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과급 잔치, 미래를 집어삼킨다 [쓴소리 곧은소리]
선배들이 세운 산업의 토대, 후배들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시사저널=유회준 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장)
젊은 시절 즐겨 치던 4구 당구가 떠오른다. 초보자는 있는 힘껏 흰 공을 때려 빨간 공 두 개를 맞힌다. 소리는 요란하고 충격도 크지만, 공은 사방으로 흩어져 다음 한 점을 기약하기 어렵다. 반면 고수는 조용히 두 개의 빨간 공을 맞히면서, 공들이 서로 가까이 모이도록 길을 만든다. 당장은 화려하지 않아도, 다음 득점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다. 하수는 한 번의 짜릿한 득점에 만족하고, 고수는 여러 번의 점수를 차곡차곡 쌓는다.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잔치로 끝낼 것인가, 연속된 성취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 선택이 기업의 격을 가른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 이를테면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적잖은 우려를 느낀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산업의 흐름을 지켜본 입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반도체 산업이 일반 제조업과는 구조 자체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산업의 본질을 외면한 채 단기 분배에만 몰두할 경우, 그 대가는 결국 미래 경쟁력의 상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호황의 착시…사이클 산업의 냉혹한 법칙
한때 세계 반도체를 호령했던 일본 기업들과 인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D램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호황기에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차세대 공정과 신규 라인에 충분히 재투자하지 못한 채 풍요에 안주하다가 과감하게 투자를 밀어붙인 한국 기업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인텔 인사이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텔 역시 미세공정 전환의 적기를 놓치면서 파운드리 분야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다. 교훈은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에서 오늘의 이익을 다음 사이클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가 곧 생존의 문제이며, 분배의 유혹에 흔들려 투자의 흐름을 끊는 순간 시장은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
그렇다면 반도체 산업은 왜 이토록 가혹할까. 그 이유를 네 가지 차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반도체는 '현금 창출 산업'이 아니라 '초대형 재투자 산업'이다. 일반 산업에서는 이익이 늘면 배당이나 성과급을 확대할 여력이 자연스레 커진다. 그러나 반도체는 공정 미세화, 첨단 장비 도입,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끊임없이 투입되어야 비로소 회사가 유지된다. 자전거 페달을 멈추는 순간 쓰러지듯,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가 끊기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대만의 TSMC는 한 해에만 약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0조 원에 달하는 설비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반도체 부문에서만 매년 40조원에서 50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지해 왔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은 분배의 대상이라기보다, 이러한 투자 사이클을 멈추지 않게 하는 연료에 가깝다.
둘째,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메모리 가격은 품귀와 과잉생산에 따라 두세 배 급등했다가 다시 절반 이하로 추락하는 패턴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삼성전자 역시 2022년 반도체 부문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듬해인 2023년에는 수십조원의 영업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해 흑자라고 해서 올해 같은 성과가 보장되는 구조가 결코 아니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이익은 불황을 견뎌낼 완충 장치이자 다음 세대 기술을 준비할 종잣돈이다. 이를 일시적 풍요로 착각해 과도하게 분배하면, 불황이 닥쳤을 때 버텨낼 체력이 무너진다.
셋째, 지금 삼성전자가 마주한 경쟁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60% 이상의 점유율로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혔고,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표준 플랫폼을 장악하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빅펀드'를 통해 1·2차에 이어 3차까지 누적 1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투자 속도가 늦어지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은 이익을 나눌 시기가 아니라, 격차를 벌려 나가야 할 시기다.
넷째, 성과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지속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방식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령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40조원일 때 그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약 6조원에 이른다. 이는 첨단 EUV 공장 한 곳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맞먹는 규모다. 성과급이 한 해의 분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의 미래 공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상 체계는 업황과 현금 흐름, 투자 계획, 장기 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는 길이 열린다.
이익은 다음 공정을 위한 종잣돈
결국 노사 모두에게 묻고 싶다. 지금 한 번에 돈을 나눌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돈을 벌 것인가. 투자가 지연되어 기술 리더십을 잃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구성원 모두에게 되돌아온다. 연구개발과 설비, 차세대 인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로 밀리고 분배 비율만이 전면에 부각되는 흐름은 반도체 산업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늘의 선택이 앞으로 10년, 20년의 산업 지형을 결정한다.
이 글을 읽는 후배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그 엄혹했던 시절 묵묵히 맨몸으로 공장을 세우고,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습득해 여러분에게 세계 최고의 기술을 넘겨주었던, 낮은 대우에도 선진국을 만들어보겠다고 불철주야 노력했던 여러분의 선배 엔지니어들을 한번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 헌신의 토대 위에 오늘의 삼성전자가 서있다. 그러므로 그 영업이익은 노사가 나누어 가질 전리품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차세대 메모리와 AI 반도체, 미래 공정 그리고 미래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종잣돈이다. 종잣돈을 헐어 잔치를 벌이는 순간, 다음 농사를 지을 씨앗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목소리 큰 요구가 아니라, 세계시장을 이겨낼 냉정한 전략과 묵직한 인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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