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 세계관 속 ‘신분제’와 함께 남은 것 [플랫][플랫한 정주행]

플랫팀 기자 2026. 5. 1.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포스터. 디즈니플러스 제공

입헌군주제와 신분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설정의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첫 회. 주인공 성희주가 대표로 있는 회사 캐슬뷰티의 임원회의 장면에 앉아있는 임원은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다. 발언을 하는 주요 인물들은 전원 남성. 대군의 혼례를 논하는 자리에 참여한 왕실 인사들도 전원 남성. 30대 남성인 현직 국무총리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은 3대째 총리’라는 점에서 유추해 보면 아직까지 여성 총리도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현실의 대한민국보다 처참하고 유리천장도 단단해 보인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도 실제 대한민국보다 더 강고해 보인다. 친구들끼리 대화하는 장면에서 “너는 규방에만 있어서 모르는구나”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한 추측이다. 또다른 주인공 이안대군이 양반가의 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비가 누구냐”고 묻는 장면도 있었다. 양반 신분인 새언니에게 양반이 아닌 시누이가 막말을 해도 새언니는 한 마디도 못 하고 듣고만 있다. 반상의 법도가 지엄하다는 세계관이지만 시월드만큼은 예외인 모양이다.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스틸컷 . MBC 제공

성차별적 관습이야 군주제나 신분제와 함께 남았다 치더라도,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상 자체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를테면 설정상 성희주는 재계 서열 1위 캐슬그룹 회장의 사생아지만, 매우 똑똑하고 능력있는 여성 경영자다. 어린 시절부터 사사건건 그를 차별하던 아버지에게 학창시절에는 성적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 계열사인 캐슬뷰티 대표직까지 올랐다. 그런데 성희주가 남성 임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 그는 어깨에 트위드 재킷을 걸치고 예쁘게 앉아서 임원들에게 지시를 하며 윙크를 한다. ‘어그로’를 끌어서 ‘성희주 패션’을 ‘완판’시키는 방식으로 실적을 올린다. 이게 정말 능력있는 여성 경영자의 모습이 맞나. 유튜버 하말넘많은 이 드라마를 리뷰하면서 “2026년에는 여성 기업인을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2010년대스러운 여성 기업인 이미지이고 매우 구시대적이다”라고 지적했는데 매우 공감했다.

‘21세기의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처럼 이런 것들도 그냥 설정값이다 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을 가장 제약하는 것은 군주제와 신분제다. 이안대군은 차남이라는 이유로 항상 왕을 위협하지 말고 조용히 살 것을 강요받았다. 성희주는 오빠보다 능력이 있지만 혼외자라는 이유로 승계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차별받아 왔다. (신분제가 없었고 성희주가 혼외자가 아니었더라도 그가 오빠를 제치고 주요 계열사를 차지하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밖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아들에게 핵심 계열사를 물려준다.) 그가 혼외자라는 사실은 양반도 아니라는 출신과 겹쳐지며 양반들과 함께 참석하는 공식행사에서 늘 무시당하는 이유가 된다. 성희주는 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고,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왕족인 이안대군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결국 ‘여주인공이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결혼에 매달린다’고 요약 가능한데 이 신데렐라 클리셰가 드라마가 그리는 성차별적 세계관과 맞물리면 기분이 이상해지기만 할 뿐 도무지 설레지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남은 회차에서 성희주와 이안대군이 이 구시대적 질서와 어떤 방식으로 싸워나갈지에 기대를 걸어보고 있다. 다만 이들이 깨려고 하는 모순이 ‘가상의 신분제’일 뿐 ‘현실의 성차별’은 드라마의 관심 밖인 것 같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 남지원 기자 somni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