년 지원 기관 '씨즈'가 올해 고립은둔청년 68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은둔의 가장 큰 이유는 입시와 취업 실패가 29%로 가장 높았고, 직장 내 갈등과 부적응, 학교 폭력 경험도 각각 16%나 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댈 곳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조사 대상 10명 가운데 3명은 가족을 포함해 주변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답한 비율도 35%를 넘었습니다.

인터뷰: 최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예전에 취업했었는데 재은둔으로 빠진 청년들이 상당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을 때는 심리적인 회복을 잘하느냐, 못 하느냐가 노동시장이든 사회적 관계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안 되는지를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심리 회복 단계에서의 지원이 굉장히 중요하다…."

고립·은둔 청년 6명이 모여사는 셰어하우스.

이곳의 아침은 마음 상태를 기록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워낙 나에게 잘해줬던 선임이고 가까이 지내서 먼저 연락도 하고 싶었는데 방 안에만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오는 연락도 피하고 연락도 못 했었다. 근데 몇 달 전에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해줘서 고마웠고…."

명선 씨는 이곳에서 매니저로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6년의 취업 실패와 재고립 끝에, 그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언제든지 다시 들어갈 수 있고 그리고 들어갔을 때 나를 꺼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부담 없이 시도를 해볼 수 있고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멈춰 선 청년 71만 명.

이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1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고립과 은둔으로 인한 비용 역시, 각종 복지 비용을 더해 5조 2천억 원을 넘습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무거운 건, 그들이 멈춰 선 이유입니다.

그 배경에는 거듭된 실패와 좌절이 쌓여 있고, 일부는 더 깊은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서둘러 움직이게 하기보다, 왜 멈춰 섰는지부터 묻는 것.

그것이 다시 시작하게 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EBS뉴스 진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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