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No를 ‘무시’한 성폭력 가해자와 재판부

김혜정 2026. 5. 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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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의 반성폭력 정치]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 소원’의 의미

지난 4월 23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청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여성·인권·사회단체들이 주요하게 대응하고 있던 성폭력 사건의 2심 선고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당시 사건에서 피해자는 취해 있었고, 중간에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눌렀는데 나중에 보니 75회 이상 거절 의사가 녹음돼 있었다. 물리적인 저항도 있었다. 그런데 경찰 송치, 검찰 기소 후 1심에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결론부터 알리자면, 2심 법원 판결도 다르지 않았다. 검사는 상고해달라는 피해자의 의사가 있었지만, 상고하지 않았다.

▲ 2026년 4월 23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청구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필자(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강간죄 ‘동의 여부로’ 개정, 정부와 국회는 끝도 없이 미루는 중

2심 선고를 앞두고 열렸던 기자회견은 총 61개 여성·인권·사회단체가 공동주최했고, 현장에 40명의 활동가와 시민이 모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와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와 만난 후 재판소원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공대위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논의가 있었다. ‘강간죄 개정 운동과 함께할 것인가, 별도의 대책위원회가 필요한가’도 그중 하나였다.

미투 운동 시기 ‘명시적 폭행과 협박이 없고 현저히 곤란하게 저항할 수도 없었던 성폭력 사건이 대다수였다’는 점이 우리 사회가 목격한 진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형법 개정 운동(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을 본격적으로 지폈다.

당시의 20대 국회부터, 21대를 거쳐, 현재 22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당시 문재인 대통령, 윤석열을 거쳐 현재 이재명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당시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와 7기를 거쳐 8기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강간죄 개정 운동은 7년간 줄곧 다양한 자료와 액션을 통해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상 변경을 정부와 국회가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개별 성폭력 사건들은 계속 법정에서 다투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는데 폭행이나 협박이 뚜렷하지 않은 성폭력 사건은 부지기수다. 그러던 중 재판소원 제도(법원의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될 경우, 그 재판 자체를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구제를 요청하는 제도)가 생겼고, 한 사건이 그 문을 두드린다. 이 사건을 놓고 집중해서 논의하고, 무엇이 맞는지 최소한의 상식선을 질의하는 공대위가 탄생한 것이다.

▲ 2019년 출범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기자회견. 이미 여러 국가들처럼 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해왔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는 끝도 없이 과제를 미루는 중이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녹음파일에서 75회 거절·거부가 밝혀져도, 무죄라니?

이 사건에서 공대위가 주목한 부분은, 피해자가 거절·거부를 수차례 했던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실제 성폭력 중에서 피해자가 거절, 거부를 그토록 많이 한 경우가 많을까. 그렇지 않다.

독일도 성폭력 법이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기준이지만, 여기에는 ‘묵시적’인 의사표시도 포함된다.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쉽지 않음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 성폭력 형법 개정 때도 명백한 거부라는 기준은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책임 전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여 ‘동의를 형성, 완수, 표명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거나 편승하여’라는 문구가 확정된 바 있다.

이러한 점은 역으로 말해 ‘피해자가 75회 이상 거부, 거절 의사를 표했다면 가해자가 무죄일 수 없다’는 최소한의 선을 뜻한다. 기자회견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75번 거절하기도 힘들었겠다”. 그리고 “재판부가 공범인가”. 이 사건이 무죄가 맞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법과 법원에 의해 용인되고 있음을 모두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OOO OOOO라고 우겼던 성폭력’ 시리즈

공대위에서 논의했던 또 한 가지가 있다.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 공대위’라는 이름 대신 ‘OOO OOOO라고 우겼던 성폭력 사건 공대위’라고 이름 짓자는 의견이다. ‘OOO OOOO’에 들어가는 말은 이 사건 가해자가 주장한 내용이다.

무슨 논리로 상대방의 동의 없는,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폭력을 했는지 드러나는 문구이다. ‘동의 없는 성폭력’이라는 기준은 피해자의 거부 정도를 심문하는 게 아니다. 성폭력 가해 어떤 행위 수단, 방식, 논리, 정당화, 왜곡 속에서 일어나는지 규명하고, 인식하고, 그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OOO OOOO라고 우겼던 성폭력’으로 사건 이름을 짓고 공대위를 명명하면, 그리고 이것이 시리즈가 되면, 무수히 많은 성폭력의 수단과 과정이 드러날 것이다. 말할 때마다 분노와 실소가 우리 몫이 되는 건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이 특정되었다고 여기면 피해자에게 역공격을 가하는 현실을 고려해서, 실제 이름이 되지는 않았다.

 

판결문 ‘피해자는 분명히 거부했다, 그래도 피고인은 오해할 수 있다’
피해자 ‘내 의사는 도대체 무엇으로 더 증명되어야 하는가?’

‘동의없는 성폭력 재판소원’을 통해 명확히 하고자 하는 목적, 그 첫 번째는 “여성의 No는 Yes일 수 있다”는 말을 판결문에 쓰면 안 된다고 확정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발언문(대독)에서 이렇게 말했다.

“1심 판결문에는 제가 사건 당시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같은 판결문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내심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라고도 쓰여 있습니다. ‘피해자는 분명히 거부했다’고 쓰여 있는 판결문 안에, ‘그래도 피고인은 오해할 수 있었다’라는 의미의 말 또한 쓰여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의 거부가 판결문에 명시된 사건에서조차 ‘오해 가능성’이 피고인의 무죄 근거가 된다면, 피해자의 말은 도대체 무엇으로 더 증명되어야 하는 걸까요?”

1심 같은 판결문이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여성의 No는 Yes일 수 있으니 강행하면 된다”라는 남성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가해자 이러한 인식으로 폭력을 행한 데 이어, 재판부가 그 가치관과 실천을 용인해준 것이다. 재판부는 상대의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그대로 밀어붙인 가해자를 심지어 옹호했다.

피해자는 발언문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짚으며 재판부를 규탄한다.

“피고인이 제 거부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십 차례 거부 의사를 말하는 제 말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더 억울하고 힘들었던 점은 제가 저항해서 겨우 피고인의 행동을 멈추게 한 것을 피고인이 ‘강제로 할 의사가 없었다는 증거’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법원이 성폭력 행위를 합리화할뿐 아니라, 피해자의 저항 행동까지 피고인의 면죄 이유로 삼는 국가는 피해자 보호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 묻는 강간죄 최협의설 폐기해야

재판소원을 통해 이루어지길 바라는 변화, 두 번째는 ‘강간죄 폭행‧협박 최협의설’의 위헌성이 심각하게 짚어지는 것이다. 최협의설이란 법 개념의 범위를 가장 좁게 해석하는 것으로, 강간죄(형법 제297조)와 유사강간죄(형법 제297조의2)의 ‘폭행 또는 협박’을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 만취 상태에서 성폭력(준강간)을 겪은 피해 사건에 대해 법원은 강간죄도, 준강간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7일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164개 단체)가 수사 및 재판부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며,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이 사건 피해자 대리인단의 단장 오지원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기자회견 발언에서 최협의설은 (피해자가 극단적으로 저항해야만 강간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정조 관념에 기반”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는 포기하고, 가해자에게는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도 되는 위헌적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며, 평등권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법원은 여러 대법원 판례를 발표하면서 강간죄, 유사강간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하는 판결을 내왔다. 2023년에는 대법원이 강제추행죄 구성 요건 ‘폭행 또는 협박’에서 최협의설을 폐기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강간죄, 유사강간죄에 대해서는 그대로다. 이것이 강간죄, 유사강간죄에 대한 경검의 불송치, 불기소의 가장 큰 이유이자, 이번과 같은 무죄 판단의 이유이고, 피고인 변호인이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심문을 남발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전에선 학습되지도 않은 ‘성적 동의 부재’ 개념, 왜?

세 번째로 재판소원을 통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성적 동의’에 대한 거의 부재하거나 얕은 사회의 인식이다.

성폭력 판단기준이 ‘동의 부재(不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고, 이제 상식처럼 느껴진다. 2025년 직장갑질119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전국 19살 이상 직장인 1천명 문조사에서 ‘비동의 강간죄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72.2%, 남성의 62.9%와 여성의 83.9%였다. 2025년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전국 18세~38세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성교한 경우 강간죄’로 보는 의견에는 20~30대 남성의 61.0%, 여성의 87.5%가 동의했다. ‘명백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교한 경우 강간죄’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20~30대 남성의 83.5%, 여성의 95.0%가 동의했다.

그러나, 실전에서의 성적 ‘동의 부재’ 개념은 학습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고, 적용되지 않는 중이다.

20세 피해자가 아르바이트 사장과 음주 도중 성폭력 피해를 입고 119와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피의자 제출자료만 보고 ‘합의했다’는 사장의 말에 의해 불송치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동의 없이’ 발생한 친밀한 연애 관계에서의 성관계는 어떠할까.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직장에서 일어난 동의 없는 성적 행동에 대해 ‘상대도 동의했다’고 피신고인이 주장할 때, 어떤 관점으로 조사하고 판단해야 할까.

▲ 캐나다 온타리오 법원의 ‘적극적 합의 없는 성폭력’ 판결 내용 일부(2016). 한국성폭력상담소 ‘적극적 합의’ 홍보물 중.

일본의 경우 최근 형법 개정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준강간 조항을 없애고, ‘동의가 부재한 성폭력’으로 일원화했다. 동의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이 이제 책무여야 한다.

동의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하다. 동의하지 않음을 아무리 표현해도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의에 대한 의사를 형성할 여건 자체가 안되는 상황, 성적 동의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시급해서 동의한 것으로 보인 경우, 동의했으나 동의 당시의 전제가 무너지고 뒤집혔을 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여성과 소수자가 술, 유흥, 성적 취향, 상업적 활동과 산업적 고용에 연루되었을 때, 이미 ‘동의’로 간주하여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즉각적으로 거부하고 빠져나왔는지/그렇지 않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하며 배제하려는 시도 역시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동의는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의 결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동의하는 의사 또는 동의하지 않은 의사가 진실되게 형성되고, 표현되고,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조건을 마련해, 개인의 의사 실현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타파하는 힘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필자 소개] 김혜정. 2004년부터 반성폭력 운동판에서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성폭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사려깊고 해방된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고, 상근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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