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설 “AI 경쟁, 하드웨어로…인간의 노동 역할 재정의한다” [SFF 인터뷰]
“화면 밖으로 나온 AI…‘행동하는 AI’ 시대 개막”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지난 3년간 챗GPT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뒤흔들었다면, 이제 변화의 물결은 하드웨어로 옮겨붙고 있다. 화면 속에 머물던 인공지능(AI)은 이제 현실 세계로 나와 행동하는 AI로 확장되고 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개막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인간처럼 판단하고 움직이는 로봇 '휴머노이드'가 있다. 사람의 가르침 없이는 작동할 수 없던 로봇은 이제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해 실제 노동을 수행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 휴머노이드 산업을 이끄는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한 단계 진보한 AI는 이제 물리적 구현, 즉 하드웨어에서 한 단계 진화할 차례"라며 "피지컬 AI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은.
"AI가 사람처럼 몸, 즉 피지컬을 가진다는 것이 본질적인 차이다. 지금까지는 생성형 AI를 비롯한 소프트웨어가 먼저 성장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로봇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전성기가 열릴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가 출시돼도 이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없다면 그 이상의 발전이 일어나긴 어렵다. 이제는 하드웨어가 그 격차를 좁혀야 한다. 피지컬 AI 시대는 결국 '몸의 경쟁'이 열리는 시대다."
로봇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나.
"가장 큰 변화는 학습 방식이다. 생성형 AI 등장 전까지 로봇을 동작시키려면 사람이 동작을 하나씩 입력해야 했다. 이른바 '교시 기반'이다. 같은 작업을 반복해 수행할 때는 충분히 효율적이지만, 투입 환경이 변화하면 대응이 어렵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출시되면서 로봇이 점차 학습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다. 에이로봇이 개발한 반려로봇 '에디(EDDY)'의 초기 버전인 에디6는 사람을 따라다니거나 반응하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사용자의 성향을 장기적으로 기억하고 그에 맞춰 스스로 달라지는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표정이나 감정 표현도 사람이 미리 입력한 반응을 불러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하반기 출시를 계획 중인 에디9는 다르다. 사용자의 생활 방식과 상호작용을 기억하고, 그에 맞춰 행동과 반응을 스스로 수정한다. 같은 공장에서 출고된 로봇이라도 누구와 1년을 함께 보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의 반려로봇으로 성장한다. 단순 반복 수행을 넘어,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동을 선택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왜 지금 피지컬 AI인가.
"결국 노동력 문제로 연결된다. 인구는 줄고, 인건비는 계속 올라간다.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피지컬 AI다. 그런데 이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면 산업 주도권을 잃게 된다. 피지컬 AI를 '주권 산업'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 주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과거 한국이 전투기 개발이나 반도체 산업에 도전할 때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방산과 반도체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강국이다. 피지컬 AI 역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지금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상용화 시점은 언제로 보나.
"2028년을 목표로 보고 있다. 2028년에는 실제 공장에 투입해 사람 대신 노동할 수 있도록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른바 실증(PoC) 단계로 데이터를 학습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당장은 속도나 효율 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상황은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생성형 AI가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의 변화를 끌어냈듯, 로봇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보급될 가능성이 크다. 상용화 시점에는 지금과는 다른 수준의 성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본다."
피지컬 AI는 어디에 먼저 적용될까.
"우리는 제조 현장을 가장 먼저 본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5인 미만 소규모 제조업장이 주요 타깃이다. 이런 소규모 공장들이 한국 제조업의 기반인데, 인력 부족으로 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로봇이 대체재가 아니라 필수 인프라다.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기반을 유지하는 문제다.
또 하나 중요한 영역은 위험 업종이다. 조선소나 건설 현장처럼 사람이 작업하기에 위험한 환경에서는 피지컬 AI가 가장 먼저 도입돼야 한다.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안전과 삶의 질을 위한 선택이다."
일자리 대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일부 영역에서는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이 같은 상황은 아니다. 인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오히려 로봇 도입을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체'가 아니라 '전환'이다. 피지컬 AI가 확산되면 인간의 노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물리적 노동은 줄어들고, 인간은 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로 이동하게 된다.
결국 로봇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로봇이 경쟁하도록 하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자도 환영하는 기술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한국 피지컬 AI 산업의 과제는.
"제도와 환경 두 가지다. 먼저 제도 측면에서는 기준 자체가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휴머노이드를 공장에 투입하려 해도 안전 규정이 없어 투입 자체가 어렵다.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규정이 없어 현장 학습과 실증이 제한되고 연구 진전도 더뎌지는 구조다. 새로운 기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아니라, 허용된 것만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 구조에서는 혁신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주 52시간제 등 노동 규제가 걸림돌이다. 기술 경쟁은 속도의 싸움인데, 노동시간 규제로 인해 연구개발 속도가 제한되고 있다. 충분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문제겠지만, 충분한 보상을 주더라도 노동시간 규제로 인해 개발이 뒤처지는 건 막아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자인 미국과 중국은 충분한 보상을 기반으로 유연한 연구·개발 환경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피지컬 AI가 바꿀 미래는.
"스마트폰 시대 이전을 떠올려 보면 지금은 그 시절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변화가 컸다. 로봇은 그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스마트폰이 정보의 흐름을 바꿨다면, 로봇은 '행동'을 바꾼다. 일상에서 로봇과 함께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올 것이고, 그때는 로봇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피지컬 AI는 단순히 노동 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 방식과 삶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2026 시사저널 미래 포럼(SFF)이 오는 5월26일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됩니다. '말하는 AI'를 넘어 '움직이고 실행하는 AI'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지능은 화면을 벗어나 현실을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지컬AI와 에이전틱AI가 산업과 경제의 운영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경제 질서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SFF는 'AI 대전환'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미래 전략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포럼에 앞서 국내외 AI 선도 기업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인사이트를 미리 들여다봤습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